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언니

마음이 전달되는 사이로 지내고 싶은 관계

2024.04.26 | 조회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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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괜찮다

<같이 써요, 책> 챌린지에서 만난 여러 명의 작가들이 써내는 매일의 일상을 공유합니다.

내가 주변에 언니라고 부르는 몇 안되는 사람 중에 윤언니가 있다. 윤언니와의 만남은 내 아이가 겨우 100일 남 짓 되었을 때였다. 그 당시 SNS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꽤 잘 컸다고 생각되는 아이를 키우는 집에는 이 브랜드의 전집이 꼭 하나씩은 있었다. 내 아이가 책에서 답을 찾는 아이로 커가기를 바랐던 나는 마치 이 전집을 사서 읽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마치 내 아이도 좋은 방향으로 자라나게끔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전집의 가격은 무려 200만원 대였다. 우리는 외벌이인 남편의 월급으로만 생활하고 있어서 이 책을 구매하자고 선뜻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나는 2주 정도 책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수없이 고민한 후에 남편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첫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같았기에 고민하던 남편도 며칠 동안 망설이다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남편을 동행해서 그 전집을 구매하러 서적에 방문했다. 윤언니는 그곳에서 전집을 판매하는 한 사원이었고 그렇게 우리는 고객과 사원으로 만났다.

남편은 전집계약서를 쓰면서 윤언니에게 한 가지 물어보았다.

저희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방법을 알고 싶은데 혹시 우리 집에 와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나요?”

가만히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거절하기 딱 좋은 부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윤언니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승낙했다.

그럼 3개월 동안 2주마다 갈게요. 제가 일이 많아서 못 가는 날이면 최소 한 달에 1번은 방문해서 읽어줄게요!”

보통 판매만 하는 사원과는 다르게 돌아온 대답은 정말 파격적이었다. 계약서에는 최소 한 달에 1회 방문.’ 이라는 문장까지 써주었다.

언니는 약속대로 나의 아이와 함께 해주었다. 우리집에 언니가 오는 날이면 나는 너무 기다려졌다. 어질러져 있는 집도 치우고 잠이 오는 시간인지 아닌지 아이의 컨디션도 잘 맞추려고 노력했다. 내 무릎에 작은 아이를 앉혀서 아이는 아주 편안하게 두었다. 이미 두 아이를 키워본 엄마였던 언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노련하게 해결하며 짧은 20~30분 동안 책놀이를 함께 해주었다. 그러다가 가끔은 이 책 우리 예원이한테 정말 많이 읽어주던 책인데.’ 하며 언니의 추억담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약속된 기간이 끝나가면서 우리는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어 보였다. 늘 나는 아이와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냈고 윤언니는 밖에서 바쁘게 일을 하는 직장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락은 끊겼고 1년 넘게 만나지 않다가, 작년 연말 내 휴대폰 화면에 다시 윤언니라는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언니는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전집 판매는 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번 보고 싶다는 말이 나는 너무 반가웠다. 연말에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그 한 해를 보내면서 생각나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고마웠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났다. 언니가 전집을 판매 일을 그만두었기에 고객과 사원의 관계에서 동생과 언니의 사이로 바뀌었다. 그날 함께 시간을 보낸 후에 우리는 또다시 SNS상에서만 소식을 아는 정도로 지냈다. 이 언니와 나는 정반대 성격이라서 아주 크게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서로를 생각한다는 것은 또 서로가 알고 있다. 내 아이의 생일날에 언니가 나에게 손편지를 써주며 내 선물을 사준 날을 잊지 못한다. 아이가 태어난 날은 엄마가 된 위대한 날이라면서 나에게 선물을 준 것이다.

며칠 전 언니의 SNS에서 언니 아버지의 위독함의 소식을 알았다. 그 때도 평소처럼 다른 연락은 하지 않았고 힘을 내라는 의미로 SNS상에서 하트만 눌러서 나의 감정을 표현했다. 언니가 올린 게시물을 보면서 나의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갔었던 그때의 슬픔이 다시 느껴졌다. 그런 윤언니가 오늘 아침에 유독 더 생각이 났다.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꼭 다 전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곧 이 말 자체가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이 되어 그냥 내 생각으로만 남겼다. 마음 한 켠이 아리고 이상했다. 언니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평소 같았으면 생각이 나더라도 아주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 언니라서 전화를 건다는 것이 머뭇거려졌는데 오늘은 용기를 내고 싶은 날이었다. 통화를 받는다. 00:00에서 00:01로 숫자가 바뀐다. 나는 언니!”하고 불렀다. 잠시 적막감이 있다가 언니가 이렇게 얘기한다. “어떻게 안거야? 알고 통화를 한거야?” 그 순간 나는 그냥 언니가 생각나서요. 언니가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을 되찾으셨지만 오늘 윤언니의 아버지는 아니셨다. 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휴대폰 넘어로 쏟아냈다. 나는 그저 듣고 있었다. 이 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도무지 들리지 않았는데 재차 물어볼 수 없었다. 그냥 목소리만 듣다가 전화를 끊었다. 가끔 사무치게 보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누군가가 떠오르면 잠시 그 사람과 함께했던 순간들을 떠올린 채로 추억에 머물러 있기만 한다. 휴대폰으로 그 사람에게 전화 버튼을 누르면 어쩌면 그리움이 즐거움으로 바뀔 수도 있을 일인데 전화를 거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 된다. 인연이 또다시 끊기더라도 언젠가 다시 이어지는 날이 오기를 그렇게 마음이 전달되는 사이로 지내고 싶다.

 

 

글쓴이 : 권민지 spdlqjwtmj@naver.com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권민지는 '나'의 삶에 집중합니다. 온전한 '나'를 찾기 위해서 좋아하는 일들을 하나씩 도전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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