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A와 B가 각자 택시를 탔을 때 10만 원과 20만 원이 나오는 상황에서 택시를 합승하는 문제를 다뤘습니다. 이번에는 A와 B가 서로의 원래 요금이나 합승 선호도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오직 '합승 시 총요금은 20만 원이다'라는 정보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섀플리 가치처럼 객관적인 방식으로 비용을 결정할 수 없으므로 남은 방법은 두 사람의 협상입니다.
문제는 이 협상에서 A와 B가 합승에 대한 진짜 선호와 가치를 말할 이유가 없다는 점입니다. 가령, A는 혼자 타도 10만 원이 나오므로 5만 원까지는 지불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더 이익을 보기 위해 3만 원 이상은 내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 모두 만족스러운 협상 결과를 얻을 방법이 있을까요?
수요표출기구로서의 클라크 조세
일단은 A와 B가 솔직한 가치를 제시하게 만들 방법이 있을지부터 찾아봅시다. 이런 걸 수요표출기구(Demand Revelation Mechanism)라고 하는데, 진실을 말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이익이 되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클라크 조세(Clarke Tax, 클라크 세금)는 그 한 가지 방법으로, 우리 문제에 적용하면 이렇게 됩니다.
- A와 B가 각자 지불할 의사가 있는 가격을 제시합니다.
- 그 가격의 합이 총비용인 20만 원에 미달하면 협상은 결렬됩니다.
- 합이 20만 원을 넘으면, A(B)는 "20만 원 - B(A)가 제시한 가격"을 부담합니다. 각자가 부담하는 가격은 자신이 제시한 가격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게 보장됩니다.
예를 들어, A가 6을 제시하고, B가 14를 제시했다면, A는 6(=20-14), B는 14를 부담합니다. 만약 A와 B가 8, 16을 제시했다면, 부담하는 금액은 4(=20-16), 12로, 두 사람 모두 동일하게 4씩 혜택을 받습니다.
클라크 조세가 솔직한 선호를 밝히도록 유도하는 이유는, 각 플레이어 입장에서 자신이 얼마를 제시하든 상관없이 부담하는 금액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담할 금액은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제시한 가격에 따라 결정됩니다. 내가 제시한 가격은 협상의 타결 여부에만 영향을 끼칩니다.
만약 진실된 가치를 보고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A가 5까지 지불 의향이 있었지만 너무 낮은 가격, 가령 3을 제시했다가 합승이 결렬되면, 혼자서 10을 내고 가야 합니다. 아깝죠.
그렇다고 타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너무 높게 제시하는 것도 기대 수익을 낮춥니다. A가 괜히 12를 제시했다가, B가 9밖에 안 부르면, A는 11을 내야 합니다. 혼자 타는 것보다 오히려 손해입니다.
그러므로 A와 B는 자기가 생각하는 솔직한 가치, 즉 최대로 지불할 의사가 있는 만큼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기대 수익이 높습니다.
클라크 조세의 문제점
단순하면서도 깔끔해 보이는 방식이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A와 B가 부담하는 가격의 합이 20만 원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 A: 7 제시 -> 2 지불
- B: 18 제시 -> 13 지불
둘이 내는 돈을 합쳐도 전체 요금보다 적습니다(15 < 20). 부족한 만큼 누군가가 메꿔줘야 하는데 택시 합승에서는 그럴 사람이 없죠. (정부가 공공재를 공급하는 상황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수요를 조사해서 세금으로 비용을 충당하고, 부족한 부분만 공공 재정으로 메꿀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이 단점을 보완할 아이디어가 있다면, 비배제성 공공재의 무임승차자 문제는 진작에 해결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알고리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하네요. 모두가 이기적으로만 행동하는 상황에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건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제도를 설계함으로써 전략적인 협상에서 개인이 진짜 선호도를 표출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서 소개해 보았습니다.
참고 자료
- 임봉욱, 『공공경제학』, 율곡출판사(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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