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파리에 갔었다. 혼자였고,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감을 맛보고 있을 때였다. 당시에는 힘든 줄도 모를만큼 정신 없었지만 그만큼의 실패감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것 같다. 그 때의 감정이 오랫동안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른다.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라던가.
이십대 후반의 나는 하릴없이 누워있던 주말, 세계일주 팀에서 여행 작가를 뽑는다는 공고를 본다.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집 앞 카페로 뛰어나가 30분 만에 지원서를 썼다. 무조건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합격했고, 출근길에 그 소식을 받고 실제로 1미터는 뛰어올랐다. 그 길로 날 받아준 첫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순식간에 스스로가 대단한 - 선구자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는 실감에 거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페이스북에 여행기로 가장한 자랑 글을 쓰면서 쏟아지는 관심에 즐거워했다. 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 냉정하게 돌아보면 그때 나는 겉멋에 취했고 있는 척 하기 바빴다.
취한 나를 비웃듯 상황은 안 좋게 흘러갔다. 출국 한 달 반만에 나는 팀에서 하차하게 된다(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다음 기회에…). 팀과 작별한 장소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였다. 도저히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지인들에게, 페이스북에 큰 소리 뻥뻥치고 나온 탓이었다. 뭐라도 해내고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커서 뭐라도 남기기 위한 여행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파리행 티켓은 레이캬비크에서 가장 싼 비행기표였다. 그런 이유로 파리로 향했고 도착하니 밤 늦은 시각이었다. 완전한 타지에서 완전히 홀로남아 어두컴컴한 거리를 캐리어 끄는 소리를 드르륵 드르륵 내며 걷던 기억이 난다. 파리하면 떠오르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축축하고 불쾌한 광경만 온 몸으로 마주할 뿐였다.
애초에 여행 작가로 떠나온 길이었다. 뭐라도 남긴다면 그건 여행기가 돼야할 거였다. 혼자 다시 시작한 여행 동안 나는 에피소드, 에피소드 하며 다녔다. 내 여행에 제발 재미있는, 남들이 주목할 만한, 실패를 덮어줄 에피소드가 쏟아지길 바랐다. 그래야 그럴듯한 결과물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니까.
지금보다도 훨씬 내향적이었던 내가 숙소 주인에게, 식당 옆자리에 있던 손님에게, 카페 맞은편에 앉은 사람에게 한마디라도 붙여보려고 어떻게든 각을 봤다. 결국엔 사람과의 에피소드를 만들어야 이야깃거리가 나온다는 생각이었다. 파리에서는 묵었던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최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호스트가 자기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다고 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들과 찍은 사진은 분명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거야. 다른 아이디어도 계속해서 짜냈다. Humans of New York에서 시작된 Humans of OO 시리즈는 세계의 도시마다 있었다. 뭔가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휴먼스 오브 파리에 연락을 해 운영자와 만났다. 베를린으로 도시를 옮겨서는 휴먼스 오브 베를린을 운영하는 사람을 만났다. 이스탄불 블루 모스크 앞에서는 어떤 튀르키예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자기와 맥주 한 잔 안하겠냐고 했다. 다른 여행이었다면 위험하다 여겨 피했을 텐데, 에피소드를 만들어 낼 절호의 기회로 보였다. 그와 하루 종일을 보냈다. 헤어질 때가 돼서야 그의 목적이 내 돈으로 하루치의 맥주와 음식을 얻어먹는 거였다는 걸 알아챘지만.
