intro:'이거 누가 하는데?(Who runs this?)' 연재를 시작하며
어느 VC 심사역의 SNS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 있습니다. ‘요즘 잘 나가는 회사는 나보다 내 아내가 더 잘 안다’고요.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탑다운 분석은 아무리 정확해도 이론에 불과하지만, 소비 트렌드는 생생한 현실이니까요.
그래서 상상해 봤습니다. 투자사들이 수백 억 투자하면서 밀어주는 기업 말고, 언론사에서 협찬비 받고 기사 써주는 기업 말고, 광고 예산으로 SNS를 도배한 기업 말고, 진짜로 일상 속에서 ‘이거 누가 하는 거지?’ 싶었던 기업을 찾아보는 콘텐츠를요.
혹시 이 서문을 읽고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다면 이메일(yoon.jak.doo@gmail.com)로 언제든 제보해 주세요.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미디어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이름들, 하나씩 찾아보려 합니다.
1. 사실 그 헬스장은 400억을 번다
여러분은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면 무엇부터 하시나요?
간헐적 운동러인 저는 헬스장부터 찾습니다. 고인물들은 헬스장의 분위기를 본다지만… 저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서 위치와 시설, 가격을 보고 결정하는 편이에요. 모자만 눌러 쓰고도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위치에, 스쿼트 랙이 넉넉하게 구비되어 있고 공간이 넓다면, 가격은 평균보다 조금 비싸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동네에서도 여러 헬스장을 비교하다가 결국 선택한 곳이 바로 헬스장 프랜차이즈인 ‘짐박스’입니다. 처음에는 ‘월 구독제니까 마음에 안 들면 바로 그만두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등록했는데요. 어쩌다 보니 1년 넘게 다니고 있습니다.
이용하다 보니까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구독 시스템이나 음료 오더 등 재밌는 요소들이 많아서 비즈니스 디테일을 분석하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최소한 제가 본 헬스장 중에서는 IT를 가장 잘 활용하는 곳이었습니다.
‘대체 어디서 하는 헬스장이지?’ 싶어서 찾아보니까 더욱 심상치 않았는데요. 대부분의 지점이 신림~강남의 2호선 라인에 몰려 있어서 ‘신림에서 강남으로 출근하는 1인 가구’를 공략하기에 최적이었습니다. 이사도 자주 다니고, 혼자 사니까 저녁 시간에 운동 다니기 좋은, 바로 저 같은 페르소나죠.
게다가 이 회사(법인명 '서플라이스')는 다이어트 푸드 프랜차이즈 ‘프레퍼스’와 운동용품 브랜드 ‘서플라이스’도 함께 운영합니다.
특히 프레퍼스는 이름을 듣고 '아!'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모든 메뉴에 30g 이상의 단백질을 넣을 정도로 운동러에게 특화된 식단 브랜드죠. 이쯤 되면 짐박스는 그냥 헬스장이라기보다는 운동하는 사람을 종합적으로 타겟하는 헬스케어 기업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거 같습니다.
놀랍게도 서플라이스는 2024년 매출 400억에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매출도 매년 2배 가까이 성장했고요. 아니 헬스장 프랜차이즈가 어지간한 스타트업보다 나은 실적을 내고 있다니. 대체 뭘 어떻게 한 걸까요.
2. 짐박스는 뭘로 그렇게 벌었을까
서플라이스는 2019년 헬스장 프랜차이즈 ‘짐박스’를 런칭한 이후 매년 두 배에 가까운 매출 성장을 거듭해 왔습니다.
게다가 꾸준히 흑자까지 내고 있는데요. 오프라인 기반 비즈니스가 이런 성장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니 대단하죠. 감사보고서를 열어봤습니다.
2024년 발생한 387억의 매출 중에서 비중이 가장 높은 건 서비스매출(228억, 65%)입니다. 여기에 짐박스 월 구독료와 PT 매출이 포함되겠죠. 짐박스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서비스원가(137억)으로 원가율 60% 수준입니다.
(제품매출은 프레퍼스 제품 판매, 상품매출은 서플라이스 운동용품 판매, 수수료매출은 프레퍼스 로열티 등으로 보입니다만, 이 글에서는 주요 매출인 서비스매출에 집중합니다.)
