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살고 싶은 구독자님에게
구독자님, 유난히 더웠던 여름, 잘 보내셨나요?
저의 여름은 바다의 격렬함 대신, 계곡의 조용함 속에서 흘러가는 대로 살았어요. 상류의 물처럼 맑고 투명했죠. 여름의 끝은 관성처럼 달의 극장에서 열렬히 맞이했어요.
무언가를 배우려면, 때로는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고 해요. 팔월에는 다양한 곳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물에 있는 것 같은 여름의 습기를 느끼며 밖으로 나갔어요. 바다 대신 산속을 헤매며 느린 마음으로 살아갔지요. 집에만 있었다면, 글만 쓰다 끝났을 여름이었겠죠.
매번 진하게 농축된 여름이 이제는 연한 색조로 보였어요.
모든 것이 버드나무처럼 유연하게 느껴졌어요.
편지를 쓰려고 팔월을 되돌아 보는데 갑자기 예전에 읽었던 책에 한 구절이 떠올랐어요.
이런 마음으로 끊임없이 많은 여행을 했던 것 같아요.
8월 3일~4일
1박 2일 동안 고등학교 친구들과 원주 신림에서 보낸 시간은 느리게 흘렀어요. 글램핑을 하며 직접 요리하고, 계곡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물놀이를 했어요. 과거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현재의 고민들을 나누면서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게 재밌게 놀았지요.
8월 10일~11일
오랜만에 할머니와 가족들이 모인 날. 할머니는 점점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있으셨어요. 기억을 잊어버리는 와중에도 어렸을 적 부르던 노래를 틀어드리니, 찡그렸던 할머니의 표정은 점점 활기를 띠었어요. 재롱잔치처럼 함께 노래에 맞춰 열심히 따라 부르고 춤추면서 할머니의 시간을 따라 함께 흘러갔답니다.
8월 15일~17일
강원도 인제에 갔어요. 인제의 밤하늘에 별과 반딧불이 반짝이는 가운데, 느린 먹거리에 대한 깊은 성찰을 했어요. 빠른 삶에 길들여진 저를 돌아보며,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이 더 값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느리게 요리하고 먹는 삶을 실천하고자 결심하기도 했지요. 저를 가꾸며 운동하는 삶도 함께 실천할 계획이에요.
8월 23일~25일
경북 상주에서 기성품이 아닌 직접 만드는 삶의 가치를 깨달았어요. 목공과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붕어빵 키링을 만들며, 다시 쓰는 삶의 의미를 배웠어요. 지역 사람들과의 대화와 공연을 통해 함께 하는 삶의 소중함을 느꼈어요.
8월 29일~31일
원주옥상영화제와 함께했습니다. 2층 안내데스크에서 관객들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스태프가 되었어요. 많은 관객들을 만났어요. 그 중 신기하게도 영화제에 놀러온 옛 친구들과 인사도 했지요. 영화제를 떠올리면 「연말상영」 시가 떠오릅니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과 숨을 나누는 게 너무 좋았을까요. 원주옥상영화제는 시작부터 벌써 8년째 함께하고 있어요. 여기에선 2017년, 2022년, 2023년에 뜻깊은 세 번의 생일을 보냈기도 했어요. 꿈같은 시간이었어요.
여름이 끝났습니다. 순간순간 멈추며 느리게 살아갔던 시간들이었어요.
구독자님도 느리게 살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보세요. 빡빡한 계획 대신, 여유로운 여행이 좋아요. 단 하루만이라도 소풍가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곳으로 떠나보세요. 멀리 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늘, 구월 이일에 편지를 보낸 이유는 제 생일에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생일만큼 안부를 쉽게 물어볼 수 있는 날도 잘 없더라고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구독자님의 근황을 아래의 생일 축하 편지에 남겨주세요. 구독자님이 너무 보고싶은 날이네요.
구독자님, 구월엔 어떤 다짐으로 한 달을 살아가실 건가요? 저는 매번 한 달 한 달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팔월을 요약하면 '사람'이 남았어요. 함께 느리게 사는 법을 배웠어요. 조급해하지 않고요. 구독자님도 마음 속 다짐이 지속되는 한 달이길 바랍니다. 환절기가 다가오니, 건강 잘 챙기시고 다채로운 가을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2024년 8월에
예빈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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