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열흘 만에 돌아온 예또야.
항상 해가 바뀌고 나면 바뀐 숫자가 익숙하지 않아 한동안 작년의 숫자를 쓰곤 했었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바로 2024라는 숫자에 적응이 되는 것 같네.
어쩌면 내 사주상 잘 풀리는 때가 2025년부터라는 말을 듣고 나서 그 해가 빨리 다가오길 재촉하는 마음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잘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와중에도 시간은 잘 흘러만 가네.
잘 살고 싶어서 부단히 노력하고 열심히 지내왔던 지난날들이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중요한 자양분이 되고 있길 바라.
나는 지금 이집트의 다합에 와 있어.
굉장히 소박하고 아름다운 동네야. 왜 이름이 홍해라고 붙었을지 모를 푸르른 바다 전경이 널따랗게 펼쳐진 곳이기도 하고.
원래 해외에서 한국인들과 함께 지내는 걸 선호하지 않는 나인데 이번에는 한국인 여행자들과 함께 쉐어하우스를 렌트해서 지내보기로 했어.
런던에서 중국인 친구들과 세 달 정도를 붙어 지냈더니 맘 편히 한국으로 떠드는 수다가 조금은 그립더라고.
런던으로 떠나기 전에 양양에서 반 년 정도를 머물렀을 때에도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는 못했으니 그냥 도란도란한 그 분위기가 그리웠던 걸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모두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둥글둥글한 사람들이라 너무 좋아.
총 남3 여3의 멤버 중에 내가 막내인데(언제부터인가 막내 취급은 언제나 기분이 좋더라?) 다양한 직종,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있어.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과 예술 계통에 몸담고 있는 사람,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과 쉬는 걸 좋아하는 사람, 말이 많은 사람과 잘 들어주는 사람,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과 설거지가 더 편한 사람의 비율이 조합만 바뀔 뿐 거의 반반이라는 사실도 신기해.
우리는 만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낯선 자들인데도 어느새 친한 친구보다도 편안히 속마음을 덤덤히 털어놓고 있더라고.
오히려 다음 만남이 기약되지 않은, 1회성으로 끝날 수도 있는 만남이 주는 특질이 우리의 마음을 편히 만들어 준 게 아닐까 싶어.
도박과도 같은 만남이었는데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편안히 머물다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참 기쁘다.
음... 이번 편지의 주제는 응당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되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 참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더라.
분명 주제가 주어지면 할 이야기는 많을 텐데 뭔가 와닿는 무언가가 없는 거야.
샤워를 하면서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바다에서 수영을 하면서도 두 번째 편지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지 고민했는데 결국 편지를 쓰는 이 순간까지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어.
마감기한은 다가오는데 내일부터는 다이빙 자격증 수업을 들어야 해서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일단 오늘 눈뜨자마자 이렇게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도망을 친 거야.
그리고 이렇게 막연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어. 아,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사랑이라는 게 참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주제이고, 쉬우면서도 어려운 이야기잖아.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때나 느낄 수는 없는 것이기도 하고.
내가 지금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쉬이 쓸 수 없는 이유가 요 근래 나의 일상 속에서 사랑을 특별히 느끼고 있지 못해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혹은 다른 고민 때문에 사랑이 크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인 것도 같고.
그러면 우리 ‘필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여태껏 생각해왔던 변화, 책임, 기대 같은 단어가 아닌 한 번도 고려해 보지 못한 단어가 갑자기 튀어나와버렸네.
역시 가끔은 충동적으로 저질러버리는 일이 해결책이 될 때가 있다니까.
사랑의 필요성.
구독자는 네 인생에 사랑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해?
사랑이 그렇게 필요한 이유는 뭐야?
혹은 사랑이 그 정도밖에 필요하지 않는 이유는 뭐야?
사랑이라는 게 요즘에는 참 많은 단어로 대체될 수 있는 것 같아.
누군가에게는 ‘관심’일 거고, 누군가에겐 ‘소통’, 누군가에겐 ‘양보’ 그리고 누군가에겐 ‘희생’일 수도 있을 테니까.
구독자가 생각하기엔 어떤 단어가 사랑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구독자가 그렇게 가장 사랑하는 대상은 뭐야?
나부터 대답할게. 나는 살아가는 데에 사랑이 아주 많이 필요하고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느낌은 내가 궂은일에 지쳐 쓰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사랑 없이 인생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단언컨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어.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이 세상은 시작되고 존재하는 거거든.
우리 모두는 각자 내 우주의 주인공이니까.
