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시간

2024.12.06 | 조회 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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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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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두부

격주로 에세이를 씁니다!

6개월 전부터 생애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회사 일도 많았고 스스로 벌린 일도 많았습니다. 주목받는 브랜드에서 얼굴을 가장 많이 비추는 사람이 됐고요. 수백명 앞에 강연자로 섰고 광고도 찍었습니다. 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분들께 연락도 많이 받았고요. 그걸로도 부족해 이 레터도 시작했네요.

바쁜만큼 기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제 생각을 마음껏 펼친 적이 없었거든요. 부끄럽지만 서른 중반까지 남의 목소리에 묻어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뒤에는 말 더듬이라는 핑계가 있었습니다. 저같이 말을 더듬는 사람에게 생각을 말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어요.

“이제부터 목소리를 낼 거야!” 같은 대단한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운 좋게도 속한 조직, 친구, 가족이 제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습니다. 저같이 자신감이 적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도 나설 수 있을만큼 안전하면서도 설레는 무대를 말입니다. 저를 믿어준 사람들, 적어도 남들 앞에서 헛소리는 안할 거라고 믿어준 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 안에 있던 생각들을 내보이는 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금방 밑천이 드러나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최근 한 달 간 그런 기분에 압도돼 왔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게 뭐, 이젠 뻔한 느낌. 마케터지만 마케팅 전문가라고 하기엔 아는 게 많지 않은 것 같고, 특정 분야에 경험이 풍부하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좋아하는 걸 깊게 아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전 뭐든 쉽게 질려버리는 타입이거든요.

밑천이 드러나는 느낌이 참 서글프더라고요. 말 더듬 뒤에 숨어 목소리를 내기 전엔 하고 싶은 말이 속에 드글드글한 기분이었는데 입이 터지고 나니 금방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런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어요.

한 편으론 이런 생각도 했어요. 한 명의 인간이 속에 담고 있는 이야깃거리라는 게 정말 양동이에 담긴 물 같은 걸까.  퍼내면 퍼낸 만큼 줄어드는 게 생각이고 마음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보다는 양동이에 담긴 물 보다는 샘물 같은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샘물은 땅 속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물이잖아요. 땅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물이 있지만 웅덩이에 고이는 물은 아주 일부일 뿐이죠. 그걸 열심히 퍼내면 금방 바닥나잖아요. 다시 퍼내고 싶다면 일정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요.

인생을 뭔가에 비유하자면 양동이보단 땅에 가깝지 않을까요. 평범하고 단순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여도 사람은 다들 드넓은 땅에 이야깃거리를 품고 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에 따라 메마름의 정도는 차이가 있을 텐데 저는 그래도 비옥한 땅을 만들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것 같아요. 비록 그 과정이 노련하거나 멋있진 않았지만 늘 나 다운 걸로 삶을 채워가려고 애써왔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6개월은 내 샘물에 담긴 이야깃거리들을 퍼올려서 내보이는데 온 힘을 다해왔던 것 같아요. 지금은 좀 메마른 기분이 드는 걸 보면요. 그래서 10번의 이야기를 써낸 <2주간의 두부>를 잠시 쉬려고 합니다. 이럴까봐 2주라는 긴 시간을 발행 주기로 정한 건데, 이것도 좀 벅찼네요. 아마 제 샘물의 쿨타임이 조금 긴 편인 거겠죠. 다시 입이 근질거리면 돌아올게요. 엄청 오래 걸릴 것 같진 않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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