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5를 연타하다 보면

"원래부터 그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어요."

2024.01.14 | 조회 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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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푼수 단편선

조각 같은 우리들 이야기를 씁니다.

 ‘다시 한번 해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이미 겪어본 일이기에 마음먹는 순간부터 책임이나 용기가 배로 필요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하지만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문제가 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바로 그다음부터인데,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시작하는 방법조차 잊은 경우가 그렇다.

 “...... 선생님, 저는 며칠 전에 목발을 뗐는데요.”

 “알아요.” 물리치료사는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듯 대꾸했다. “수술 영상 확인했는데 문제없이 잘 처치됐던데요? 그럼 이제 열심히 재활 받아야죠. 안 그래요?”

 “물론 그건 맞는 말씀이지만, 전 아직 무릎도 잘 안굽어지는걸요.” 나는 양손을 오른쪽 허벅지 아래에 두고 다리를 겨우 받쳐 올리며 말했다. “계단 오르내리기는 아직 무리일 것 같은데.”

 “하기도 전에 겁부터 낸다니깐.” 물리치료사는 내 옆에 커다란 스텝박스-흔히 알고 있는 재활용 스텝박스보다 훨씬 크고 높이가 있었다-를 내려다 놓으며 대답했다. “스물넷이라고 안 했어요? 아직 반오십도 안 된...... , 이제 아니구나...... 아무튼. 젊은데 안 되는 게 어딨어요, 그냥 하면 되지. 이렇게 옆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도 있는데.”

 “응원이요?”

 “, 저는 보조가 아니라 응원해 주러 온 사람이라. 사실 물리치료라는 게 옆에서 북돋아 주는 거 말고는 크게 하는 일이 없어요. 굳이 비유하자면, 소리 좀 덜 지르는 헬스장 트레이너 선생님이라 해야 하나.”

 “맙소사.”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웃자고 한 소리였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전문가씩이나 되어서 무리가 될 법한 운동을 시킬 리는 없었고, 그렇다면 해내는 건 오로지 내 몫이었다. 다만 나는 기껏해야 계단 오르는 법 따위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럼 시작할까요? 가져온 사람 성의도 있으니까.” 물리치료사는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픈 다리를 박스 위에 올리고...... 그렇죠. 제가 앞에 서 있을 테니까 처음에는 제 어깨에 손을 짚고 올라가요.”

 “하기는 하는데...... 될지 모르겠어요. 하체에 힘이 안 들어가서.”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일어섰다.

 “천천히 열 개만 해볼게요. , 하나......” 마침내 왼발을 땅에서 떼자 아픈 다리로만 땅을 지탱하고 있는 모양이 됐다. 그 순간 무릎 주위의 모든 근육이 일제히 멈추는 느낌이 들어 반자동적으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애걔? 아직 반도 못 올라왔는데 왜 이러실까.”

 “...... 모르겠어요. 아프지는 않은데 한 발을 떼기만 하면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아요. 도저히 못하겠어요.”

 “다리는 전혀 문제없어요. 계단을 오르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얼마나 힘을 줘야 하는지 몸이 잊은 거예요.” 물리치료사는 내 허벅지를 한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될 줄 알았는데 택도 없으니까 무릎이 당황하는 거거든. 지금보다 훨씬 더 세게 힘줘야 해요.”

 “아니, 제가 무슨 잠들었다가 몇십 년 후에 깨어난 것도 아니고...... 계단 오르는 데 이 정도까지 힘쓸 일이라고요? 아닌 것 같은데......”

 “, 글쎄. 본인이 착각하는 거라니까. 원래부터 그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어요. 살면서 무뎌진 것뿐이지...... , 알았으면 현대 의학을 믿고 다시 한번 해봅시다. 이러다 날 새겠네......”

 나는 이러니 별수 없다는 심정으로 다시 일어섰다. 그렇게 다리에 힘주는 법과 무릎을 굽히는 법을 조금씩 터득했다. 그러다 마지막 열 개쯤 돼서는 물리치료사의 도움 없이도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게 됐다. 외투를 벗어두었지만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거봐. 하니까 되잖아요. 이제 감을 좀 잡으신 것 같은데?”

 “, ......” 나는 반쯤 넋을 놓은 채 말했다. 오랜만에 근육을 쓰기도 했거니와 계단 오르내리는 일이 이만큼이나 힘든 줄 믿기도 버거웠다. “......언제쯤이면 아무렇지 않아질까요?”

 “그거야 꾸준히 치료받고 운동하기 나름 아닐까요? , 오늘처럼 지레 겁부터 먹고 시도조차 안 하면 장담 못 해요. 그건 갓난아기들도 걸음마 떼면서 다 하는 건데. 아하하!” 물리치료사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놀리지 마세요.” 내가 투덜대며 대답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환자분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어요.” 물리치료사는 쓰고 있던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다리 낫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해서 굳이 잊을 필요는 없어요. 아파했던 기억이 있으니 멀쩡히 걷고 뛸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어쩌면 아무렇지 않아지는 건 불가능할지도 몰라요. 적어도 오늘부터 며칠간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바짝 긴장할 테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죠?” 나는 사뭇 진지한 투로 물었다.

 “어떻게 하긴요. 아무렇지 않다고 느껴질 때까지 열심히 오르락내리락하는 거죠. 어떻게 하는지는 오늘 가르쳐 드렸으니까.”

 모든 게 불과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리를 다친 일도, 다시 걸을 수 있게 되기까지 노력해온 일도, 사랑하던 네가 끝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 일까지. 병원을 나서면서 나는 실감했던 것 같다.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메시지를 작성했다.

 

 「날이 많이 추워졌네. 따뜻하게 입고 다니고, 감기 조심...... _

 

_

<새로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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