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상하이로 가고 있는 비행기에서 편지를 쓰고 있는 예또야.
분명 비행기를 타기 전까진 기절할 것 같이 피곤했는데 이상하게 두세 시간 자고 나니 눈이 말똥해졌네. 그게꼭 남는 시간엔 편지를 쓰라는 계시인 것 같아서 그렇게 따르고 있는 중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한국은 날씨가 갑자기 많이 추워졌었다는데 감기 걸리지 않게 항상 조심하고.
젊다고 눈길, 빙판길 방심하지 말고. 바깥은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절대 잊지 말고!
열흘이 지나 다시 순간예또가 발행되는 날이 왔네.
아, 맞아.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알아챘겠지만 창간 때 ‘월간예또’였던 이름이 ‘순간예또’로 바뀌었어.
열흘에 한 번씩 발간되는데 ‘월간’이라는 말을 쓰는 게 여간 찜찜해 다시 파고들어봤더니 글쎄 열흘마다 발간되는 발행물을 지칭하는 ‘순간’이라는 말이 있지 뭐야.
순간(moment)과 동음어인 것까지 완벽하게 맘에 들어서 바로 바꿔버렸어.
그러니 이젠 이 편지들을 ‘순간예또‘로 기억해 줘.
구독자와 내가 글로서 하나 되는 이 ’순간‘도 꼭 기억해 줘.
나는 이집트의 다합에서 머무른 총 18일의 시간들이 아직도 찰나같이 느껴져.
나는 원래 위아래를 잘 따지는 사람이 아닌지라 보는 사람에 따라 친화력이 매우 좋게 느껴질 수도, 혹은 아주 예의가 없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람이거든.
그런 철부지 막내였던 나에게 오히려 내 덕분에 서로 편해질 수 있었다고 말해줬던 언니, 오빠들에게 너무 고마워.
아량 넓은 그들 덕분에 그동안 맘껏 깝죽대고 땡깡부리고 장난치고 웃을 수 있었거든.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그렇게 맘 편히, 그리고 그렇게 큰 소리로 남 눈치 보지 않고 입을 되는 데까지 크게 벌려서 웃어본 적이 생에 몇 번이나 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너무 좋은 사람들과 꿈처럼 행복한 시간들이었어.
장기간의 여행 경험으로 새로운 만남과 이별에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이별은 생각보다 여운이 매우 깊게 남네.
아마 한동안은 청춘 그 자체였던 다합에서의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
완벽에 가까웠던 그 모든 순간들과 추억들을.
나는 귀국하는 길에 상하이에 들러서 오래된 친구를 만날 예정이야.
대학교 동문이었던 중국인 친구인데 나보다 두 학년이 높았던 그 친구가 졸업한 후로 보질 못했으니 못 만난지 10년 가까이 되었겠네.
같이 도서관 가서 시험공부 하자며 게으른 나를 이끌어주고, 중국어를 가르쳐 주고, 여러 가지 잔소리도 해주던 그 친구가 지금은 상하이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전혀 예측이 안 돼.
내가 그 애에게 가르쳐 준 건 술집 가서 노는 방법, 마음에 드는 여자 꼬시는 방법, 시험기간에 마음 부담 내려놓고 놀 수 있는 방법(...) 같은 거 밖에 없는데...
걔 기억 속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도 예측이 안 된다.
어리숙한 대학생이었던 우리가 어엿한 사회인이 된 모습을 보며 우린 서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역시 새로운 만남만큼 설레는 만남은 오래된 인연과의 재회가 아닌가 싶어.
그 사람의 기억 속의 내 모습에서, 그리고 내 기억 속의 그 사람의 모습 속에서 우린 서로 또 무언가를 배우게될 테니까.
조금은 낯선 모습으로 마주앉은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생각만 해도 벌써 설레는 기분이야.
혹시 최근에 일상생활을 하다가 ‘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같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
나는 있었어. 그것도 한 세 번 정도.
다합에서 나는 프리다이빙을 배웠어.
프리다이빙이란 산소통 없이 스노클 하나 물고 물속에 들어가서 깊게 잠수하는 법을 배우는 운동인데 다합엔 이 프리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고.
인도에 가서 요가 한 번 해보지 않으면 아쉽듯이 다합에서도 다이빙 한 번 안 하면 아쉬울 것 같아 이리저리알아봤는데, 우리 쉐어하우스 매니저 오빠를 통해 알게 된 언니가 딱 다이빙 강사이지 뭐야?
그래서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그 언니를 통해 다이빙을 배우게 됐어.
