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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다시 영화 감상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영화 보는 일에 재미 대신 공부나 숙제 같은 단어가 따라붙는 느낌이 들었을 때, 나의 2021년이 너무나 그리웠다. 그때는 내내 영화 속에 폭 빠져 지냈다. 겨울에는 가는 데만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영화관에 찾아가 <윤희에게>를 보며 펑펑 울었고, 여름에는 바람이 솔솔 부는 18층 아파트에서 노트북을 붙잡고 살았다. 내게는 어떤 귀여운 사명감이 있었다.
- 가장 가깝고 편한 사람들 앞에서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튀어나오는 과거의 내 모습이 견디기 힘들어서일 수도 있고, 더 많이 배려하지 못하는 나의 이기심을 탓하게 돼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꽤나 큰 마음 고생을 공유한 사람들 앞에서 자꾸 질척거리는 마음이 꼴보기 싫어서 그런 걸 수도.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까?
- 마음은 변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자꾸만 조급해진다. 마음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줄 아는가보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가끔 인간이 무슨 돌처럼 한 자리에서 변하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모자란 아이에게 격려의 박수를(돌도 변한다).
독립과 자립
애인을 많이 좋아하고 있다.
아마 최근 나와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애인과 함께 살아보고 싶다고 울부짖는 나의 모습 또한 만나봤을 것이다. 진심이다. 내 삶에서 동거와 결혼의 개념은 이 연애를 시작한 이후에 비로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 사람과 매일 밤 같은 집에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습게도 나는 일찍 결혼하면 이혼수가 있다는 오래된(심지어 직접 본 것도 아닌) 사주풀이를 떠올리며 아주 길어질 연애를 어떻게 하면 잘 유지할 수 있을지 전전긍긍한다.
이렇게 실컷 떠들어대도 헤어질 수도 있고, 다른 짝을 만날 수도 있겠지. 아마 애인은 누구랑 같이 살아도 잘 살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혼자서 잘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매 끼니 요리를 해 먹고, 스스로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알고, 멋진 취미도 있으며, 부정적인 감정이 일상을 무너뜨리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불편하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여유가 그의 집에는 있다.
반면에 나는 어떤가. 2021년 가을부터 혼자 살기 시작한 나는 아직도 내 끼니를 챙겨줄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주방을 텅텅 비워놓고도 배가 끝까지 다 고프도록 버틴다. 기력 없는 나에게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는 후딱 나가서 사 먹는 것이 된다. 꼬질꼬질하게 외출하는 데 거리낌만 없어진다. 지금 필요한 물건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사고 싶은 건 많은데,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렵다. 애써 번호를 붙이고 나면, 이제는 그 목록을 더 빨리 지우지 못 해서 우울해진다. 그래봤자 가계부에 적힌 숫자들은 변하지 않는데(가계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아직 지출 관리에도 젬병이다. 너무 많이 써 버리거나, 아무 것도 안 써 놓고 낭비했다며 슬퍼하거나 둘 중 하나다). 취미는 뭉뚱그려 있는 것도 같은데 명확하게 얘기할 만한 활동은 또 없는 것 같고, 부정적인 감정은커녕 그저 때가 되면 돌아오는 호르몬에도 손쉽게 무너진다. 특히 가끔 다른 사람이 집에 올 때, 나는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밖엔 없는 내 상태를 뼈저리게 느끼며 새벽 두 시만큼 센치해진다.
거침없는 디스에 나에게 살짝 미안해지지만… 하지만 과연 이 상태로 누군가와 함께 살아도 되는 것일까? 집에서 나는 붕붕 떠 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아무도 없는데 눈치를 본다. 완전히 쉬는 일도 편하게 나를 내려놓는 일도 어렵다. 방바닥에 발이 닿아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작은 방에는 숨을 곳도 없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와 마주본 채 눈을 피하고 있다.
쓰다 보니 하우스메이트나 배우자는 아무래도 괜찮아진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나를 어떻게 방치하고 있었는지가 명확해질 뿐. 민망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나와 눈을 맞추는 일을 등한시하고 또 합리화했다. 꽤나 충격.
하지만 혼자 사는 지금은 또한 절호의 기회다. 나와 단둘이 진실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때는 지금이 지나가면 또 언제 올지 모른다. 그러니 먼 미래에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즐거운 동거 생활보다도 눈앞에 펼쳐진 나 자신과의 일상을 먼저 알콩달콩 꾸려나가면 좋겠다. 그 어느 타인과도 다르게 죽을 때까지 나를 지켜봐줄 소중한 나를 잘 키워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유심히 관찰하고 귀기울여 들으며 결국엔 가장 친한 친구가 되겠노라 다짐해본다. 나를 먼저 채우면 그 다음 타인도 안아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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