월 구독료와 PT 매출의 비중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데이터에 기반해 추정해 볼 수는 있습니다. 우선 2024년 7월 짐박스 MAU는 약 2.7만입니다.(안드로이드 기준) 물론 안드로이드에 한정된 숫자이고, 헬스장에는 '기부천사'가 많기 때문에 분명히 유료 회원 수보다 낮은 숫자일 겁니다. 그래도 일단 보수적으로 가정해서 MAU를 유료 회원 수로 두고, 구독료는 월 5만원으로 단순화해서 계산해 보겠습니다.
- 매출 추정치 1안: 월 구독료 162억, PT 매출 66억 (유료 회원 2만 7000명)
| 비용 | 전체 | 판관비로 빠지는 금액 | 서비스원가 관련 금액(추정) |
|---|---|---|---|
| 급여 | 6,227,907,000 | 1,861,170,967 | 4,366,736,033 |
| 퇴직급여 | 280,231,000 | 100,670,623 | 179,560,377 |
| 감가상각비 및 무형자산상각비 | 3,013,599,000 | 779,792,238 | 2,233,806,762 |
| 지급임차료 | 5,424,209,000 | 209,429,325 | 5,214,779,675 |
| 합계 | 11,994,882,847 |
한편, 서비스원가에서 주요 고정비를 빼고 남은 금액을 PT 수수료로 쳐서 역산해볼 수도 있습니다.
아까 서비스원가가 137억원이었죠. 여기에 포함될 만한 주요 비용은 매장 임대료인 지급임차료 52억, 운동 기구 및 헬스장 영업권 상각비인 감가상각비 및 무형자산상각비 22억, 인건비(급여+퇴직급여) 44억입니다. 그런데 짐박스는 트레이너들과 프리랜서 계약을 맺기 때문에, 이 인건비는 트레이너가 아닌 매장 스태프에게 지급하는 비용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137억원에서 위의 모든 비용을 뺀 17억에 트레이너에게 제공하는 PT 수수료가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공고에 따르면 짐박스는 트레이너들에게 PT 매출의 50~65%를 정산해 줍니다. (참고: 짐박스 프리랜서 프레이너 모집 공고)
만약 17억 전체가 짐박스 트레이너에게 지급하는 PT 수수료라면, 짐박스의 PT 매출은 26억~34억 수준이 됩니다. 실제로는 17억에 다른 잡 비용도 포함될 테니 PT 매출이 더 낮다고 봐야겠지만요. 이걸로 또 다른 추정치를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
- 매출 추정치 2안: 월 구독료 194억, PT 매출 34억 (유료 회원 3만 2000명)
어느 쪽이든 유료 회원 2만 명에서 3만 명대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매출 구조가 구독료 중심임을 확인할 수 있죠. PT 수익보다 구독료 기반 수익이 압도적인 구조라는 건, 짐박스가 신규 회원을 지속적으로 잘 유입시키고 있다는 의미로 보이는데요.
5년차 헬린이인 제가 보기에도 짐박스는 숱한 헬린이들에게 어필할 만한 요소가 많아 보였습니다. 헬스장판 유니클로를 지향하는 브랜드랄까요.
3. 초보자를 위한 플랫폼, 짐박스
(1) 초보자를 위한 낮은 문턱
짐박스의 가장 큰 특징은 월 구독제와 전용 앱입니다. 애플리케이션에서 바로 등록과 결제를 할 수 있고, 멤버십은 1개월과 1년 단위만 있습니다. 사실상 월 구독이 기본값인데요. 헬스장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큰 장점입니다. 상담 직원에게 장기 결제나 PT를 권유받는 부담도 없고, 미리 가격을 알고 고민해볼 수 있으니까요.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헬스장 시장은 가격을 잘 공개하지 않는 ‘깜깜이 시장’입니다. 실제로 저도 집 근처 헬스장에 전화를 걸어서 가격을 알아볼 때마다 ‘방문해야만 가격을 알려줄 수 있다’면서 버티는 경우를 많이 보았으니까요. 짐박스가 내세우는 강점도 바로 이 ‘가격의 투명화’입니다.
