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아직 산마루에 걸려 있었지만 산속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주위로는 산짐승들이 어슬렁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늑대 밥이 되고 말 게 분명해 보였다.
"오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아." 뒤따르던 그레텔이 말했다.
"뒤꽁무니만 보고 쫓아오는 주제에 약해빠진 소리 좀 그만해. 네가 빵 조각만 제대로 뿌려놨어도 이렇게 헤매고 다닐 일은 없었어." 헨젤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길섶 구석진 곳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그러나 눈 씻고 찾아봐도 빵 조각은 물론 부스러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게 어떻게 내 탓이야? 난 분명히 말했어. 길에다 빵 조각들을 뿌려 놓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을 거라고. 어차피 얼마 안 지나서 짐승들이 다 먹어 치워버릴 텐데." 그레텔이 헨젤의 등에다 대고 투덜거렸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배부르게 먹기라도 할걸."
"짜증 나게 진짜......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야? 여기서 이렇게 불평불만만 늘어놓다가 얼어 죽자고?"
"아까 그 과자로 만든 집으로 가자. 여기서 멀지 않으니 금방 찾아갈 수 있을 거야."
"그건 절대 안 돼."
"아, 왜?"
"아빠 말씀 못 들었어? 이상한 사람 따라가지 말고 수상한 곳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하셨잖아. 보나 마나 우리처럼 길 잃은 아이들 잡아먹는 마녀가 살고 있을 게 뻔해."
"오빠는 그 인간 말을 아직도 믿어?"
"그 인간이라니. 말조심해, 너."
"오빠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엄마가 죽은 후로 나한테 아빠라는 사람은 없었어. 어디서 새로 데려 온 여자와 사랑에 빠진 한심한 남자가 있을 뿐이지."
"너는 진짜 철 좀 들어야겠다." 헨젤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지금 네 말은 아빠가 외도라도 했다는 거야? 아빠는 엄마랑 원하지 않는 이별을 한 것뿐이야. 아빠라고 안 슬퍼? 아빠는 계속 아프기만 해야 돼? 그래서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혼자 쓸쓸히 죽어가야 하는 거야?"
"......아, 짜증 나."
"넌 그냥 아빠를 인정하기 싫은 거야. 아빠가 우리 둘 먹여 살리겠다고 아등바등 노력해 온 일까지, 전부 다."
"그럼 뭐해. 결국에 우린 이렇게 버려졌는데. 피붙이들보단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던 거지." 그레텔이 비아냥거리며 대꾸했다. "오빠야말로 아직도 모르겠어? 우린 지금 길을 잃은 게 아니야. 완전히 버려진 거라고."
"너 좋을 대로 생각해. 난 돌아갈 거니깐."
"맘대로 해. 난 아까 그 과자로 만든 집에 가서 양녀가 되든지, 그게 아니라면 시중드는 하녀가 되든지, 알아서 할 테니깐. 적어도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오빠도 살길 미리 찾아두는 게 좋을 거야. 돌아가 봤자 다시 쫓겨날 테니까." 그레텔은 곧장 뒤돌더니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 헤매던 헨젤 앞에는 굶주린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늑대는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 수를 써 볼 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참에 먹음직스러운 살덩이 하나가 제 발로 나타난 것이다. 영리한 늑대는 헨젤을 곧바로 잡아먹는 대신 한 가지 꾀를 냈다.
'이 야심한 시간에 혼자 산길에 있을 리는 없고...... 분명 앞장 서거나 뒤따라오고 있을 누군가가 있겠지. 어디에 있는지 말하면 살려주겠다고 한 다음 이 아이부터 곧장 잡아먹고 다른 곳에 가면 되겠어......'
하지만 헨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늑대는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도 아니었고 더 치밀한 작전이 필요해서도 아니었다. 늑대의 마음에 걸린 것은 다만 딱한 동정이었다.
"잠깐, 동생이 어디로 갔다고?" 늑대가 믿고 싶지 않다는 듯 되물었다.
"과자로 지은 집. 왜?" 헨젤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낯빛이 어두워진 늑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무리 사는 게 팍팍해도 그렇지, 세상 말세로군...... 아무래도 너는 못 잡아먹겠다. 짐승 된 도리로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역시! 아빠 말씀처럼 거기엔 마녀가 사는 거였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헨젤은 괴로워했다.
"그렇지는 않아." 늑대가 대답했다. 그러나 헨젤의 귀에는 이미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젠장, 지금이라도 가서 구해야 하나? 아니지...... 어쨌든 선택은 그레텔 걔가 스스로 한 거잖아? 심지어 나까지 죽을지도 몰라. 아, 어쩌지...... 어쩌면 좋지, 정말......"
"야!" 보다 못한 늑대가 소리쳤다. "동화를 너무 많이 봤네. 마녀는 없어."
"......그래? 다행이네." 헨젤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거기엔 괴팍하고 볼품없는 영감 한 명뿐이야. 그래도......" 늑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페이는 셀 거야.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그렇다더라."
터덜터덜 멀어져 가는 늑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헨젤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나 곧 빵조각을 찾는 일에만 다시 열중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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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젤과 그레텔로 알아보는 가출 청소년 문제의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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