많은 시도를 했지만 그럴듯한 결과물은 거의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직도 내 브런치에는 쓰다 만, 거의 시작에서 멈춰버린 여행기가 있다. 분명 흥미로운 소재를 많이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는데 글로 쓰려고 하면 꼭 길을 잃어버렸다. 매일 새벽까지 노트북을 붙들고 있었다. 뭔가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글로 쓰는 걸 어렵게 만들었을 수 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란 넉살도 좋고 센스도 있어야 만들어낼 수 있는 건데 그게 나는 안 됐던 것 같기도 하다. 특별한 만남을 겨우 만들어내고도 어색한 상황만 견디다가 끝나는 상황, 그걸 글로 써내려다가 포기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혼자서 여행할 때는 꼭 찾아오는 쓸쓸함의 순간이 있다. 여행에서 나는 매일 저녁 숙소로 돌아갈 때 쓸쓸함과 오늘도 딱히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부채감을 느꼈다. 두 가지가 더해진 기분은 무겁고 버거웠다. 혼자 여행을 시작한 지 3달 쯤 된 어느 날 그 미묘한 감정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찾아왔다.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였고 열기구 하나 타러 오는 도시에 왜 2주일씩이나 머물고 있는지 현지 가이드나 숙소 주인이 의아해하던 때였다.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을 그때 먹었다. 더이상 체력도 마음도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시간을 들여 돈을 아끼던 여행이었다. 비행기값이 부담돼 기차로 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모스크바로 가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집 가까이 있는 블라디보스톡까지 가는 것이다. 오로지 이동의 목적으로 5박 6일간 쭉 이동만 하는 표를 샀다. 중간중간 정차하는 역에서 5분 바람을 쐬는 게 유일하게 허락된 기차 밖 활동이었다. 3등석이었고 수많은 러시아인과 눈을 마주치며 지내야 했다. 짐이 무방비로 노출돼있어 불안했다. 말도 안 통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영어로 숫자도 말할 줄 몰라서 시간도 물어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말이 한 마디도 통하지 않아도 이틀, 사흘을 마주보며 지내게 되면 어떻게든 의사 소통을 하게 된다. 내 옆 침대칸에 탄 청년의 이름은 할티온이었다.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이틀 지나고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 쌓이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을 걸었다. 먹을 것을 나눠주기도 했다. 어떻게 서로 알아들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할티온은 1년 간의 군 복무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복무지는 모스크바였고 집은 기차로 4일은 가야 하는 거리였다. 입대 이후 한 번도 가족의 얼굴을 본 적 없었다. “너 가족이 엄청 보고 싶겠네.” 영어로 말하면 그는 내 말을 해석하려는 듯 귀 기울여 들었고 몇 번의 몸짓을 섞어 반복해서 말하면 끝내 알아들었다. “엄청 보고싶지”라고 할티온은 답했다. 답했던 것 같다. 할티온의 군모를 써보기도 하고 보드카를 몰래 얻어먹기도 하면서 우리는 그의 집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가 내릴 역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을 때 할티온이 내게 물었다. “내가 짐이 많은데 혹시 내릴 때 도와줄 수 있어?” 몇 번의 손짓을 주고받은 끝에 내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내보였다. “당연하지”. 할티온이 내리는 역 전에도 수많은 군 복무를 마친 러시아 군인들이 집에 도착하는 광경을 봤다. 하나같이 가족들이 꽃다발을 들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마 할티온의 가족들도 나와있을 거다. 나는 짐을 같이 들고 내려 그의 가족들과 인사하고 5분이 지나기 전에 다시 기차에 탑승하면 될 것이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할티온의 얼굴이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긴장과 설렘이 섞인 표정이었다. 내가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올 때 얼굴이 저랬을까 싶었다. 마침내 할티온이 내릴 역에 도착했고 덩달아 긴장되는 마음으로 그를 따라 내렸다. 그런데 할티온의 가족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2분 넘게 기다렸는데도 다른 군인들이 가족들과 상봉해 포옹하고 꽃다발을 드는 모습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할티온이 자기 짐의 일부를 내밀며 말했다. 먹을거리였다. “이건 네가 가져가.” 내가 대답했다. “아니야. 괜찮아.” 그가 얘기했다. “어차피 나 혼자 못 들고 가.” 가족이 마중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 비친 말이었다. 순간 나는 마음이 무너질 듯 초조했다. 기차가 출발한다는 신호가 들리기 까지는 그의 곁을 지켜주리라 마음 먹었는데 시간이 더럽게 안 가는 기분이었다. 할티온은 내게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난 머뭇거렸다. 어쩐지 여행 내내 마음 속에 묵혀왔던 설움이 폭발할 것 같았다.
이제 들어가야겠어… 라고 말하려는데 할티온의 시선이 휙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그의 어머니였다. 둘은 얼싸안았다. 나는 봉투를 든 채 조금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할티온에게 짐을 쥐어주고 그의 어머니에게도 살짝 고개를 젖혀 인사했다. 그리고 할티온과 악수를 한 뒤 열차에 다시 올라탔다.
왠지 전보다 더 덜컹덜컹 거리는 듯한 기차에 몸을 싣고 나는 끝나가는 나의 여행을 지켜봤었다. 에피소드를 만들기 위해 혈안됐던 내 모습을 반추했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깃거리를 찾았지만 할티온이 내게 보여준 이야기만큼의 깊이에는 다다르지 못했었구나 싶었다. 할티온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여행 막바지의 내게 보여주고 떠났다. 나는 좋은 이야기가 뭔지 희미하게 알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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