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조심하세요 여러분.
이번 주 저는 몸살감기를 앓느라 한 주의 반을 소비해버렸습니다. 토요일 저녁 장기하 콘서트에서 신나게 놀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몸을 덜덜 떨면서, 이번에도 참 지독한 놈들이 제 몸을 정복해버린 것 같다는 예감을 했었는데요. 나아가 며칠 뒤 저와 함께 살고 있는 엄마의 몸까지 점령해버린 것을 보고는, 이번 감기가 정말 나폴레옹만큼 매섭게 자신의 위세를 퍼뜨리고자 하는 야망까지 품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유가 좀 뜬금없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신 분들은, 아직 원데이원무비에 익숙지 않으신 분들일 것 같습니다. 반면 저를 잘 아시는 분들은 제가 글 서두에 무리한 비유를 던지면, 그건 분명 뒤에 그것과 관련된 영화를 언급하기 위한 빌드업이라는 걸 금방 알아차리실 텐데요.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이번 주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이 맞기에 그 예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실 저는 정말로 아픈 와중에 계속해서 <나폴레옹>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뒤까지 완성시켜야만 하는 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글은 씨네21에 실릴 분량이 꽤 긴 글이었습니다. 만약 돈을 받고 쓰는 글이 아니었거나 혹은 분량이 길지 않았다면 마음 편히 아플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앓는 와중에도 계속 글에 대한 구상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투병 와중에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기에 다행히도 아주 간신히 마감 기한에 맞춰 글을 완성시킬 수 있었는데요. 이번 글을 쓰는 과정에서 깨달은 게 하나 있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저는 글을 쓰는 동안 많은 자료 조사를 하는 편입니다. 예컨대 <나폴레옹>에 관한 글을 쓴다면, 영화 <나폴레옹> 뿐만이 아니라 실제 나폴레옹이란 인물에 대한 역사, 혹은 관련한 여러 가지 재밌는 사실들을 일단 수집해 놓습니다. 그 내용을 전부 글에 넣을지 안 넣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최대한 많은 재료들을 쓰기 좋게 마련해 두는 것입니다. 사실 이건 온전히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모으는 것 자체가 재밌어서 매번 그렇게 하는 것도 있기는 합니다. 원래 시험 기간엔 시험 외의 모든 것들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기간이잖아요? 그래서 계속 새로운 사실들을 찾아 나서다 보면, 글을 다 쓰고 난 뒤 어느새 무언가에 관해 ‘꽤 아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번 <나폴레옹> 글을 쓰고 나서도 그랬습니다. 전까지 나폴레옹이란 인물에 대해 잘 몰랐던 저는, 이제 그가 어떤 인물이고 역사에서 무슨 역할을 한 사람인지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글을 써낸 것도 써낸 거지만, 이렇게 새로운 분야에 관한 지식을 쌓았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만약 제가 아프다고 이 작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접근하니, 이런 작업을 매일 혹은 매주 하고 있는, 또는 그걸 저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해왔던 사람들은 나보다 얼마나 더 대단한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과 저의 아득한 격차가 뼈저리게 느끼며, 또 다시 감기가 걸린 듯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네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단 절대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아프면 절대 나폴레옹처럼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니까요. 다시 한번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 <나폴레옹>에 대한 긴글은 다음 주 원데이원무비에 동봉하도록 하겠습니다 -
(짧은 글)
<나폴레옹>
1937년생 리들리 스콧 감독의 28번째 영화입니다. 최근 들어 계속해서 역사에 실존했던 존재들을 영화화하고 있는 감독인데요. <올 더 머니>,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하우스 오브 구찌>의 주인공 모두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 방면에서 정말 말 그대로 업계 최고인 인물일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 유럽을 사실상 통일시켜버린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에게도 완벽하게 이루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사랑입니다. <나폴레옹>은 일은 성공했지만 사랑에 실패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역시 일과 사랑을 전부 쟁취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나폴레옹 정도의 위인마저 그것에 실패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나폴레옹의 위대한 업적, 그걸 이루기 위한 평생에 걸친 노력, 그 뜨거운 야망의 원천은 어쩌면 그의 실패한 사랑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영화는 말합니다. 분명 리들리 스콧과 각본가 데이비드 스카파의 주관적 해석이 들어간 영화이며, 호아킨 피닉스와 바네사 커비가 그 해석을 완벽히 믿을만하게 구현해 내는데 성공합니다. 여러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전투가 스크린에 웅장하게 펼쳐지는 영화로, 분명 아이맥스에서 볼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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