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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모임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늘 지나치게 말랑해져 있는 내 마음을 발견한다. 모임원들의 따뜻함에, 치부를 드러낸 듯한 부끄러움에 말랑하게 녹지 않을 수 없다. 시작된 지 벌써 500일 가까이 되어 가는데도 모임 초반에는 아직 긴장이 된다. 그러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들의 따스함을 느끼면 그제야 안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며 했던 생각을 말로 뱉는 일은 여전히 불편하다. 편안해지기까지는 몇 권의 책이 더 남았을까?
-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당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말을 한다. 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큰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큰 감정이 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교복에 노란 리본 뱃지를 달았고 추모 행사에 참여했다. 4월 16일이면 상태 메시지에 다시 노란 리본을 달고 인상 깊은 시를 공유했다.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을 때 슬픈 '척'을 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한 댄서의 글을 접했다. 나에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 고통이 먼저다.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직접 슬퍼하지는 않는다. 연말을 맞아 무심코 즐거운 순간을 추억하는 게시글을 올렸다가 화들짝 놀라 숨겼다.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슬퍼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나의 1년을 자랑하는 일은 며칠이 지나도 할 수 있지만, 지금의 위로는 때를 놓치면 안 되는 것이기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에게 갑작스레 생긴 비극의 구멍이 다시 차곡차곡 채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렇게라도.
- 굉장히 귀여운 우리 엄마가 처음 접한 이후로 종종 전해 주시는 말씀이 있다. 같은 인생을 4, 50년 살았으니 이제 다 아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40세도 50세도 당신 인생에는 처음이라고. 매 순간이 처음이라는 사실이 정말 놀랍지 않냐며 젊은 우리를 열심히 격려하신다. 길게 이어지고 있어서 지겹거나 지루하게도 느껴지는 것들이 사실은 새로움의 연속일지 모른다. 얼핏 인식하는 순간 옳다구나 하고 전에 없던 즐거움을 가져다 줄지 모른다. 변화의 개념은 아직도 너무나 어렵지만 적응이 가장 큰 강점이라는 스스로를 오늘도 믿어보기로 한다.
다음 문제
절망은 딴 곳에서 온다. 가장 잘 아는 곳. 가장 친한 사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무엇으로부터. 그러니까 가장 곁에 있는 것이 실은 가장 먼 것이다. 그래서 가까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것이다.
카페 헤세이티
학교 생활은 꽤 힘들었다. 학교의 규율에 따르는 것도, 지루한 수업에 집중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지금 기억에 남는 문제는 친구에 관한 것뿐이다. 학교에서는 '무리'가 필요했다. 혼자 혹은 둘이서 다닐 수도 있었겠지만 가장 큰 자신감을 갖고 다니기 위해서는 여러 명의 무리에 속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나에게 더 필요한 건 '단짝 친구'였다. 여러 명 속에서도 암묵적으로 서로를 서로의 짝이라고 여기는 친구. 남들이 보기에도 쟤는 당연히 쟤랑 같이 앉겠지, 수긍하게 되는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어떤 상황이 와도 혼자 될 걱정 없는 안정을 얻고 싶었다.
연애를 해보니 내가 찾고 있던 게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짝. 남들도 다 인정해 주는 내 짝. 이런 건 애초에(적어도 나에게는) 우정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아마 이런 이유로 결혼을 결정하게 되지 않을까. 내 옆에 있는 연인이라는 사람의 자리는 억지로 만들 필요도 없이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상에, 점점 더 삶에 스며들었다.
그런데 짝만 찾는다고 다가 아니었다. 내 짝이지만 나랑 다를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고 나를 힘들게 할 수도 있는 거였다. 이 사실을 느낄 때마다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확률이 더 높은 소울메이트 따위의 존재를 갈망하게도 됐지만 결론적으로 그것은 늘 환상 같았다. 타인이라면 내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내 마음을 다 알 수 없음이 절대로 자명한데 인간의 언어는 편협하고 불완전하여 마음이라는 것을 전부 담을 수 없으니 둘 이상 만난다면 갈등은 무조건 일어나게 돼 있으니까. 소중한 당신을 오래도록 만나고 싶다면 노력은 무조건 필요하니까.
여기까지 푸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더 이상의 것은 없지 싶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꽉 채워 산다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두 배가 넘는데 참으로 안일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크다는 새로운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누군가를 너무나 좋아해서 그를 최대한 내 마음 가까이에 둬 버린 나머지 그의 고통이 내 것이라도 되는 양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모습을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가까움을 나 자신으로 착각하면 큰일이 날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내 사랑과 나는 철저하게 나뉘어 있는 서로 다른 사람이니까. 물론 더불어 사는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는 미덕 정도는 가져야 마땅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내 것이라 여기면 안 되니까. 돌아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인 줄 알았다. 그가 슬퍼할 때 나도 함께 슬퍼하며 내 삶까지도 바꿔 버리는 그 정도의 공감이라야 진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이다. 남의 걱정에 지나치게 신경쓰는 순간 그건 간섭이 되고 침범이 된다. 상처가 의미를 가지는 건 치유의 과정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남의 인생이라면 치유의 과정에 도움을 줄 수는 있겠으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상처받는 일도 극복하는 일도 그 사람 소유의 자산이다. 사랑한다면서 뻔뻔스레 절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가장 가깝고 싶은 사람과 계속해서 가까우려면, 의식적으로 나에게서 떼어 놓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나보다. 이번 건 이런 역설의 문제였다니. 하나씩 넘어갈 수록 난도가 높아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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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수
마지막 문단이 너무 조아서 여러번 읽엇네요 .. 🥺
승푼젤의 5층 석탑 탈출하기
조아해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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