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量感)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책 <모순> p.15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책 <모순> p.17
최근 맛있는 걸 먹을 때, 사랑하는 연인의 웃긴 모습을 쳐다보고 있을 때, 이걸 위해 태어났구나 싶을 만큼 행복한 순간을 제외하고- 홀로 남겨진 나는 자주 우울했다. 왜일까. 생존에 위협도 없고, 응원해 주는 가족, 사랑하는 연인이 있어 감사해도 모자랄 삶인데 도대체 왜?
라고 생각했다가 이 문장을 읽으며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삶의 부피가 얇다. 인생의 볼륨이 너무나 빈약하다. 이러다간 언젠가 아끼던 것들을 모두 잃어버리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볼륨을 채워볼 무언가를 찾아보기로 한다. 이것이 5월의 유일한 다짐.
<내가 만약 소설가라면>
요즘엔 주로 소설을 읽고 있다. 대부분 에세이를 읽고 간간이 시집을 읽던 나에게 소설은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에세이란 완전한 논픽션, 소설 또한 완전한 픽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소설은 모든 게 새로워서 늘 끝까지 읽기가 어려웠다. 등장인물의 이름, 지역의 이름, 특징, 성격… 하나하나 눈 마주치며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일찌감치 포기하곤 했었다.
그러다 김영하 작가님의 <작별인사>와 이슬아 작가님의 <가녀장의 시대>, 정세랑 작가님의 <피프티 피플>을 읽으며 서네 시간을 한자리에서 보내며 엉덩이 근육이 뻐근해지는 경험, 책장을 넘기며 ‘와, 와’ 감탄과 끄덕임을 연발하는 순간을 겪어보니 사랑받는 소설은 한 번쯤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틀 전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을 다 읽고 덮을 때쯤, 문득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소설을 쓰신 작가님들은, 허구의 세계와 인물을 만들어내면서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걸까? 만약 내가 소설가라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꺼내고 싶을까..’
몇 권의 소설을 읽고 책을 덮을 때쯤 새로운 장면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소설을 써보는 일도 재밌겠단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황정은 작가님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으면서는 전심전력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모순>을 읽으면서는 내 인생의 볼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동시에 나도 모르게 지금의 내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24년 마지막 날까지 일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이직 준비를 하는 동안 외적/내적으로 생긴 변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시시때때로 변하는 답, 주말을 기다리게 만드는 애인과의 시간, 처음으로 몇 년, 몇십 년 뒤를 계획하고 그려보는 일 같은 것들.
코끝이 찡해지거나 눈시울 붉혀지는, 그러므로 조금 변해야겠다 다짐하는 그런 이야기를 차차 써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 좋은 음악, 좋은 영화는 강요하지 않고 은근하게 이런 식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이나 외적인 모습을 어떤 식으로든 바꿔서,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한 편이나 한 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백수인 내가 목수가 될지도, 주말을 함께 보내는 애인과 평일을 함께 보내게 될지도, 실컷 계획해둔 것들이 다 싫증 나 한순간에 모든 게 다 바뀌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이야기는 계속, 계속될 것이다.
나도 그럴 것이지만,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 만약 당신이 소설가라면, 세상에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월간 진심>은 읽고 쓰는 일을 함께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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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을 신경 쓰지 않은 글 등등 무엇이든 좋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글을 잘 써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저 편하고 즐겁게 써보면 어떨까요?
물론, 쓰고 싶을 때 쓰시면 좋겠습니다.
꼭 이곳이 아니어도요.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심진입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염려하며 인사를 보냅니다. 3월 18일 <1호>를 보내고, 지난주에 보내드리겠다 약속했는데 제가 목에 담이 걸려.. 며칠을 누워있었습니다. 목이 제 맘같지 않고, 타자를 못 치겠더라구요. 몇 시간 전까지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자리에 앉아봅니다.
요즘 제 글이 썩 마음에 들지가 않네요. 변명이지만, <2호>가 늦게 도착한 가장 큰 이유도 이 때문이고요. 그럼에도 계속 책상 앞에 앉아봤습니다. 써야만, 뭐든 계속 써야만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은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많이 늦어져서 잊어버리신 건 아닐까 염려하며…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몇 자 써봅니다.
첫 편지를 보내고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씀해 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계속 일을 구하고 있으며 불안해하다가 행복해하다가 애인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운동하고 잘 먹고 요가도 계속 다니고 있고요. 뭔가를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영어와 수영을 배워볼까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들에 대한 비하인드가 궁금하시다면- 블로그로 놀러와 주십쇼. (꾸벅)
날이 점점 더워지는 걸 보니 바뀌는 계절이 실감 나네요. 지난 편지에서 월간 진심은 3개월 동안 보내며, 그러므로 6월 종료될 것이라 예고해 드렸는데- 제가 게을러 늦어진 관계로 여름 내내 함께하지 않으려나 싶습니다. (저는 오히려 좋아요) 계속해서 좋았던 것들을 부지런히 경험하고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또 한없이 게을러질 것이라는 걸 알기에 다음 편지는 미리 도착 날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5월 28일 수요일, <3호>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시는 여러분이 있어, 쓰는 제가 있습니다.
2025.05.12 (월)
부쩍 더워진 하늘 아래에서
심진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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