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A Lv. 1 합격 후기

내가 이걸 왜 시작했을까..

2023.10.19 | 조회 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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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생

99년 04월 10일 生, 20세기 끝물에 태어나버린 사람.

8월 말에 본 시험이 10월이 되어서야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다행히 합격. 하늘에 초월적인 존재가 계시다면 그 분께 모든 공을 돌립니다.

돌아보니, 시험에 도전해 합격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기억에 오래 남기고, 글도 오랜만에 하나 써 볼 겸 수기를 작성한다.

 

1. 고난과 역경의 시작

때는 바야흐로 2022년 4월.

2021년부터 이어진 언택트 학교생활은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해가 중천일 즈음 느즈막히 일어나 간단히 주워먹고 헬스장으로 향한다. 준비운동 좀 하다가 수업시간이 되면 zoom을 켜고, 이어폰에서 흐르는 감미로운 교수님의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어깨를 불태운다. 운동이 끝나면 집으로 설렁설렁 들어간다. 수업이 끝나면 딱 저녁 먹을 시간. 저녁 먹고 과제 좀 해볼까 건드리다가 에잇 안 되겠다 게임 몇 판 돌리면 금방 잘 시간.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켜서 유튜브 쇼츠를 이리저리 넘기다 보면 시간은 어느덧 새벽 3시를 넘기고, 밝게 빛나는 화면을 벗 삼아 스르르 잠든 나는 또다시 해가 중천일 즈음 기상.

일상에 변화를 주기로 결심했다. 이거 이렇게 살다가는 "한 번 사는 인생 빛나게 한 번 살아보자" 결심했던 내가 "이렇게 사는 인생은 한 번이면 족하다" 부르짖게 생겼다. 24년 한평생 주변에 엘리트들이 넘쳐나는 삶을 살았던 내게 단조로운 일상이 속삭인 달콤한 한마디는 바로 "공부하자". 때마침 부동산 관련 학회를 하면서 부동산금융 쪽에 관심을 갖던 차,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변에 공인중개사 준비해서 합격한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단기간에 바짝 준비하기에도 괜찮아보였다.

내 안에 숨어있던 반골의 기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공인중개사 따면 너무 커리어가 부동산 지향적으로 보이는 거 아냐?" "남들 다 하는 거 똑같이 할거야?" "그거 어디다가 써먹을건데?" 수많은 고민 끝 공인중개사보다 범용성이 조금 더 넓은 자격증을 찾기에 이르렀는데, 홍대병 중기? 정도 앓고 있는 내게 CFA가 눈에 들어왔다. "제 2의 수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공인중개사 시험보다 훨씬 더 쿨해보이는 시험이었다.

200만원에 육박하는 시험료는 부담스러웠다. 실패의 비용으로는 상당히 가혹한 편에 속한다. 그렇기에 진입하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것은 내게 장점이었다. 많이들 안하는 건 내가 해봐야지. 호기롭게 진입한다. 비싼 패딩 하나 장만했다 생각하자.

 

2. 이거.. 불가능하겠는걸

관성이란 강력하기 그지없다.

CFA 도전해보겠다 결심한 이래 책도 사고, 인강도 결제했다. 공부하기 위한 준비는 끝이 났는데 문제는 나다. 내가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 공부를 해보기로 마음먹자 단조롭게 보내던 하루가 달콤한 휴식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침대와 게임의 늪. 이 정도면 일상을 행복하게 보내려면 시험 하나 정도 결제해놔야 할 것 같은 느낌. 이제 공부 좀 시작해봐야겠다 싶으면 중간고사가 다가왔고, 중간고사 끝나니까 머리가 지끈거려서 조금 쉬었더니 금방 또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벼락치기 신공으로 기말고사를 어떻게 또 마무리해보니 어느새 다가온 종강. 핸드폰을 보니 벌써 6월은 막바지에 다다랐고, 막연히 멀게만 느껴졌던 8월 말은 어느새 성큼 다가와있었다.

이야 이거 큰일났다.

