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독자를 보며 든 생각

2025.07.13
from.
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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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의 산문

수시로 산문을 씁니다

지난 두 달간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사람만 넷이다. 속 안의 무언가가 북받쳐 올라 눈물로 흘러나온 듯 했다. 네 명 모두 자신이 울거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했다. 더 당황한 건 나였다. 대부분 내가 주로 말하는 북토크 자리였기 때문에 잘못한 기분이 들었다. 애써 웃으며 아이고 왜 우세요 하면 상대도 멋쩍은 듯 눈물을 훔치며 미소지었다. 네 번 모두 어찌할 줄 몰라 바보처럼 손을 허공에 휘휘 젓다가 얼레벌레 상황을 넘겼다. 집에 가는 길에 가장 기억에 선명히 남은 건 북토크가 끝나고 받은 박수도, 선물도 아니고 눈 가득히 맺힌 눈물이었다.

한 명, 두 명의 눈물을 볼 때는 일종의 감탄을 할 뿐이었는데(아니,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세 번째 부터는 좀 민망하고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그 분들은 모두 내 이야기를 읽거나 듣고 본인의 감상을 말하다 우셨다. 내 얘기가 갖고 있던 고민이나 기억을 건드렸을 것이다. 공감받거나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을지 모른다. 그 감정이 북토크까지 오게 만든 유인이었을 수 있다. 생각보다 깊은 곳을 찔렸기에 예상치 못한 눈물까지 흘러나온 게 아닐까 - 이런 식으로 눈물이 나오게 된 경위를 되새기다보면 정말이지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내 이야기가 그렇게 대단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눈물이 나온다는 건 너무 엄청난 일인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쓴 원고가 책의 형태로 나오고 나서 나는, 그걸 읽지 못했다. 띄엄띄엄 읽긴 했으나 완성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더 쭉 읽어보는 걸 하지 못했다. 수정의 여지가 남아있을 때는 눈에 불을 켜고 봤지만 더이상 고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읽는 게 무서웠다.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쳤지만 읽는 게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꾸역꾸역 읽을 때마다 비문이나 부자연스러운 전개가 눈에 띄었다. 수 없이 책을 덮었고 이미 내 손을 떠나 어찌할 수 없는 나의 이야기집을 초조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독자들은 내 글이 엉망이라고 평할거야, 라고 불길한 예감에만 힘을 실으면서.

그러니까 더더욱 책을 읽고 눈물을 보일거라곤 예상치 못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출간 후 한 달, 두 달이 지날 수록 쌓이는 후기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좋거나 나쁜 반응의 차원이 아니라 전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내 이야기가 받아들여지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말더듬 치료, 특히 실질적인 치료에 대해서는 쓰지도 않았고 아는 것도 없는데 언어 장애를 연구하는 대학 교수님이 후기를 전했다. 어떤 것보다 이런 이야기가 치유의 역할을 한다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후기도 있었다.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긴 정적이 흘렀지만. 물론 부정적인 후기도 있었는데 그 또한 예상 밖이었다. 책에 실린 감정이 좀 과하다는 리뷰도 있었고 내가 활동하고 있는 인터뷰 팀의 콘텐츠가 별로라는 평도 있었다.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려고 노력했고 이 책이 그 콘텐츠까지 찾아보게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마저도 눈에 보인 반응이나 후기만 얘기한 것이다. 책이 몇천 권은 팔렸으니 그만큼의 감상이 존재할텐데, 예상 범위를 벗어난 게 몇개나 될까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저자인 내게도 책이 전할 전체적인 상이 무엇인지 그려지지 않기에 불안하다. 오롯이 내 이야기니까 책이 어떻게 읽혀지는 지는 곧 내가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대한 얘기이기도 해서 무섭다. 긍정적인 후기를 만나면 가슴을 쓸어내리고 부정적인 리뷰를 만나면 쿵 내려앉는 시간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건 글을 써서 내보이려는 사람이라면 응당 감당해야하는 짐인 걸까.

얼마 전 읽은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텍스트를 써서 독자에게 보내는 순간 작가가 담고자 했던 의미는 휘발된다고. 각각의 독자가 갖고 있는 기억, 경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고. 그렇게 텍스트는 작가의 손을 떠나 세상을 따라 흘러가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애초에 글을 쓰는 일은 억울해질 여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말과 글이 쉽게 휘어 전달되는 세상에서 작가는 그만큼이나 위험한 직업일지 모른다.

독자와 마주하는 기회가 쌓여 가는데도 매번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날아든다. 나름대로 구축해 둔 데이터베이스에도 없는 질문이 들어오면, 나는 오른쪽 위 천장을 바라본다. 말 더듬는 사람의 북토크이기 때문에 말이 느려도 이해해줄거라는 작은 안심을 하면서. 침묵이 너무 길어진다 싶으면 일단 말을 내뱉는다. “제 생각은요…” 몇 번의 경험상 일단 말을 시작해버리면 뭐든 생각이 나게 된다. 마감이 코 앞일 때 비로소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것처럼, 뇌는 위기 상황에 이르러서야 일을 시작하기도 하는 거다. 그렇게 나오는 대답은 이도 저도 아닌 경우가 많다. 겨우겨우 끄집어낸 의견이다보니 충분한 고민이 깃든 말도 아니고 그만큼 자신도 없다. 당연히 밑밥을 막 깐다.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네요…”, “언제든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일단 지금 생각으로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내 안의 누군가 묻는다. 그럼 만약 너가 쓰는, 너가 담은 의도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면 뭐라고 쓸 것인지.

재밌게도 변명처럼 얘기하는 모호한 얘기들이 가장 정직한 내 모습이 아닌가 싶다. 내 의도가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해도 뭘 얘기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만큼 명확한 결론이 있는 생각이나 의견은 내 안에 별로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전달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관점이나 지식, 교훈을 제시하는 게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써내는 글이 쌓일수록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계속 글을 쓰고 싶다. 단순히 자기 표현의 욕구일 수도 있고 글쓰기의 즐거움을 놓지 못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읽거나 듣고 눈물을 보인 네 명의 사람은 분명히 있었다. 그것 만으로도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해서 내 이야기를 전할 이유는 충분히 되지 않을까, 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계속 정직해야겠다는 다짐을 마음 한 켠에 단단히 묶어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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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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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느낌의 프로필 이미지

    좋은느낌

    0
    5 months 전

    이번글 너무좋다! 읽은 사람들이 다음책 언제 나오냐고 기대한다고 하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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