참고로 나는 수영을 전혀 못해. 오리발을 껴야 앞으로 조금 나아갈 수 있는 수준이야.
온몸에 힘을 풀고 물에 떠있는 것도 안 되는 맥주병보다 못한 수준이다 보니 나는 프리다이빙을 배우면서 이겨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어.
우선 의지할 것 하나 없는 넓고 깊은 바다에 내 몸을 던지는 것부터가 첫 난관이었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정도의 깊은 수심과 일렁이는 파도, 귓가에 울리는 물소리 때문에 나는 자꾸만 흔들리려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무던히 애를 써야 했어.
나는 겨우 그렇게 바다에 던져놓아도 바로 죽진 않을 수준의 헤엄 스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거야.
그날도 그렇게 부담 없는 마음으로 언니, 오빠들과 펀 다이빙을 하러 깊은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물 밖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어.
앞서가던 버디의 물거품을 따라 열심히 발길질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른 턱에 찌릿한 느낌이 드는 거야.
한 번 찌릿했던 감각은 금세 따끔거리는 느낌으로 변해서 계속 나를 괴롭혔어.
놀란 마음에 통증이 느껴졌던 부위를 계속 만져봤는데 이상하게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가 않는 거야.
무언가 잘못됨을 느끼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빨리 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급한 발길질을 시작했어.
거기서부터 물 밖으로 나가는 몇 분 안 되는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어.
‘죽음’이라는 공포가 나를 점점 패닉으로 몰아가는 듯 했거든.
정황상 독 있는 해파리에 쏘인 것 같았는데, 나는 그때까지 해파리 독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했기에 정말 운이 안 좋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발악하듯 발길질을 하게 되더라.
다행히 마취한 것처럼 감각이 없던 턱은 두세 시간 정도가 지나니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더라고.
또 한 번은 ‘다이버들의 무덤’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블루홀에 다이빙을 나갔다가 독 있는 산호에 긁혀 다리가 따갑고 붉게 부어올랐을 때에도 비슷한 공포를 느꼈었고,
방금처럼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미친 듯이 흔들리고 덜컹댈 때에도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껴.
나는 항상 ‘언제든지, 지금 당장이라도 누구나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거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벌어지고 있는 불행이 언제까지나 나만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무탈은 곧 행복인 거고, 유탈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
이런 마인드로 살다 보면 좋은 점이 뭔지 알아?
삶에 대한 미련도, 기대도, 하물며 피해의식까지도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야.
또 언제나 당장 죽을 수도 있는 나를 위한 선택을 하게 되고 나를 먼저 위하게 돼.
내가 만약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내 지난 인생이 크게 아쉬울 것 같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야.
나는 언제나 나를 위한 선택을 하면서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거든.
그래서 오늘 정한 주제는 바로 ‘마지막’이야.
만약 오늘이 구독자의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구독자는 무엇을 하고 싶어?
만약 구독자가 곧 죽는다면 여태껏 해온 구독자의 선택 중에 어떤 선택을 바꾸고 싶어?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어? 또 어떤 사람들을 피하고 싶어?
오늘 하루는 한 번 무탈한 일상 혹은 유탈해도 별 탈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때?
그리고 길지 않은 우리 인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해보면 더 좋고.
내가 어렸을 때 깨달은 변치 않는 진리 중에 하나는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 곁에 있다.’는 말이야.
만약 구독자의 주변 사람들이 구독자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과연 구독자는 객관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 어떤 사람인지를 꼭 다시 생각해 봐.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향유하고 있는 내가 다합에서 좋은 사람들과 인연이 닿은 일은 과연 완벽한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서 나와 같이 감사한 마음으로 삶을 대하고 의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 곁으로 다가와 준거지.
모든 일에 완벽한 우연이란 없어. 오히려 허술한 운명에 더 가깝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 있어.
그런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뉠 뿐이지.
나는 이 세상에 누군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에너지가 같은 종류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끌어당기는 원리가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이 편지를 읽고 있는 구독자는 오늘보다 내일 더, 그리고 앞으로 더욱더 좋은 에너지를 끌어당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아무래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써야겠다.
그럼 잘 지내고 열흘 뒤에 또 만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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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즈니
지금껏 항상 눈치를보며, 내생활도 제대로 못챙기고 살아왔다면, 오롯하게 날 위한 선택과 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좋은글이야🧡 일단 나부터 챙기고 위해야, 다른사람을 돌아볼여유가 생기는것처럼! 곧죽어도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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