그렇다면 짐박스의 구독료는 비싼 편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통’입니다.
헬스장 월 이용료는 등록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월 6~7만원 선입니다. 단기간 결제거나 비싼 편이면 월 10만원, 장기간 결제거나 싼 편이면 3~4만원 선까지도 내려가는 정도죠.
그리고 짐박스는 아래와 같이 세 종류의 멤버십을 제공합니다. 단, 운동을 다니는 사람은 대부분 개인락커와 회원복을 이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래의 기본 금액에 개인락커와 회원복 금액까지 더해서 계산하는 게 정확합니다.
(아래의 표는 플래그십 지점인 짐박스 강남점의 가격표를 기본으로 작성하였으나, 짐박스는 거의 모든 매장의 구독료가 동일합니다.)
| 멤버십 | 구독 BASIC | 구독 PRO | 365일 PASS |
|---|---|---|---|
| 금액 | 월 43,900원 | 월 53,800원 | 360,000원 |
| 입장 가능 횟수 | 1일 1회 | 무제한 | 1일 1회 |
| 이용 가능 지점 | 1개 | 모든 지점 | 1개 |
| 개인락커 (별도) | 월 9,900원 | 월 9,900원 | 120,450원 (365일 기준) |
| 회원복 (별도) | 월 3,000원 | 월 3,000원 | 36,500원 (365일 기준) |
| 합계 | 월 56,800원 | 월 66,700원 | 516,950원 (월 43,079원 꼴) |
비용을 더해 보면 베이직은 5만 6800원, 프로는 6만 6700원으로 6만 원 안팎입니다. 연 구독권은 월 4만 원대 수준이네요.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쁘지도 않은 가격대입니다. 특히나 불필요한 상품 권유를 당하지 않을 수 있고, 어느 지점이든 시설이 평타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죠.
PT 가격도 기본 6만 6000원으로 평균 수준입니다. 역시 앱에서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요. 짐박스에서는 다른 회원들의 ‘생생한 리뷰’를 보고 원하는 트레이너를 ‘직접 선택’ 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어필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실제로 한 트레이너로부터 PT 20회, 다른 트레이너와 PT 상담 1회를 진행해 본 결과 딱히 만족스러운 느낌은 아니었는데요. (저는 짐박스에 다니기 전까지 트레이너 선생님을 다섯 분 만나보았습니다) 현직 트레이너에게 짐박스 트레이너 자리가 어떤 느낌인지 물어보고 나니 그 이유가 조금은 짐작이 갔습니다.
그 트레이너는 짐박스의 트레이너 계약은 말 그대로 ‘프리랜서 계약’이고, 조건도 평범한 편이라서 실력 있는 트레이너라면 굳이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들려주었습니다.
일단 프리랜서 트레이너들은 짐박스에서 제시하는 수수료 50%보다 낮은, 회당 1~2만원 수준의 대관료를 헬스장에 주면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고요. 헬스장 소속 트레이너라면 기본급에 인센티브(수업 수수료)를 일정 비율 섞는, 보다 안정적인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짐박스 프리랜서 계약은 수익 구조 면에서는 큰 장점이 없는 거죠.
물론 짐박스에서 트레이너가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짐박스의 회원 풀에 접근할 수 있고, 앱에서 투명하게 정산을 받을 수 있으며, 매출 압박을 받지 않고 유연하게 수업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경력이 길고 평판 좋은 트레이너를 적극적으로 데려오기 위한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이제 막 고객 풀을 늘리려 하는 트레이너에게 더 매력적인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헬스장을 고를 때 실력 있는 트레이너의 존재까지 고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짐박스 PT가 매력적이지는 않을 텐데요. 애초에 그런 ‘하이엔드’ 운동러들은 짐박스의 타겟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근본적으로 초보자들이 많이 오는 짐박스의 특징 자체가 ‘고인물’들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하니까요.
즉, 짐박스는 가격은 물론 운영 면에서도 철저히 헬스 초보자들을 타겟으로 두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데요. 이러한 대중적인 선택이 성공해서 신규 회원들이 진입장벽을 느끼지 않고 잘 유입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어디를 가도 평타 이상인 시설
이쯤 읽었으면 저를 향해 의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운동한 지 5년이고 PT를 그렇게 많이 들었으면서 무슨 헬린이냐, 하고요. 그런데 놀랍게도 운동의 세계는 넓고 헬린이를 졸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건 짐박스가 초보자를 타깃하지만 동시에 중급자까지도 회원으로 묶어둘 수 있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인데요. 바로 시설입니다.