이거 8월 말까지 달리지 않으면 가망이 없어보인다. 종강한 그 날 집 앞 스터디카페를 등록하고 매일 출근하기로 마음먹었다. 스터디카페에 출근하기 시작한 첫 1주일은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내려서 9시까지 스터디카페에 출근하고, 더 이상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 공부를 하다가 녹초가 되어 12시가 넘어 퇴근했다. 하지만, 1주일이 지나자 분위기도 익숙해졌겠다, 슬슬 태만해지기 시작했다. 밥 먹고 산책 좀 하면 2시간이 지나있었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핸드폰을 좀 봤더니 2시간이 지나있었다. 나를 감시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회계사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친구와 함께 노량진의 독학재수학원을 등록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까지 출석하고, 저녁 10시까지 공부하다가 집에 오는 일상의 반복. 몸과 정신이 점점 피폐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두 달만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는 생각과 요즘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만족감은 충분히 이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2달 간 이렇게만 달리면 합격이 머지 않았다! 기차야 달려라.

 

3. 이게.. 아닌데?

시대와 공간을 꿰뚫는 불변의 진리가 몇 있다. 그 진리가 무엇인지 안다고 해도 이를 쉬이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8월이 되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나는 공부를 하다가 나른함을 이기지 못해 학교 커리어 홈페이지를 들어가게 된다. 평소에 심심하면 가끔 들여다봤던 차라 그렇게 특별할 건 없었다. 재밌는 인턴 자리 없나 둘러보다가 한 번쯤은 일해보고 싶었던 컨설팅 펌의 프로젝트 인턴 공고를 맞닥뜨렸다. 혹시 나중에 쓸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만들어놨던 레쥬메를 넣어보고 싶은 강한 충동이 나를 사로잡았다. 공고를 열어 기간을 확인하니 프로젝트는 8월 중순부터 시작하는 듯 보였다. 8월 말에 있을 시험이 걸린다. "어차피 안 되겠지, 레쥬메나 한 번 넣어보자," 3달 전 마지막으로 열어봤던 레쥬메 파일을 열어, 빠르게 손을 한 번 보고 전송 버튼을 누른다. 딸깍.

이왕 하나 지원했으니 기세를 몰아 2개 정도 더 지원해보자. 여기서 일해보면 시험 떨어져도 미련 없다 싶은 곳들 2군데를 더 지원했다. "에이 안되겠지"란 마음과 "제발 됐으면"이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판단이 무엇일까. 다른 지원자들과 다르게 나는 인턴이 떨어지면 돌아갈 자리가 확실했다. 붙으면 너무 좋지만, 안 붙어도 그만이었다. 원래 내가 하던 몫을 충실히 계속 해나가면 된다. 결과에 절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내가 지닌 비교우위다. 결과에 초연해지기로 마음먹고, 지원했다는 사실조차 잊자는 마음가짐으로 다시금 공부에 몰입해보기로 했다.

이틀 후, 지원한 3곳 중 2곳에서 메시지가 왔다. 서류 전형에 합격했으며, 차일 중으로 전화면접을 할 예정이니, 가능한 시간대를 알려달라는 메시지였다.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이틀 전 초연하리라 다짐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다. 드디어 이 지루한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건가!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면접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시작한다. 컨설팅 펌에서 일했던 선배에게 도움을 청해 guesstimation도 연습하고, 급하게 손봤던 이력서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며 하루가 지나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면접을 조졌다. 예상과는 다른 질문과 엇나가는 답변들의 향연이었다. 혹시나 했던 마음이 역시나로 변하는 순간. 그래 무슨 인턴이야... 원래 하던 거나 열심히 하자. 두 번째 면접 시간이 다가와도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30분 전이 돼서야 정신을 차리고 1분 자기소개도 열심히 머릿속에 넣어보고, 이력서도 다시 훑어본다.