사랑을 내 방식대로 정의하자면,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나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할 일이 많은데도 굳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굳이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 마음을 쓰고 걱정하는 것,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며 감정을 소모하는 것도 사랑이 없다면 굳이 하지 않을 일들이니까.
그리고 이러한 사랑들은 ‘사랑받은 기억’에서부터 비롯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호의를 받기도 전에 베푸는 것을 터득할 정도로 이타적인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사랑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야.
사랑의 원천이 되는 그 기억들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그로 말미암아 타인을 사랑하는 법,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깨우칠 수 있거든.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 기억들을 공평하게 가지고 있진 않아.
누군가는 그 기억이 너무 부족해서, 누군가는 그 기억이 너무 과도해서 문제를 일으키곤 하지.
물론 전쟁통과 그 이후의 경제 급성장기에 인생의 성장기를 보낸 현대의 한국인이라면 과도한 경우보단 부족한 경우가 더 많겠지만 말이야.
우리 아버지는 애 징징대는 소리 듣기 싫다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보는 것을 싫어했지만, 나는 오은영 박사님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유튜브 클립으로 종종 찾아서 보는 어른으로 자랐어.
그 영상들을 보는 동안 나는 그곳에 나오는 사람들의 입장에 공감해 보려고 노력하곤 해.
보통 그곳에 나오는 성숙하지 못한 부모들은 그들의 성숙하지 못한 부모 밑에 학대당하며 컸을 확률이 높고, 그 부모의 부모 또한 그랬을 거라는 게 방송에선 증명되지 않았어도 기정사실화 되어있잖아.
그만큼 성장기의 ‘사랑받은 기억’은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대를 이어 영향을 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인 거지.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모든 사람이 성숙한 부모 밑에서 태어날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런 사람들을 위해 사회에서도 성장기 때 받지 못한 ‘사랑의 기억’을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항상 고민했어.
여기서 눈치챘는지는 모르겠지만 [순간예또]는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희망의 메시지가 닿을 수 있도록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하나의 미약한 날갯짓이야.
모든 사람들이 조건 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거든.
나 여기까지 쓰다가 스스로가 약간 사이비 교주처럼 느껴져서 놀랐어...
하지만 절대 걱정 마. 나는 무교고 확실히 신보다는 나 스스로를 믿는 사람이니까. (최소한 도를 믿느냐는 소릴 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건 아니야.)
힘들 땐 종교의 힘을 빌리는 것도 나는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하는데,
내가 아닌 존재를 믿을 때에도 항상 0순위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인생의 주체가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인 인생은 외부 요인이나 변수에 의해 쉽게 무너질 수도 있거든.
항상 잊지 마.
인생의 주인공은 구독자고, 구독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이 우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나에게 있어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존재는 개를 포함하고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이거든.
그런데 얼마 전에 다합에서 룸메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어.
“너는 동물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어도 지금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동물들이랑 소통이 가능한 상황에도 그들이 인간과는 달리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
나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뜸을 들였어. 그리고 길거리에서 만난 떠돌이 개들과 우리 집에서 키우는 18세 말티즈 영감 마꼬와 대화하는 상상을 해봤지.
“누나, 나 진짜 배고픈데 그거 한 입만 주라.”
“아 왜 자꾸 나 자는데 괴롭히냐고.”
”누나 나 이번에 새로 나온 신상 간식 사주라. 이 밥 질려서 먹기 싫다고!”
갑자기 개들의 징징거림이 귀에 들리는 듯했어. 그리고 난 대답했지.
“와... 아니? 개가 싫어질 수도 있겠는데?”
우리는 소통을 해. 언어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표정과 몸짓을 통해 기분을 파악하지.
그렇게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표현하고 반응하는 것들이 살아남기에 유리했기에 이런 방향으로 진화를 했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해를 해. 내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지.
언어와 소통의 방식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우리는 영원히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는 없을 거야.
우리가 직접 그 누군가가 되기 전까진 말이야.
그래서 때로는 단순한 사고방식이 정답이 될 때도 있는 것 같아.
내가 말 못 하는 개들의 표정과 행동만 보고 ‘언제나 충실하고 사랑을 베푸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때로는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그냥 있는 그대로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도 내 정신건강을 위해 나쁘지 않다는 거지.
인간이 진화하기 위해 발전시킨 소통의 도구들을 오히려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현시키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야.
실제로도 내 주변을 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사는 사람이 스트레스도 덜 받고 매사에 긍정적인 편이더라고.
혹시나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 있을까 해서 굳이 한 번 얘기해 봤어.
(비록 나는 사랑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다음 편지가 도착할 때까지 구독자의 인생엔 사랑이 충만하길.
그리고 언제나 구독자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열흘 뒤에 다시 만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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