헬스장을 알아볼 때 위치와 가격이 확인된 다음에 하는 일은 바로 시설 체크입니다. 실제로 방문해서 스쿼트 랙은 몇 개인지, 프리웨이트 존은 넓은지, 자주 쓰는 머신들은 충분히 많은지 등을 확인하죠. 저는 브랜드까지는 안 보지만, 기본 구색은 중요하게 봅니다.
제가 다니는 짐박스는 스쿼트 랙 4개에 스미스머신이 2개나 있었고, 프리웨이트 존도 5~6명은 넉넉하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습니다. 사람들의 선호도가 높아서 대기자가 많을 법한 머신들도 2대 이상씩 설치되어 있었죠. 등록한 지 1년이 넘은 지금도 시설에 대한 불만은 크게 없습니다. 머신 수리가 잦기는 하지만, 프리웨이트로 대체하면 되니까요.
실제로 평을 찾아본 결과 대부분의 짐박스 매장은 시설에 관해서는 호평이었습니다. 강남 짐박스 1호점이 더럽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기는 했지만 이건 오퍼레이션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즉, 낮은 진입장벽에 좋은 시설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게 짐박스가 주는 핵심 가치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짐박스가 체계화를 추구하는 헬스장이라고 느꼈습니다. ‘PT의 수준’이나 ‘헬스장의 분위기’ 같은 정성적인 것들은 투입 비용과 효과를 관리하기 어렵지만, 시설은 투입 대비 효과가 명확하니까요. 이렇게 어느 지역의 짐박스 지점에서든 평균 이상의 시설을 기대할 수 있다면, 다른 헬스장들의 기대 효용이 불명확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짐박스를 선택할 만합니다.
안정적인 퀄리티와 무난한 가격대의 조합. 하이엔드 소비자보다는 대중적인 소비자층에 과감하게 집중하는 전략. 이 조합이 짐박스를 헬스장 계의 유니클로 같다고 느끼게 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3) 1인 가구&운동 인구를 공략하는 입지
짐박스는 오프라인 매장 기반으로 성장한 만큼 입지 전략도 흥미롭습니다. 이조차도 핵심 상권에 집중한 출점으로 최근 실적 반등을 만들어낸 유니클로와 닮아 있죠. 특히 두 가지 포인트가 눈에 띕니다.
첫 번째는 신림~강남 라인에 집중한 초기 출점 전략입니다. 짐박스는 2019년 신림에 4개 지점을 집중적으로 오픈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서플라이스 천인섭 대표가 서울대학교 출신인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또한 이 지역은 2030 1인 가구 비중이 높고,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헬스장 비즈니스에 유리했죠.
실제로 짐박스는 ‘관악구 운동메카’를 표방하면서 신림에서 강남 사이의 2호선 라인을 중심으로 지점을 꾸준히 늘려 왔습니다. 그 결과 ‘신림에서 강남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에게는 짐박스가 강력한 장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는데요. 'PRO 멤버십'을 통해 신림의 ‘집 앞 헬스장’과 강남의 ‘회사 앞 헬스장’을 동시에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게도 신림 라인을 접수하다시피 하고 나서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고 있는 지금도 주로 홍대, 건대, 성신여대 등 젊은 1인 가구가 많은 지역으로 진출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확실하게 2030 운동 인구를 고객 페르소나로 잡고 집중하는 모습이죠.
두 번째는 프레퍼스와 연합해 ‘서플라이스 존’을 형성하는 전략입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프레퍼스는 모든 메뉴에 30g 이상의 단백질이 들어가는 건강 식단 브랜드입니다. 그런데 운동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운동 직후에 가장 중요한 건 즉시 단백질을 공급하는 일입니다. (헬스 칼럼 아님)
저 역시 트레이너에게 그날 PT를 받고 나서 굶을 예정이라고 말했다가 진심으로 잔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운동을 하고 나서 바로 헬스장 근처 샐러드집에서 닭가슴살 샐러드를 먹는 습관이 생겼는데요.
