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초 오픈AI가 챗GPT에 네이티브 이미지 생성 기능을 탑재한 이후, 이전까지는 흥미로운 놀이나 밈 제작 등에 사용되던 이미지 생성 AI가 본격적으로 대중화 및 상업화된다. 2025년 말인 지금, 유튜브나 소셜미디어에 나돌아다니는 각종 광고는 물론 대중교통 광고판, 숏폼 콘텐츠로 소비되는 캐릭터들, 예능 프로그램의 게임 소재, 나아가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나 극장 개봉용 영화에서도 생성형 AI 이미지를 마주할 수 있다. AI영화 섹션이나 AI영화제를 표방한 것이 아니더라도, 올해 여러 영화제에서 생성형 AI 이미지를 사용한 영화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기도 했다. 당장 올해의 마지막 영화제였던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몽중몽>(권현지, 2025), <시네마 속 5월>(아리프 부디만, 2025)처럼 부분적으로 생성형 이미지를 활용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만나볼 수 었으니까. 지난 10월에는 “국내 최초 AI 활용 장편영화”라는 문구를 마케팅 언어로 적극 활용한 <중간계>(강윤성, 2025)가 개봉하기도 했다.

생성형 AI 이미지는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물론 생성형 AI가 갖는 환각(hallucination)이나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이는 머지않은 시일 안에 극복될 문제다. 다만 이러한 상황은 생성형 AI 이미지가 사진적 이미지의 존재론을 (재차) 뒤바꿔 놓는다는 점에서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우리가 영화에 삽입된 이미지가 카메라 앞에 존재했던 피사체가 아니었음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상황에서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수용될 수 있는가? 사실 이 같은 질문은 디지털 시네마가 도입되던 시기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케이 호프만(Kay Hoffman)은 “’내가 보는 것을 나는 믿는다’라는 명제 대신, 이제는 ‘내가 믿는 것을 나는 본다’로 바뀌었다”라는 매클루언의 언급을 끌어와, 디지털 영화에 있어 다큐멘터리의 영역에서조차 ‘가시적인 증거(visible evidence)’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주1) “영화 카메라는 가시적 현상을 그것 자체로서 기록하지 않는다면 더이상 카메라가 아닐 것이다. 말하자면 영화 카메라는 “잔물결 치는 나뭇잎들”을 표현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다. (...) 사진과 더불어 영화는 자신의 원재료를 거의 변질시키지 않는 유일한 예술이다.”(주2)라는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의 말은 디지털 이후, 그리고 무엇보다 생성형 AI 이후 완벽히 통용될 수 없는 말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시하는 것은 단순하다. 쇼츠나 릴스에서 트램펄린 위에서 뛰노는 토끼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귀여워하며 보다가 그것이 AI 생성 영상임을 깨닫고 불쾌해하거나,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의 이미지를 보고 저것이 딥페이크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 우리는 다큐멘터리적 이미지로 불리는 대상들(CCTV나 속보 화면)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가 기존의 현장-기반 다큐멘터리에서 에세이 영화와 수행적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현장-전유의 다큐멘터리로, 나아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나 파운드 푸티지 작업들이 보여주는 현장-창출의 다큐멘터리로 확장되고 있음을 지적한 이도훈의 논문(주3)을 떠오려 볼 때, 카메라 앞에 대상을 직접 두는 방식을 벗어난 일련의 다큐멘터리 작업이 적지 않은 시간 누적되어 왔다. 작년과 올해 공개된 다큐멘터리들을 살펴보더라도, 자료의 진실성을 중심에 둔 <케이 넘버>(조세영, 2024), <1980 사북>(박봉남, 2024), <파기상접: 깨진 그릇 접붙이기>(임지수, 2025) 등의 영화들과 함께 촬영된 자료를 변형하거나 채집된 질료만을 통해서 제작되는, 혹은 추상적 영역이나 유실된 자료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도라지 불고기>(양지훈, 2025), <창경>(이장욱, 2025), <마당이 두 개인 집>(설수안, 2025), <키네틱 오라클>(송시영, 2025) 등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생성형 AI 이미지는 이를 조금 더 복잡하게끔 만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료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진실된 현장을 담아내는 것으로서의 다큐멘터리라는 오래된 통념을 건드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AI는 이미 다큐멘터리 제작의 다양한 과정에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루마니아-한국 합작 영화인 <밝은 미래>(안드라 맥마스터스, 2025)는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의 기록 영상 아카이브를 다루면서 다국어 내레이션의 일부를 AI 보이스로 제작하였다. <Vanishing: A Love Story>(산드라 럭토우, 2024)는 루게릭 병을 앓아 목소리를 잃은 주인공의 목소리를 과거 기록된 음성을 토대로 우크라이나의 Respeecher의 기술로 AI 보이스를 제작해 활용하였다. 