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디트에 이런 제목의 글을 적었다. ‘감히 말하건대 충무로의 미래’. 사실 제목은 내가 아닌 에디터 분이 붙인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본질적으론 내가 감히 충무로의 미래라고 느껴지는 10인의 신인(급) 배우를 선정한 것은 맞다.
글에 그 선정 이유를 나름 그럴듯하게 평론가인 척 적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그건 다 거짓부렁이라고 봐도 무방한 말들이다. 이 배우들이 좋고, 계속 보고 싶고, 응원하고 싶었던 건 딱히 큰 이유가 없었다. 난 그 배우들이 그냥 좋았고, 다음 연기가 그냥 또 보고 싶었던 것이었으니까. 얼마 전 화제였던 청룡영화상의 김혜수 배우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었다. 김혜수 배우가 청룡의 권위와 어울리는 배우인 이유를 대체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여태껏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퍼포먼스가 있으니까요, 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데, 생각해 보면 이 말 역시 ‘그냥’이랑 똑같은 말이다. “김혜수가 출연한 영화를 한 번 봐보세요. 그러면 그냥 느낄 수 있어요.”인 셈이니까.
영화도 비슷하다. 이 영화가 좋은 이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더 어렵다. 우선 순서부터 반대다. ’이 영화가 좋은 이유’가 영화에서 보여서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내가 영화를 보는 바로 그 순간에, 좋은지 안 좋은지가 결정된다. 좋았다면, 아니 좋았으니까, 상영이 끝난 후 <이 영화>의 좋은 이유를 찾는다. 그런 의미에서 무언가를 좋아하는 행위는, 곧 나 자신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찾아가다 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알게 되고, 그렇게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많이 선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자세한 글은 여기서 읽어주시고..!
10명의 배우 중 한 명에 관해 특별히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다. 그는 내가 올해 부산영화제 GV 진행을 통해 만나게 된 배우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유수빈이다. 얼마 전 국민 예능 런닝맨에 출연했을 정도로 나름 인지도를 갖고 있는 배우인데, 난 솔직히 <D.P> 시즌2를 보기 전까진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었다. 거기서 정말 재수 없는 이등병 연기를 훌륭히 보여줘서 기억하고 있었고, 이번에 보게 된 드라마 <거래>에서 또 맛있게 연기를 해서 기대할 만한 배우라는 생각을 갖고 GV에 임하게 되었다.
그 GV에는 총 다섯 명의 게스트가 참석했었다. 작품의 감독, 그리고 출연한 네 명의 배우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자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배우 유수빈의 태도였다. 무슨 질문을 받던 유수빈은 다른 그 어떤 배우들보다(내가 진행한 모든 GV에 참석한 배우들 포함) 큰 목소리로 답변을 이어나갔었기 때문이다. 단순 목소리가 큰 게 좋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큰 목소리가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텐션을 끌어올려 주는데 도움을 줬다는 점에서 너무 좋게 느껴졌다. 다른 배우들의 태도가 나쁜 게 아니었는데도, 유수빈 배우가 그 상영관에 퍼뜨린 긍정적인 에너지가 압도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때 얻은 좋은 기억을 꼭 어딘가에 말하고 싶었었는데, 이렇게 기고 글을 통해 그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겨서 좋았다.
[개봉작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괴물>을 드디어 봤다. 좋다 좋다 말은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왜 좋다 좋다인지 알 수 있었다. 그걸 알 수는 있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는 그렇게 압도적으로 좋게 느끼지는 못했다. 평균 이상의 좋은 작품은 맞으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베스트는 아닌 느낌이다. 씨네21 별점 평에 적은 것처럼 ‘잘하는 걸 재차 잘 해내버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재차’ 잘 해낸다는 건, 일평생 한번 잘 하는 것만큼 어렵고 괴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재차는 재차라고 생각. 난 재차보다, 첫차(?)가 좋다. 그래서 <괴물>보다는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라고 생각하는 <괴인>이 더 좋다. <괴인>은 이정홍 감독의 데뷔작이다.
<괴물>의 명장면은 역시 엔딩이다. 느낌적으론 세상 전부를 리셋 시킬 정도의 대홍수급 비바람이 몰아친 다음, 주인공 미나토와 요리는 자신들의 노아의 방주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우린 새로 태어난 걸까?”라고 누군가가 말하자, 다른 누군가가 “그런 일은 없는 것 같아.” 답한다. 짧은 대화를 마친 둘은 달리기 시작한다. 새로 태어나진 않았지만 새로 태어난 듯, 그게 너무나 기쁜 듯 소리치며 수풀 길을 달린다.
카메라도 그런 그들과 함께 달린다. 저 먼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거나, 전방에서 그들의 앞길을 막지 않는다. 마치 그들의 친구처럼. 재밌는 친구의 뒤를 쫓아가는 것 같은 위치에서 함께 달린다. 이 위치를 선정하는 마음에서 재차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느껴졌다.
[개봉작 추천]
이번 주 개봉한 영화 중 정말 추천하는 영화는 <아줌마>라는 영화다. 제목이 좀 구시대적이라 거부감이 느껴질 수는 있지만.. 정말 여러 가지 매력을 갖고 있는 영화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참고로 보다가 조금 울뻔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씨네21 리뷰에 쓴 글을 첨부할 테니 확인해 주시면 좋겠다.
<아줌마> : 모두를 만족시키며 품위까지 잃지 않는 멋진 의기투합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아줌마’ 림메이화(훙후이팡)는 이제 곧 1인 가구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남편과 사별 후 빈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들이 독립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인 림메이화는 연말을 기념해 아들과 한국 패키지 여행을 계획하지만, 급작스러운 변수가 발생해 홀로 한국 땅을 밟게 된다. 그런 림메이화를 여행사 가이드 권우(강형석)가 맞이한다. 권우 또한 림메이화만큼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는데, 최근 사채업자로부터 빚을 진 것을 빌미로 가족과 별거를 하고 있어서다. 그렇게 인원 통솔에 집중하지 못하던 권우가 림메이화를 서울의 외딴곳에 홀로 남겨둔 채 떠나는 실수를 하게 된다. 아는 한국말이라곤 드라마에서 여진구 배우를 통해 배운 몇 마디가 전부인 림메이화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사람은 착한 마음씨를 지닌 아파트 경비원 정수(정동환)다. 그런 정수 역시 현재 혼자 쓸쓸한 황혼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허슈밍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아줌마>는 한국과 싱가포르의 첫 합작 영화로, 기본적으론 한 중년 여성이 외딴 나라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휘말리며 뜻밖의 인연을 만나게 되는 로드 무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K콘텐츠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한데, 그건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이 주로 서구권 국가의 대도시들을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는 서울과 강원도를 비롯해 한국 관객들에게 친근한 공간들에서 진행되며, 그 익숙한 뼈대 위에서 황당하지만 꽤나 납득할 만한 정도의 이벤트를 펼쳐낸다. 이를 통해 전 연령대로부터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요소들이 과하지 않게 드러나며, 결과적으로 영화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부정적인 뉘앙스까지 희석된다. 싱가포르의 국민 배우인 훙후이팡과 베테랑 연기자 정동환의 특별한 케미스트리가 그 비결로 보인다. 특별 출연한 여진구의 존재를 영리하게 활용한 점 또한 돋보이며, 영화에 삽입된 티아라&다비치&씨야가 부른 <여성시대> 역시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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