정말 무섭게도 제가 다니는 짐박스 바로 옆에는 프레퍼스 매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 같은 사람들은 ‘서플라이스 존’ 안에서 운동도 하고 식사도 꼬박꼬박 하는 겁니다.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를 운영하는 기묘한님은 이 이야기를 듣더니 ‘병원 앞 약국’ 같은 모델 아니냐고 하시더군요.(…)
찾아보니까 이런 식으로 짐박스와 프레퍼스가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위치한 구역이 8곳, 한 동네에 있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10곳 정도 있었습니다. 헬스장 이용객을 타깃으로 프레퍼스 매장의 고정 고객으로 만드는 구조이겠죠.
‘헬스장 옆 샐러드집’의 장점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두 브랜드의 출점 과정을 찾아보면 재미있는 흐름이 하나 있는데요.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짐박스는 초반에 신림에 집중해서 지점을 늘렸습니다. 하지만 프레퍼스는 처음부터 신림에 한정되지 않고 수도권의 보다 다양한 지역에 지점을 냈는데요. 자연스럽게 프레퍼스가 먼저 지점을 냈던 구역에 짐박스가 뒤따라 지점을 내는 케이스들이 생겼습니다.
생각해 보면 프레퍼스는 소규모 자본으로 빠르게 확장할 수 있고, 짐박스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 데다가 직영으로만 운영됩니다. 따라서 서플라이스는 짐박스 지점을 내는 데에 보다 신중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만약 서플라이스가 프레퍼스로 해당 지역에 건강 식단을 소비하는 고객층이 존재하는지 파악하고, 확실한 수요가 있다고 판단될 때 짐박스를 뒤따라 출점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 거라면? 짐박스 매장의 ‘흥행률’은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4. 대중화와 리텐션, 병존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5년차 헬린이이자 1년차 회원 입장에서 본 짐박스의 성공 포인트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헬스장과 음식 프랜차이즈라는 어려워 보이기만 하는 아이템을 들고도 빠른 성장을 보여줄 수 있었던 데에는 역시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짐박스는 무엇보다도 운동 초보자인 동시에 2030 1인 가구라는 고객 페르소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공략한 기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짐박스 앱에 ‘커뮤니티’ 기능이 붙어서 회원들끼리 운동 챌린지를 함께하면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드디어 ‘운동’ 분야에서 제대로 된 버티컬 플랫폼이 나오는 걸까 하는 기대도 생깁니다.
물론 짐박스가 명확한 고객 페르소나를 집중 공략한 만큼 반대급부도 존재합니다. 짐박스에 대해 알아보는 과정에서 현장의 트레이너나 운동 매니아들에게 짐박스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의견을 다수 들었는데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운동 초보자도 환영하는 대중적인 헬스장인 만큼, 헬스장의 ‘물’을 중요시하는 마니아들에게는 매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니까요.
서플라이스의 창업자가 보디빌딩 동아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피트니스 대회에서 입상까지 할 정도로 전문적인 인물이었음을 고려하면 꽤나 의외입니다. 다만 이는 짐박스가 기업으로서 스케일업이 가능한 방향을 선택한 결과라고 봅니다. 어느 분야든간에 마니아들은 유니클로 같은 SPA 브랜드의 타겟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업에 대한 애정으로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서플라이스는 똑똑하게 피해간 셈입니다.
다만 이런 질문은 분명히 남습니다. 구독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기업으로서 가장 중요한 ‘팬’은 어떻게 만들고 또 붙잡아 놓을 것인가. 그저 새로운 사용자가 흘러들어오기만 하는 것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가 없으니까요. 서플라이스도 이 점을 알기 때문에 ‘커뮤니티’ 기능을 추가한 것일 텐데요. 휴먼 터치를 최소화한 지금의 운영 방향성으로 커뮤니티가 저절로 자라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어쩌면 서플라이스의 다음 과제는 대중성과 리텐션이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가치를 모두 잡은 채로 성장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어려운 과제에 어떤 해답을 찾아낼지, 저도 짐박스 출석 도장 찍으면서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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