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지만 존재만으로 살아가도 좋은 인생

2025.04.05.(土) : 제2호

2025.04.05 | 조회 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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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대로

흘러가는 일상에서 생경함을 기록합니다

얼마 전 김혜자 배우님의 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 영상이 제 유튜브 알고리즘에 떴습니다. 그의 다소 경직되고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메세지는 '삶은 한낱 꿈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수상 소감은 배우님이 출연한 드라마 <눈이 부시게> 한 장면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김혜자 배우님은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의 일부임에도, 위로가 필요한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본을 찢어와 읽었다고 합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꽃이 피기 전부터 부는 달큰한 바람,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드라마 <눈이 부시게> 대사 中

비록 작가의 말을 빌렸지만, 덧없는 인생을 아름답게 표현한 이 대사는 지금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가 국내외 호평을 받으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각박한 현대 사회에 위안을 주는 드라마가 다시금 삶의 소중함과 행복을 느끼게끔 해주는 것 같습니다. 새삼 한국 문화의 저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역설적으로 힘들고 고된 삶을 도피하며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하는 것에 매몰되어 가는 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쉬었다는 청년이 50만 명에 육박하며, 이대로 가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만큼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청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대학원 수업으로 '쉬는 청년'에 대해 조사해 보며 정부와 유관기관의 정책을 살펴봤을 때도 이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외 사례를 살펴봐도 대부분 눈에 띄는 정책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아무리 양질의 일자리를 만든다 해도, 결국 그 문턱은 턱없이 높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는 점점 더 괴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불공평해지고 남과 비교하며 뒤처지지 않으려는 행태(行態)가 만연해진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나답게 살기 위해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Just Exist(그냥 존재하기)' 그냥 나로서 존재해도 괜찮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는 너무 긍정의 과잉에 파묻혀 쉽게 피로해지고 지쳐버렸습니다. 삶은 광활한 바다와 같지만 헤엄을 쳐서 목표까지 가기 위해선, 때론 쉼도 필요하고 무의미함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너무 깊이 고민하며 살아왔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는 대한민국 헌정의 역사를 새긴 날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자축하기도 하지만, 극심한 국론 분열과 갈등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국민은 두 갈래로 갈라져, 마음에 남은 상처와 절망은 쉽게 회복되지 않은 채 가까스로 봉합된 것에 불과합니다. 한편으론 우리가 얼마나 위태로운 정의의 기반에서 버텨왔는지를 느끼며, 이를 반드시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권력은 십 년은 못 가고 활짝 핀 꽃도 열흘을 가지 못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영원한 권력과 아름다움은 없고 언젠가는 쇠하기 마련이라는 말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만큼 덧없는 삶과 무상함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됩니다. 

봄은 왔지만 아직도 추운 겨울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올해엔 매화와 벚꽃이 같은 시기에 폈다고 합니다. 매화는 보통 '봄을 여는 꽃'으로 한겨울에 눈을 맞으며 핀다고 해서 '설중매(雪中梅)'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엇나가는 기온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매화와 벚꽃 그리고 목련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지만, 엇나간 기온만큼이나 엇나간 우리의 삶을 반추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렇듯 분홍빛 봄, 푸른 여름, 노을녘 가을, 소복한 겨울의 사계절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저 살아가는 대로 살아지는 대로 그렇게 살면 될 것 같습니다.


2025.04.05.(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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