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말도 없이 앉아있기만을 이십 분쯤 하던 무렵이었다. 웬만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다 그렇겠지만 조용하다고 말할 수 있는 편은 아니었고, 즐거운 소란이 일어 마땅한 곳에서의 침묵이란 남들이 보기엔 유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서로 침묵하며 고독해지는 법밖에 몰랐다.
"나는 말이야." 한참을 고민하던 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누구보다도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고, 스스로 인정하려고 노력해왔어."
"......맞아, 그건. 나도 느끼고 있어." 나는 주위로 섞여드는 소음과 함께 대답했다.
"우리는 서운함을 느끼는 이유도 다르고,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도 달라. 심지어 싸우는 방식이며 화해하는 방법마저 다르지. 그래서 맞춰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나도 고민을 해봤는데." 나는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가 식도를 타고 온전히 흘러 들어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좋아하니까 싸우기도 하고 맞춰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아닌 것 같아."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네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에도 나는 서글픔에 갇힌 눈빛이며 흐느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건 아니고. 이제는 뭐랄까, 싸우고 맞춰가는 것 자체가 사랑이 되어버린 느낌이야."
"......내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가 자주 싸우는 건 문제가 아니야. 정말 문제라면 누구 한 명이 아무래도 상관없을 만큼 상대를 포기해버리는 경우겠지. 그게 아닌 이상 우리는 계속 싸울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사랑이 아니라는 듯이." 내가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 우리가 한 번 싸울 때마다, 또 서로 안 좋은 말들을 주고받을 때마다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파. 이렇게까지 아픈 게 사랑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가끔은 그런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당장 만난 지 일 년밖에 안 됐는데도 이렇게 싸워대는데, 우리가 결혼을 하고 그런 게 가능키나 한 지 모르겠어." 네가 앞에 놓인 유리컵을 만지작대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아니라 다만 각자의 커피 앞에 마주 앉아있던 것뿐일지 모른다.
"그래, 이렇게 싸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싸우지 않는 관계로 탈바꿈하는 일은 없을 거야.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게 아닌 이상은."
"맞아, 그걸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좀 슬퍼."
"......있잖아, 갑자기 생뚱맞은 얘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얘기해도 돼."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거든. 케이크는 아메리카노랑 퍽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나는 접시 위의 포크와 잔 속의 빨대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나는 곧 죽어도 단 걸 먹어야 사는 사람이라."
"아무리 그래도 딸기 케이크를 딸기 스무디랑 먹겠다는 건 무식한 거야." 네가 대답했다.
"알아. 그래서 아메리카노 시켰잖아. 대부분 이렇게 먹는 게 더 맛있다고 하니까..." 내가 못내 아쉬워하며 말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대부분'이라는 말만큼 웃긴 말도 또 없어."
"무슨 말이야?"
"이 넓은 세상에서 이제 막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나랑은 너무 달랐던 거지. 가치관, 성격, 그리고 디저트 취향까지."
"음." 네가 제법 고심하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온갖 '대부분'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는 거야. 사실 나와는 다른 점이 훨씬 더 많지만, 대부분 비슷하다고 믿고 싶은 거지. 그래도 끝까지 맞지 않는 부분은 어찌어찌 맞춰갈 수 있을 거라 스스로 기대하면서...... 대부분 그렇게 사는 것처럼 말이야."
"......스무디를 먹지 그랬어."
"아, 그거야......" 나는 남은 아메리카노를 마저 들이킨 다음 말했다. "이해해보려고 그랬지."
"어때, 여전히 아메리카노보단 스무디가 더 나은가?"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그래도 가끔 한 번씩은 먹을 만한 것 같은데."
"밉다. 스무디형 인간." 네가 옅은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푸념했다. "그래서 어떡할 거야? 결국 디저트 취향만큼은 합의를 못 본 게 오늘의 결론 같은데......"
"맞아. 그렇긴 하지만."
"하지만?"
"적어도 노력은 해봤잖아. 그래도 안 되는 건 그냥 내버려 두자. 그래도 괜찮을 거야."
"다른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사랑하려나?"
"대부분 그럴걸?" 내가 대답했다.
카페 밖으로는 언제 여름이 지났는지 선선한 저녁 바람이 불어 날씨가 꽤 시원했다. 이제 곧 낙엽이 지고 쓸쓸해질 테지만 우리로서도 여전히 사랑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모양이었다.
_
<여집합>
의견을 남겨주세요
ㅁ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채은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