어랏, 이번 면접은 분위기가 좋다. 약간 버벅이긴 했지만, 질문들에 대한 답변도 평이한 수준으로 대답한 것 같다. 내게 흥미를 느끼시는 것 같지만, 지금 이 포지션에 지원한 사람이 못해도 50명은 될 텐데..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자가진단을 내린다. 더 열심히 준비해서 나중에 다시 지원해봐야지. 메모장을 켜서 15분 동안 오고 갔던 질문과 답변을 곱씹으면서 드는 생각들을 정리한다. 내가 아까 한 답변을 이렇게 보완하면 더 좋겠네, A처럼 생각하는 것보다 B처럼 생각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꺼내 메모장에 정리하고 나서 다시 한 번 쭉 훑어보니 오 좀 그럴 듯하다. 남들에게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차피 한 번도 안 볼 사람인데, 아까 면접 해주셨던 사람한테 한 번 보내볼까. "오늘 면접 내용 관련해서, 면접 후 생각을 좀 더 해봤습니다."로 시작하는 문자를 작성했다. 눈 딱 감고 전송. 나는 최선을 다했다. 다시 공부하러 돌아가자.

같이 공부하자고 꼬셔놓고 이리저리 나돌아다녀서 미안하다,, 😢
같이 공부하자고 꼬셔놓고 이리저리 나돌아다녀서 미안하다,, 😢

 

4. ... 내가 어떻게?

문자를 보낸 지 1시간이 좀 넘은 시각. 방해금지 모드로 되어 있던 핸드폰에 어딘가 익숙한 번호가 부재중 전화로 떠 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켜서 아까 문자 보낸 번호를 보니, 그 번호가 맞다. 부리나케 전화를 다시 걸었다.

8월 중순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당연하죠. 지금 달려오라고 해도 갑니다.
메시지 온 건 알고 계셨지만, 면접이 방금 끝나 못 읽어보셨다고 하셨다. 메시지의 내용이 합격의 이유는 아니었구나. 안도감과 함께 기쁨이 몰려왔다.

CFA Lv.1을 합격하지 못해도 될 이유가 생겼다. 업무 강도 빡세기로 소문난 컨설팅 업계에서 인턴하면서 공부하기는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200만원이나 주고 등록한 게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8월 중순부터 출근할 거니까 좀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든 순간, 독재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는 친구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 최선을 한 번 다해보자. 최선을 다해보고 어쩔 수 없어서 포기하는 것과 미리 손을 놓아버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다르다. 

책상에 앉아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출근 이틀 전까지 독서실에 출근해 내 몫을 다했다. 남은 진도를 쭉 훑어보니, 이번 달 말까지 잘하면 1회독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5. 좌절

출근한 지 1주일이 지났을 시점, 나는 깨달았다.

직장생활과 공부는 양립이 불가능하다. 적어도 내게는.

출근 전에는 막연히 직장생활과 공부는 양립이 가능, 아니 오히려 꽤 할 만 해 보였다. 학교 다닐 때 등교해서 수업 듣고 독서실 가서 자습하듯이, 18시까지 일하고 집 와서 공부하는 게 전혀 이상하거나 힘들어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세상 일은 직접 경험해 본 것이 아니면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 내 환상이 출근 첫 날부터 깨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첫 날은 심지어 18시에 정시 퇴근했는데도, 집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이거 출퇴근의 에너지 소모가 등하교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수동적으로 수업을 듣는 것과 능동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 또한 에너지 소모의 측면에서 그 차원이 다르다. 직장 다니면서 퇴근하고 운동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고, 주말에 자기계발은 다들 어떻게 하시는 건지.. 내 주변 직장인들이 새삼 대단했다.

4일 차부터는 22시 퇴근 확정에 5일 차부터는 내게 할당된 업무량이 "이거 새벽까지 해도 못하겠는데" 싶은 수준이 되었다. 첫 직장부터 쉽지 않네..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일을 하면 금세 22시가 넘어간다. 그나마 일이 잘 맞아 다행이었다. 내게 맞지도 않은 일을 이렇게 하라면 단명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을 가면 공부할 생각이 정말 1도 들지 않을 뿐더러, 가아아아끔 가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머리가 돌지를 않아 상당히 문제였다. 

시험을 3주 가량 앞두고 주말에 골똘히 생각을 해봤다. 이렇게 하다가는 시험은 무조건 탈락하게 생겼고, 나는 200만원을 날리게 생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CFA Institute에서는 1회에 한해 시험을 연기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물론 자본주의의 끝판왕 미국의 사설 기관 시험답게 그 권리는 400달러 상당의 금액으로 구매 가능하다. 부모님과 함께 이리저리 고민한 끝에 결정한다. 시험을 미루자.

