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추구미

2024.12.10 | 조회 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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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푼젤의 5층 석탑 탈출하기

아무래도 머리가 길기까지 기다리는 건 오래 걸리니까요...

 

💭

  •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자친구를 앞에 앉혀 놓고 카페에서 글을 썼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남자친구를 힐끔거리다 보니 내 시야에 들어오는 젊은 커플이 있었다. 애정 가득, 생기 넘치는 눈빛이 안경알을 뚫고 나오는 듯했다. 한참 글을 쓰다 무심코 다시 보니 내 시야에 들어온 중년 커플. 그 눈빛이 앞선 젊은이들의 것과 같았다. 두 커플의 자리마저 같았다면 나는 앉은 자리에서 30년이 훌쩍 지나버린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 점심저녁으로 눈물을 쏟은 어느 날. 요즘은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당최 모르겠다. 잡아먹힐 듯한 모래바람 속에서 가만히 날개를 접은 폴처럼 살아보자고 되뇌이지만 과연 나에게 대가문의 유일한 후계자같은 기개가 있을까. 기개라는 단어가 나에게 참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 사전을 찾아보니 못 할 것도 없지 싶다. 미루고 버티다 이제야 출발선에 섰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 '왜'라는 말을 '어떻게'로 바꾸어 생각하는 습관이 도움이 된다는 말을 어디서 보았다. 회고킹답게 나는 늘 과거를 떠올리며 '왜'를 찾으려 노력하곤 했고, 그걸 먼저 찾아야 더 낫게 변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지금 왜 이런 상태일까, 지금 내 마음은 왜 힘든 걸까, 왜 나는 움직이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을 바꿔보라는 말이지? 나는 어떻게 지금의 혼란을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움직일 수 있을까?

 

 


 

추구미

 

우아한 양면성, 포근하고 중성적인

논픽션 '젠틀나잇' 설명 중

 

광범위한 아름다움의 시대다. 이제 아름다움의 의미는 단 하나의 기준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취향 속에서 더 잘 드러난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부터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을 수반한다. 그렇기에 나는 아름답기 위한 노력을 거두고 무색무취 속으로 숨으려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은 너무나 험했고 나는 너무나 약했다.

어쩔 수 없게도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세상에 나와 살아야 한다. 나약한 존재로 태어났으니 같은 나약한 존재들과 힘을 합쳐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하지만 나와 같은 존재들은 나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는걸. 나는 그들 앞에 서면 실제보다 더 보잘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그래서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이 되는걸. 그렇게 얼마 안 되는 내 것마저 쪽 빨리고 나는 쓸모를 다한 비닐이 된 기분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하는걸.

나를 잃을 것 같은 시기에는 옷을 사거나 미용실에 가는 일이 도움이 되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에는 힘이 있다. 꾸준하고 성실한 노력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치장하는 행위 또한 스스로의 신뢰를 얻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효력이 좀 짧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서든 스스로가 마음에 드는 순간을 만들면 그 힘으로 또 다음 순간을 만들기 위해 움직일 수 있다.

세상에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아름다움이 넘쳐나기에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일이다. 양 끝에 있는 두 모습이 전부 너무나 아름다워서 어느 쪽으로 가야 좋을지 갈팡질팡하게 된다. 어느 쪽도 놓치지 않으려 하다간 그 어느 쪽에도 가까워질 수 없겠지. 사람들은 이게 아름답다고 하면서 정반대의 것 또한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런 말들을 모두 듣고 싶어하다간 절대로 아름다워질 수 없다.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어질 때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가져본 적 없는 아름다움을 동경해 억지로 이식하려던 경험들은 싸그리 실패했다. 적당히 주변에 맞춰 추구했던 아름다움도 얼마 가지 못하고 버려졌다. 그저 나로서 살아간다면 원하는 모든 것이 나를 따라올 거라는 근거를 댈 수 없는 자신감이 내 안 어딘가에 있다. 사랑하는 가수의 인터뷰 답변처럼 나는 사실 나를 되게 좋아하고 있었다.

새로운 스타일도 과감한 도전도 결국 다 내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꼼꼼히 살피면 내가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겠지. 나를 재발견하고 재배치하며 살뜰히 가꾸는 과정 속에서 나의 추구미는 깊고 선명해질 것이다. 남은 시간들 또한 점점 커지는 흔들림의 반복일 것이고 대책 없이 흔들린다면 다시 속절없이 무너질 게 뻔하다. 그러나 내 안에서 나와 마주하고 있는 추구미가 격동하는 내 인생의 대책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삶과 아름다움을 함께 이야기해본 건 처음이다.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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