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생일로 바꿔보라

변칙이 되살려주는 생일의 즐거움

2024.10.05 | 조회 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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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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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 커뮤니티의 글쓰기 프로젝트

미경님에 이어서 다음 글쓰기 타자가 되었습니다. "재밌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기"를 목표로 이틀간 글을 작성하고, AC2분들께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개인 블로그에도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부터 휴리스틱, 방법론 등을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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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정글 환타지아’라는 실내 놀이터에서 했었다. 딸기 케이크와 닭강정을 나눠 먹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러나 누구의 생일 파티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초대를 받았다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내향형(I) 99%의 인간에게는, 생일에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심판장에 끌려가는 느낌이 든다. 거절할 수는 없고. 선물을 준비하려고 해도 좋아하는 건 모르고. 말을 건네기도 어려워 파티장 구석의 트램폴린에서 뜀만 뛰었다.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기 전에 ‘생일 축하해’를 외치는데 영혼을 담을 수 없었다.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생일의 무거움을.

즐거움에서 멀어진 생일

친구는 업무에 지쳐 집에 돌아와서야 오늘이 생일인 것을 알았을 때 비참해졌다고 했다. 중요한 날을 잊었고, 일년에 하루 있는 날을 남에 의해 써버렸다는 슬픔.

언제부턴가 생일은 즐거움에서 멀어졌다. 장난과 폭력 사이에서 선을 타는 생일빵 때문에도 있지만, 그보다는 모두에게 생일이 지키지 않으면, 잊어버리면 안 되는 날이 된 것 같다. 만약 남에게 축하를 한 번이라도 받으면, 다음번 남의 생일에는 내가 축하를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지루한 꼬리잡기가 시작된다.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가서,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는 생일의 무거움을 알았노라 말했다. 그러자 부모님은 어디 아프냐, 맞고 왔냐, 밥 안 먹으려고 투쟁하냐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딱 하나 물어보셨다. 너는 생일이 어땠으면 좋겠냐고.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웅얼웅얼 답을 했다. 그러고는 며칠 뒤에 부모님은 “우리 집은 앞으로 음력 생일로 지낸다”고 선포했다. 그때 처음으로 달력의 작은 글씨가 음력이라 불리는 무언가라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불편하기만 했다. 학교 친구들에게 매년 생일이 바뀐다고 말했더니 거짓말쟁이로 몰렸다. 가족들이 작년과 달리 올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할 때는 어린 마음에 욱해 미웠던 적도 있다.

그러나 10년 넘게 음력 생일을 지내보니, 음력 생일이 생일을 가볍고,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걸 느낀다. 심지어 설파하고 싶어졌다. 음력 생일은 우리가 잃어버린 생일의 본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도 권유해보려고 한다. “음력 생일로 바꿔보라.”

음력 생일로 바꿔보라

음력은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양력과 다르게,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기에 날짜가 매년 다르다. 음력 생일을 지내게 되면 매년 날짜가 바뀌기에 기억할 확률이 낮아진다.

그렇기에 음력으로 생일을 지낸다는 것은 축구에서 날렵한 공간 창출을 하는 것과 같다. 빈틈없이 꽉 찬 마음과 시간에 공간을 만들면, 그 자리에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시간이 만들어지며, 잠시 잊었던 감사함을 되찾게 해준다.

어제 먹었던 것이 기억나지 않으면 치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나는 별 탈 없이 지나갔기 때문에 기억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일을 기억의 강박에서 놓아주자. 모르다가 알게 되면 마치 기분이 좋아진다. 까먹어도 기분 나쁘거나 서운하지 않을 것이다.

‘까먹음’이 가져다주는 나비 효과도 있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니 남도 기억을 못 한다. 선물을 받지 않으니 남에게 선물을 바라지 않게 된다. 생일빵을 맞지 않았으니 남에게 생일빵을 때리지 않게 된다. 즉, 눈치를 보며 이어지던 꼬리잡기의 사슬을 끊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주어졌을 때, 사람은 비로소 감사함을 느끼고 베풀 수 있게 된다. 생일의 의미에는 축하 이전에 감사함이 있다. 태어난 것에 대한 감사함. 지난 1년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함. 그러나 현대 사회의 관계 속에 붙잡혀 지내다보면 정작 엄마에게 전화 한 통 하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나는 눈 비비고 일어났더니 부모님의 생일 축하를 듣고 그제야 생일을 알았던 적이 많다. 매년 바뀌는 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 그가 얼마나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음력 생일이 벌어다 준 여유와 시간을, 당신의 선택으로, 소중한 사람과 쓸 수 있게 된다. 나는 보통 생일에 가족과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눈다. 부디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음력 생일은 당신을 뜻하지 않게 낭만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보통 음력은 계절의 절기, 손 없는 날 등 의미를 갖는 날에 쓰인다. 그렇다면 이런 대화도 가능할 것이다.

누군가 당신의 생일을 물어볼 때, ‘O월 O일입니다’라는 말은 뻔하고 지루하다. 대신 ‘가을이 시작되는 날(입추)’이라고 대답해보자. 물론 상대방은 당황하며 당신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오래 알고 지내게 된다면, 매년 낙엽이 질 무렵에 상대방은 당신을 떠올릴 것이다. 꽤나 낭만적이지 않은가?

생일의 의미를 다시 회복할 때

“이번 생일에는 뭐 먹을까?” 엄마의 문자에 곧 생일이 다가옴을 알았다. 엄마에게 어릴 적 음력 생일을 지내기로 정했던 이유를 물었다. 나도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하지 않았다.

엄마도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서도, 하나 말해준 것이 있다. 축하를 해주든 받든, 행복하게 고민하며 골랐으면 좋겠다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생일이란 무엇인가. 나는 주기적인 죽비라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감사를 표현하며 살았나. 나는 얼마나 남을 가볍게 대하지 않았는가. 이를 회고할 수 있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

의무감에 시달리는가. 축하를 당한다는 느낌을 받는가. 그렇다면 음력 생일로 바꿔보라. 단순히 날짜를 바꾸는 것을 넘어, 생일의 의미 자체를 돌아보고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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