 

6. 달콤한 나날들

시험을 내년 8월로 미룬 나는 이제 거리낄 게 없었다. 미래의 내가 책임지겠지 뭐.

그 날 부로 책은 전부 창고 한 편에 박아두고 시험에 대한 생각조차 기억의 그늘진 모서리에 고이 박아두었다. 머리 깨지는 금요일을 보내고 맞이하는 주말은 그야말로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이래서 직장인들이 다들 토요일, 일요일만을 보고 사는구나.

내게 주어진 1년의 기간 동안 나는 인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프랑스 파리로 6개월 교환학생까지 야무지게 다녀왔다. 파리에 가서 공부를 해보겠다고 야심찬 마음가짐으로 교재를 3~4권 정도 캐리어에 넣어 갔지만, 7월에 파리에 놀러온 친구가 내 책을 보고서는 "너 왜 아직도 챕터 1 보고 있어?"라고 물어봤다. 친구야 그거 언어폭력이야. 그리고 책 총 5권이고, 나 그래도 1권은 훑었고, 그거 두 번ㅉ.. 읍읍

변명은 이만하면 됐다. 솔직히 파리에 6개월 간 체류하며 공부하기란 참 쉽지 않다. 여행도 다녀야 되고, 맛있는 거 먹으러 이리저리 다녀야되고, 눈에 최대한 많이 담고 이것저것 경험도 많이 해야되는데,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나. 혼자 합리화하며 7월 말이 다가왔고, 무거운 마음을 안은 채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직 정신 못 차린 듯 (몰타에서)
아직 정신 못 차린 듯 (몰타에서)

 

7. 고난의 1개월

한국에 도착한 나는 이제 250만원을 날리게 생겼다. 

부모님께도 더 이상 핑계를 댈 거리가 없다. 부모님이 지원해주신 덕분에 프랑스에서 기깔나게 놀았는데, 그게 이유가 되어 시험에 떨어지는 사실 자체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죄송했다. 최소한 한 달은 정신을 바짝 차리리라,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을 보이리라 마음먹었다. 하룻밤을 종일 새며 비행기에서부터 시차 적응을 대충 해 둔 덕분에 도착하자마자 시차 적응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귀국한 당일 날 밤에 짐 정리를 대충 해두고, 귀국한 다음 날부터 학교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CPA를 준비하는 친구와, 행정고시 2차를 준비하는 친구와 함께 매일같이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주말 중 하루는 그래도 쉬어야 할 것 같아 도서관이 아닌 다른 경치 좋은 곳에서 설렁설렁 공부하고, 나머지 6일은 도서관으로 아침에 출근해 23시에 폐관 종이 울릴 때까지 공부했다.

함께 공부한 친구들! (맨 오른쪽 제외. 얘는 공부 안 했음)
함께 공부한 친구들! (맨 오른쪽 제외. 얘는 공부 안 했음)

1개월 간 공부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깨달은 점이 몇 가지 있다. 

1) 나는 분위기를 많이 타는 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있어야 공부를 열심히 한다.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면 약발이 조금 떨어지고, 어느 정도 친한 사람들이 나를 감시하듯 주위에서 자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야 그 기세에 함께 뛰어들어 공부하는 느낌. 여자친구랑 공부하는 거랑은 다르다. 여자친구랑 공부하면 집중이.. 안 되는 편..^^

2) 나는 단기기억력이 확실히 우세한 편이다.
   장기기억력으로 가면 사실 답이 없어지는 편. 어제 공부한 건 그래도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반면 3주 전에 공부한 건 기억이 전혀 안 난다... 그래서 매일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리추얼처럼 하루 전에 공부한 것을 한 번씩 훑었다. 특히, 공식은 너무 기억이 안 나길래 그냥 계속 눈에 덧바르듯이 매일 여러 번 보기를 반복했고, 결과적으로 시험장에서 공식이 기억이 안 나서 못 푼 문제는 한 개도 없었다. 물론 글을 쓰는 이 시점에서는 대부분 까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님.

