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약간의 유명세

2024.11.22 | 조회 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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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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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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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인들에게 듣는 소리가 있다. 슈스. 슈퍼스타의 줄임말이다. 물론 나는 슈퍼스타가 아니다. 사람들은 날 놀리기 위해 슈스니 뭐니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놀림에 아무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요즘 아주 약간의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야말로 극미량의 유명세다. 이렇게 쓰는 게 민망할 정도로. 그럼 왜 쓰고 앉아있냐고 묻겠지만… 할 말이 있다.

올해 초 회사에서 진행했던 캠페인이 화제가 됐다. 담당자로서 나는 이를 더 알릴 의무가 있었다. SNS에 비하인드 스토리를 열심히 올렸다. 캠페인을 향했던 관심 중 일부가 내게 쏠렸다. 이 일에는 수많은 사람이 기여했기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하는 게 민망하기도 죄송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회사 이야기가 더 알려지는 건 좋은 일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인터뷰에 응했다. 크고작은 세션에 나가 경험을 나누기도 했다.

반 년 정도 지났을 땐 놀라운 전화를 받았다. 모델 섭외 연락이었다. 그러니까 나를 모델로 광고를 찍고 싶다는 얘기였다. 모델이요? 저요? 몇 번을 되물었다. 들어보니 젊은 직장인들을 모델로 섭외해 MZ세대에 대한 편견을 깨는 내용의 광고였다. 내가 자격이 된다고도 어울린다고도 생각지 않았지만 또 부끄러운 기분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한 편으론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광고를 찍을 일이 또 있겠는가.

섭외 요청에 응할 때까지만 해도 그 정도로 큰 캠페인인지는 몰랐다. 30여 명의 스텝들이 와서 반나절을 꼬박 촬영했다. 날 담은 광고가 유튜브에도 인스타에도 네이버에도 떴다. 성수동에 포스터가 붙고 팝업이 열렸다.

오래된 친구들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았다. 가장 신기했던 건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알아보는 일이었다. 아내 지원에게 광고에서 나를 봤다는 제보가 쏟아졌다. 미팅을 가면 “담당자님 광고 잘 보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회사에 새로 입사한 분들도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 “드디어 실물을 뵙네요.”

물론 길거리에서 누군가 나를 붙잡고 “광고에 나온 사람 맞죠?!”라고 외친다거나 아예 관련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사인 요청(그럴리가)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어떤 이유로든 나 혹은 우리 회사와 연관있는 사람들이 나를 한 뼘 정도 높은 수준으로 알아봤다는 얘기다.

고작 그 정도더라도 모르는 상대가 나를 알고 있다는 건, 또다른 사람이 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되게 들뜨는 일이었다. 왜? 세상이 내게 전보다 더 귀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어릴 적부터 말을 하기 어려워했다. 남 앞에서 입을 떼야 하는 상황을 상상만해도 긴장했다. 내 마음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은 적었다. 꼭 말 더듬 때문은 아니었다. 말을 안 해도 되는 상황에서도 나는 늘 몸을 뒤로 뺐다. 대학 때 친구는 뭘 물어도 의견을 내지 못하는 내게 “넌 왜이리 에고가 없냐”고 했다. 그 자세 앞에는 내 말을 잘 듣지 않는 세상이 있었다. 말해도 잘 들어주지 않을 테니까… 라는 오해일지도 모를 생각이 있었다.

아주 약간의 유명세가 가져온, 내게 조금은 더 귀기울이는 것 같은 세상 앞에서 나는 즐거웠다. 내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 앞에서는 가능한한 앞으로 나서고 싶었지 절대 뒤로 빼고 싶진 않았다. 광고와 이어진 활동으로 팝업 스토어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도 참여했었다. 나는 그런 자리에 서야 한다고 하면 한 일주일은 긴장해서 잠을 못자는 사람이다. 근데 이번에는 별로 떨질 않았다. 그 자리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궁금해서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내 말투 따윈 상관이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미약한 유명세는 오래가지 못할 거다. 내 이야기를 궁금해했던 소수의 사람들도 곧 관심을 거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전보다 더 신나게 내 생각을 펼치며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토크 콘서트에서 20여 명 앞에서 내 생각을 말할 때 나는 잠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손 끝과 발 끝에 힘이 충분히 들어갔고 늘 어딘가 어긋나 있었던 것 같던 표정과 말투도 그 순간 만큼은 모든 게 맞아 떨어졌고 자연스러웠다. 순간이었지만 그 느낌은 나의 30대에 스며들었다. 언제고 꺼내볼 수 있을 만큼 깊숙히.

계속 그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아두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일상에 무감각해진다. 예를들면 매일 반복되는 일이나 출퇴근길은 내가 살아가는 인생 중 일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뻔해진다. 그래서는 이야깃거리가 갈수록 고갈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걱정을 한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나는 작은 것들에 귀기울일 것이다. 쉽게 판단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궁금해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나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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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에 있는 그림은 제 아내 지원이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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