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RE_Write #1. 나만의 문장

그녀의 밑그림은 '흐릿한 희망'이었고, 그녀의 색은 '탁한 애정'이었다.

2023.10.06 | 조회 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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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2RE

REad, REwrite. 책의 내용을 나누고, 문장을 나눕니다.

1. 그녀의 밑그림은 '흐릿한 희망'이었고,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최선이 무(無)가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다 보면 발생한다. 이를테면, 또 한 번 날아온 불합격 통보 메일이라거나. 진심이 담기지 않은 문장들 앞에서 그녀의 자존감은 다시 한번 무너졌다.

끝없는 사막은 '어쩌면 나는 어차피 실패로 끝나는 일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들게 했다. 결국 모든 것은 무의미의 축제라는 생각이 그녀를 짓누를 때 즈음, '시지프스'가 나타났다. 정확히는 시지프스를 내세워 어떠한
의미를 전하려는 문장들이. 책은 너무도 어렵고 문장은 난해했지만 어딘가
버티게 해 주는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책의 말미에서, 그녀는 왜
'시지프스'가 그녀에게 다가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고, 그의 바위도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이 그의 고통을 조용히 바라보면 모든 우상은 입을 다물게 된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중에서

 

그래, 누가 뭐래도 이 사막은 그녀의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자신이 이 황폐한 광경을 두려워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절망과 자괴감이라는 우상들이 겁났을 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차분히 응시할 수 있게 되자 비로소 고개가 들렸다. 그리고 그녀는 비로소 이 황량한 사막 위로 밤하늘이 흐드러지게 펼쳐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각자의 빛을 반짝이고 있었고, 옅은 회색빛 구름들이 살포시 별빛들을 감싸고 있었다.
별빛들은 꼭 사막의 모든 우상들을 씻어내 주는 것처럼 조용히 반짝였다.

그녀는 그날 본 밤하늘의 인상을, 마치 메마른 사막을 향해 빗물처럼 떨어질 것 같았던 구름 너머의 별빛들을, 앞으로의 삶에 밑그림으로 가져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날의 밑그림이 있기에, 이제 그녀는 어슴푸레하게 빛나지만 결코 꺼지지 않는 희망이 그녀의 삶 곁에 있다는 것을 안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어떤 때는 흐릿하게 가려져 있지만
삶에는 분명히 희망이 존재한다.

 

2. 그녀의 색은 '탁한 애정'이었다.

세상을 덧칠하는 그녀의 시선에는 묘한 탁색이 담겨 있었다. 마냥 선명한
원색으로만 세상을 칠할 수 없던 이유는, 시간을 두른 괴로움들이 그녀의 눈에
회색빛으로 번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인이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결코 그것을 완전하게는 배울 수 없다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중에서

 

삶은 대체적으로 괴롭다.
정도나 형태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의 삶에는 괴로움이 기저에 깔려 있다.

그것은 그녀가 교복을 벗고 난 다음부터 인정해 온 사실이었다. 그래서 과거의
그녀는 자신의 눈에 깃들어 있는 회색빛들을 타인에게서도 찾고자 했다.
괴로움의 색깔이 동질감으로 이어지고, 그를 통해 조금 더 탄탄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이를테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애인과 헤어진 친구와 친해지며 '베프'라고 생각한다거나. 그러나 그렇게 쌓아 올린 관계들은 어느 시점이 지나면 서서히 식어갔다.

 

한때 친밀했던 사람과 선뜻 멀어진 거리감을 깨닫고, 누군가 마음에 왔다 가는
시간들을 거치며 그녀는 퍽 혼란스러워했다. 그리고 서서히 '타인의 괴로움은
타인의 것이기에 깊게 이해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괴로움을 알처럼
품고 사는 사람이 필사적으로 괴로움을 회피하는 사람에게는 닿을 수 없는
것처럼. 삶에 물들어 있는 흐린 얼룩들을 문신처럼 떳떳하게 드러내는 사람과
그 얼룩들을 가리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 닿을 수 없는 것처럼.

 

괴로움의 색깔은 존재 간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어도, 서로의 영혼이 오가는 다리까지는 될 수 없다는 사실. 유독 하늘이 공허해 보이던 어느 가을날, 북적거리는 카페에 앉아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갈무리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눈에 담긴 회색빛을 '괴로움의 색깔'이 아닌 '애정의 색깔'로 바꾸고자 한다. 그 탁색이 괴로움의 부산물이 아닌 조금 더 가치 있는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서다. 그리고 그녀는 그 가치가 기왕이면 애정을 담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삶은 대체적으로 괴롭지만, 우리 모두는 괴로웠던 만큼
사랑받을 가치가 있으니까.

 

니체의 말처럼 타인 또한 괴로워한다는 사실도 배워야 한다. 타인이 언제, 어떻게, 왜 괴로워하는지를 알게 되면 그를 조금은 더 따스하고 부드럽게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애정 어린 탁색의 시선으로 그녀는 세상을 보려 한다.
선명한 원색을 희석하며, 조금 더 편안하고 잔잔한 색으로 세상이 덧칠될 수 있도록.

 

문장으로 건네는 첫인사는 항상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어떤 주제로 첫인사를 해야 하지'를 한참 고민했는데, 계속 자기소개 -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먼저일 것이라는 결론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정말 흔한 자기소개는 재미없으니까, 말로 하는 자기소개가 아닌 글로 하는 자기소개는 조금 더 본질적인 내용을 담고 싶었습니다. 첫 메일리, 작가의 깊은 내면에 깔린 '나에 대한, 나만의 문장'을 주제로 첫인사를 건넵니다. 오늘의 글감인 [그녀의 밑그림은 '흐릿한 희망'이었고, 그녀의 색은 '탁한 애정'이었다.]라는 문장은 기저에서 저를 지탱하는 문장인 동시에, 저라는 사람이 정의되었으면 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제가 드리는 문장들이 구독자 님에게도 유의미한 문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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