3) 공부만 시작하면 공부 빼고 다 재밌다.
   잡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 힘들었다.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책은 또 왜 이렇게 재밌는 건지. 평소와 다르게 독서가 너무 재밌어서 이 참에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보지 않고, 책을 펴서 읽어보자는 나와의 약속을 하나 만들었다. 한 달에 책을 5권 넘게 읽는 나를 보며, 이 정도면 책을 좀 읽기 위해 평소에 시험을 뭐 하나라도 등록해놔야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4) 공부량 총량 보존의 법칙 - 평소보다 일찍 와도 아무 소용 없다.
   오래 앉아있으면 마음은 편하지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 새벽같이 일어나 8시에 도서관에 도착해서 공부해봤자 12시 점심 먹기 전까지는 졸면서 효율이 극도로 떨어진 공부를 하게 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급한 걸 아는 성격이라서 그런 듯 하다. 아점을 먹고 도서관에 12시에서 13시 사이에 출근해, 저녁 시간 포함 2~3번 정도 굵직굵직하게 쉬면서 23시까지 공부하는 루틴을 지켰다. 집에 도착하면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샤워를 하고 나와 나른하게 늘어져 쉬며 01시~02시 사이에는 자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8시간 정도의 수면시간이 보장되는데, 이게 나에게는 피곤하지도 않고 딱 좋았다. 13시 정도에 도착하면 하루가 벌써 꽤 많이 지났다는 생각에 조급해져 좀 더 집중하게 되고, 절대적인 공부량도 아침에 일어나서 어영부영 꿈뻑꿈뻑 졸면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많아 보였다. 남들 다 하는 대로 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이에 맞춰 타임 플랜을 짜는 것이 몸도 지키면서 마음도 지키고, 효율도 높이는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인 듯 하다. 

 

8. 결과 및 마무리

   공부를 하면서 쳤던 2번의 Mock Exam에서는 전부 합격선에 아깝게 미치지 못한 수준의 점수가 나왔다. "와 이거 간당간당하게 붙거나 떨어지겠는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덕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울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돕고, 집에서 먹을 것을 챙겨와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액땜했기 때문에 오히려 좋아"라는 마음가짐으로 1개월을 살았다. 당시 장마철이라, 학교 정문에서부터 도서관으로 오는 길에 화단에서 나온 지렁이들이 여럿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보도로 나와 있었다. 주변에 있던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지렁이들을 전부 화단으로 다시 보내줬다. 길을 걸으며 전동 킥보드가 쓰러져 있으면 길가에 다시 세워놓았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입간판이 넘어져있으면 다시 세워놓았다. 다 내게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생각으로, 행동 하나하나에 좀 더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았더니 기분도 좋고 마음도 여유로워진 느낌. 어쩌면 이 마음가짐이 합/불합의 여부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후회없이 노력한다면 안 될 게 없지 않을까 싶다. 

250만원짜리 메일
250만원짜리 메일

   CFA Lv.2를 시작할까 고민이지만,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더 이상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어서, 진지하게 진입을 고민하는 중이다. 후,,, 인생 쉽지 않네

   한편, 요즘 내 마음 한 모퉁이에 존재하는 고민 중 하나는 내가 현재 갖고 있는 타이틀과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 사이의 괴리감이다. 내 이력서에 있는 타이틀들이 과연 내 분수에 맞는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겠다. 내실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하는 순간 도태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능력치를 열심히 올려야겠다. 

   그동안 현생이 바쁜 관계로 글쓰기를 잠시 쉬었지만, 짬짬이 시간 내서 꾸준히 올려볼 생각이다. 이 글을 완성하는데 거의 1주 반 정도 걸렸으니, 글 하나 쓰는데 꽤 오래 걸리긴 하는 듯. 하지만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복기하며 얻는 인사이트도 있고, 과거의 경험을 글로 옮기는 행위 자체가 뭔가 허공에 손을 훑으면 이따금 잡히던 것들을 눈에 보이는 것들로 치환해 어디 한데 모으는 행위로 느껴져 간만에 쓸모 있는 짓을 하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 암튼 그렇다. 

 

자 이제 중간고사 준비하러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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