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독립과 자립

2024.12.24 | 조회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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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푼젤의 5층 석탑 탈출하기

아무래도 머리가 길기까지 기다리는 건 오래 걸리니까요...

 

💭

 

  • 슬슬 다시 영화 감상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영화 보는 일에 재미 대신 공부나 숙제 같은 단어가 따라붙는 느낌이 들었을 때, 나의 2021년이 너무나 그리웠다. 그때는 내내 영화 속에 폭 빠져 지냈다. 겨울에는 가는 데만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영화관에 찾아가 <윤희에게>를 보며 펑펑 울었고, 여름에는 바람이 솔솔 부는 18층 아파트에서 노트북을 붙잡고 살았다. 내게는 어떤 귀여운 사명감이 있었다.
  • 가장 가깝고 편한 사람들 앞에서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튀어나오는 과거의 내 모습이 견디기 힘들어서일 수도 있고, 더 많이 배려하지 못하는 나의 이기심을 탓하게 돼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꽤나 큰 마음 고생을 공유한 사람들 앞에서 자꾸 질척거리는 마음이 꼴보기 싫어서 그런 걸 수도.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까?
  • 마음은 변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자꾸만 조급해진다. 마음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줄 아는가보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가끔 인간이 무슨 돌처럼 한 자리에서 변하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모자란 아이에게 격려의 박수를(돌도 변한다).

 

 


 

독립과 자립

R=VD 독립

중학생 시절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

 

애인을 많이 좋아하고 있다.

아마 최근 나와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애인과 함께 살아보고 싶다고 울부짖는 나의 모습 또한 만나봤을 것이다. 진심이다. 내 삶에서 동거와 결혼의 개념은 이 연애를 시작한 이후에 비로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 사람과 매일 밤 같은 집에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습게도 나는 일찍 결혼하면 이혼수가 있다는 오래된(심지어 직접 본 것도 아닌) 사주풀이를 떠올리며 아주 길어질 연애를 어떻게 하면 잘 유지할 수 있을지 전전긍긍한다.

이렇게 실컷 떠들어대도 헤어질 수도 있고, 다른 짝을 만날 수도 있겠지. 아마 애인은 누구랑 같이 살아도 잘 살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혼자서 잘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매 끼니 요리를 해 먹고, 스스로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알고, 멋진 취미도 있으며, 부정적인 감정이 일상을 무너뜨리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불편하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여유가 그의 집에는 있다.

반면에 나는 어떤가. 2021년 가을부터 혼자 살기 시작한 나는 아직도 내 끼니를 챙겨줄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주방을 텅텅 비워놓고도 배가 끝까지 다 고프도록 버틴다. 기력 없는 나에게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는 후딱 나가서 사 먹는 것이 된다. 꼬질꼬질하게 외출하는 데 거리낌만 없어진다. 지금 필요한 물건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사고 싶은 건 많은데,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렵다. 애써 번호를 붙이고 나면, 이제는 그 목록을 더 빨리 지우지 못 해서 우울해진다. 그래봤자 가계부에 적힌 숫자들은 변하지 않는데(가계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아직 지출 관리에도 젬병이다. 너무 많이 써 버리거나, 아무 것도 안 써 놓고 낭비했다며 슬퍼하거나 둘 중 하나다). 취미는 뭉뚱그려 있는 것도 같은데 명확하게 얘기할 만한 활동은 또 없는 것 같고, 부정적인 감정은커녕 그저 때가 되면 돌아오는 호르몬에도 손쉽게 무너진다. 특히 가끔 다른 사람이 집에 올 때, 나는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밖엔 없는 내 상태를 뼈저리게 느끼며 새벽 두 시만큼 센치해진다.

거침없는 디스에 나에게 살짝 미안해지지만… 하지만 과연 이 상태로 누군가와 함께 살아도 되는 것일까? 집에서 나는 붕붕 떠 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아무도 없는데 눈치를 본다. 완전히 쉬는 일도 편하게 나를 내려놓는 일도 어렵다. 방바닥에 발이 닿아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작은 방에는 숨을 곳도 없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와 마주본 채 눈을 피하고 있다.

쓰다 보니 하우스메이트나 배우자는 아무래도 괜찮아진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나를 어떻게 방치하고 있었는지가 명확해질 뿐. 민망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나와 눈을 맞추는 일을 등한시하고 또 합리화했다. 꽤나 충격.

하지만 혼자 사는 지금은 또한 절호의 기회다. 나와 단둘이 진실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때는 지금이 지나가면 또 언제 올지 모른다. 그러니 먼 미래에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즐거운 동거 생활보다도 눈앞에 펼쳐진 나 자신과의 일상을 먼저 알콩달콩 꾸려나가면 좋겠다. 그 어느 타인과도 다르게 죽을 때까지 나를 지켜봐줄 소중한 나를 잘 키워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유심히 관찰하고 귀기울여 들으며 결국엔 가장 친한 친구가 되겠노라 다짐해본다. 나를 먼저 채우면 그 다음 타인도 안아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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