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의 실체가 궁금하신가요? 이번 글에서는 우리의 인식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탐구합니다. 뇌가 만들어내는 주관적 세계와 인공지능이 창조하는 새로운 현실에 대한, 나름의 통찰을 담았습니다. 메타버스 시대에 우리가 직면하는 질문과 가능성, 그리고 '디지털 네이티브'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 함께 짚어 보시지요.
-혁신가이드 안병민-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우리가 보는 세상은 ‘진짜(Real)’일까? 단언컨대, 아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이 세상의 모습은 가짜다. 왜곡된 허상이다. 근거는 차고 넘친다. 다양한 착시 그림들이 쉬운 예다. 달라 보이는 두 선의 두께가, 달라 보이는 두 도형의 색깔이, 이게 웬걸, 실제로는 같다. 분명히 멈춰있는 그림 속 원기둥이 뱅글뱅글 도는 것처럼 보이는 건 또 어떻고.
엄밀하게 보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진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다. 눈, 코, 귀 등의 감각기관들이 받아들인 외부 정보들을 뇌가 제 멋대로 짜깁기한 결과를 ‘진짜 세상’이라 착각하며 사는 거다. 보여지는 대로 보는 게 아니다. 봐야 하는 대로 보고,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거다. 인간의 눈은 그래서 신뢰할 수 없다.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이처럼 우리 뇌가 각색하고 재구성한 주관적 해석의 결과다. 그리 보면, 뇌는 우리 몸에 내장된 선천적 ‘메타버스 장치’나 다름 없다. 불교철학과 노장철학에서도 '가유(假有)와 실상(實相)'의 개념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설파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허상이니 거기에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미필적 고의로 여태껏 ‘가짜 세상’을 살아온 인류는 이제 의도의 확신을 가지고 ‘가짜 세상’을 창조한다. ‘빅데이터’와 ‘딥러닝’을 아우르는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서다. 입력된 데이터의 인식과 구분을 넘어 이제는 생성형AI가 새로운 데이터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이런 매력적인 무기를 '디지털 네이티브'가 마다할 리 없다. 디지털과 AI기술을 통해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고, 극복한다. 내가 원하는 또 다른 나(아바타)를 만든다. 상호 거래를 위한 새로운 수단(암호화폐, NFT)도 개발한다. 급기야 내가 원하는 세상까지 빚어낸다. ‘호모 데우스 (Homo Deus)’, 즉 ‘신이 되려는 인간’으로의 진화다. 그렇게 만든 새로운 세상? 바로 메타버스다.
메타버스는 더 이상 가상현실이 아니다. 디지털로 만들어낸 ‘또 다른 현실’이다. 디지털로 만들었기에 수정과 편집이 가능하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디지털 현실을 살아간다. 실패해도 ‘리셋(Reset)’하면 그뿐이다. '부캐'와 '멀티페르소나' 개념의 부상 이유다. 사실 모든 현대인들은 주어진 상황마다 다른 가면을 꺼내 쓰고 세상을 살아간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속 삶의 메커니즘이 별반 다르지 않다.
'실감 기술'을 통해 현실과 가상이 융합된 메타버스 시공간에서는 물리적인 현실과 디지털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다. 물리적 현실에서보다 디지털 현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고, 물리적 현실에서보다 디지털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내 삶의 무게중심은 당연히 후자에 있다. 현실의 나는 못 사 입는 고가의 명품 브랜드 의류를, 메타버스 속 내 아바타에게는 사서 입히는 이유다.
이쯤 되면 내가 나비 꿈을 꾸는 건지, 나비가 내 꿈을 꾸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은 메타버스 시대를 은유하는 날카로운 통찰이다. 이런 철학적 컨셉을 오롯이 반영한 영화? 1999년에 개봉한 '매트릭스'다. 영화 '매트릭스'는 현실과 가상현실,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긴장 관계를 탐구하는 과학적 상상력의 결정체다. 영화는 가상현실과 실제 세계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인간 존재와 의식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 인공지능에 지배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릴 일이다. 자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출발점이다. ‘나는 누구’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인공지능이 쳐놓은 가짜 현실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서다. 막연한 믿음에 매몰되지 않는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와 답습의 틀을 깨는 ‘창의적 질문(Creative Questioning)’은 메타버스 시대를 살아가는 궁극의 경쟁력이다.
참, 메타버스는 이미 한 물 간 거 아니냐고? 천만에! 메타버스는 채 여물기도 전에 갑작스레 불려 나왔을 뿐이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은 격이니 메타버스만 억울할 따름. 이 모든 게 코로나19와 성격 급한 사람들 때문이다. 인공지능 고도화를 등에 업고 메타버스는 오늘도 한발 한발 진화 중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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