음성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 이를테면 자료 아카이브를 정리한다던가 기획안의 피드백을 받는다던가 편집의 과정에도 AI는 도입되어 있다. AI는 프리-프로덕션부터 포스트-프로덕션에 이르는 영화 및 다큐멘터리 제작의 전 단계에 이미 활용 중이다. 다만 이러한 지점에서 AI를 활용한 모든 다큐멘터리를 AI 다큐멘터리라고 통칭하거나, 각기 다른 분야에서의 AI 사용(이를테면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대화형 AI와 피드백을 나눈 것과 생성형 AI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동일한 윤리적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을 동일하게 다룰 수는 없기에, 본 원고에서는 생성형 AI 이미지를 사용한 다큐멘터리 작업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사용되는 방식에 따른 쟁점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저널리즘 다큐멘터리에서의 생성형 AI 이미지
첫 번째 사례는 저널리즘 다큐멘터리이다. 이는 앞서 논의한 극장용 다큐멘터리나 국내 독립 다큐멘터리와는 다소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으나, 국내의 경우 AI 이미지를 가장 빠르고 꾸준하게 사용하는 분야이기에 언급하고자 한다. 그 시작은 2025년 1월 7일 방영된 MBC <PD수첩> 1477회 "내란수괴 혐의, 그는 무엇을 노렸나"(주4)이다. 해당 방송은 생성형 AI 이미지를 통해 “만약 계엄이 성공했다면?”이라는 가정을 이미지화한다. 이러한 생성형 AI 이미지는 "만약 ~라면?"이라는 가정법적 서사를 구현하는 데 적합하며, 기존 다큐멘터리에서 구현하기 어려웠거나 (그래픽 등에) 많은 비용이 투여되는 이미지 재현을 가능케 한다. 여기엔 다른 한편으로 사실의 왜곡이나 조작 등 윤리적 문제제기 또한 존재한다.(주5) <PD수첩>의 경우 해당 방송의 성공(주6) 이후, 저출생이 이어진 2060년의 대한민국(주7)을 묘사하거나 기후위기로 인한 여파를 시각화하는 과정(주8) 등에서 적극적으로 생성형 AI 이미지를 사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장면들은 다음과 같다. 계엄군이 국회 문에 총격을 가하고 들이닥치는 장면이라던가, 국회에 운집한 시민들이 체포되는 이미지와 같은 것들이다. 실제로 벌어지진 않았지만 벌어졌을지 모를, 존재하지 않는 순간의 재현인 셈이다. 이러한 활용 과정에 있어 <PD수첩>은 해당 이미지가 조작이나 왜곡, 가짜뉴스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AI 이미지가 등장하는 장면 동안 화면 좌상단에 “AI-CG”혹은 “AI 이미지”라는 자막을 띄워 둔다. 이는 저널리즘 혹은 방송 콘텐츠에 있어 AI 이미지 활용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을 테다. 다만 제작사 및 스태프의 이름만 표기된 크레딧에서 어떤 AI 툴을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했는지는 명시되지 않았다. <PD수첩>의 해당 회차를 연출한 조윤미 PD는 시사/저널리즘 다큐멘터리의 제작 규범, 1) 공중파 방송 수준의 영상 퀄리티와 시청자 기대치 2) 사실에 기초한 다큐멘터리의 정확성과 윤리적 기준 3) 시정차 볼입을 고려한 극적 구성의 필요성, 등을 고려하여 AI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한다.(주9) 다만 문서화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비공식적인 가이드라인만이 존재할 뿐이다. 현재 국내 방송사 중 AI 활용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는 것은 KBS 미디어연구소에서 제작한 “KBS AI 가이드라인”(주10) 정도뿐이다. 영화학자 전병원은 AI 시네마 시대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은 “투명성(합성 여부와 출처 고지), 윤리(피사체 권리와 관계적 책임), 제도(법적·산업적 규범)의 삼중 조건 속에서만 재정의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주11) 즉, AI가 가능케 한 “카메라 없는 이미지”는 기존의 이미지가 지닌 지시성을 잃어버린 대신, 투명성·윤리·제도의 측면에서 진실성을 정당화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저널리즘/시사 다큐멘터리의 영역에서 이것에 대한 충분한 가이드라인이나 제도적·윤리적 합의가 요구됨은 물론이다.

기존의 다큐멘터리 방법론을 대체하는 AI 이미지
두 번째 사례로는 기존의 다큐멘터리 제작 방법 중 특정한 분야를 AI 이미지가 대체하는 사례들이다. 2025년 여러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중 <퍼니스트 홈비디오, 코리아>(김국희, 2025)는 적극적으로 AI 이미지를 활용한다. 영화는 부모님 대신 홀로 자신을 양육한 할머니와 자신 사이의 이야기를 (다소 산만한) 홈비디오 이미지로 구현하는 사적 다큐멘터리로 거칠게 분류될 수 있다. 여기서 AI 이미지는 사진이나 영상 등 이미지로 기록되지 않은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재현하거나, 과거의 노동을 떠올릴 때의 감정선을 구현하는 등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다큐멘터리에서 유실되거나 부재한 자료 혹은 추상적인 감정의 표현을 애니메이션으로 대체했던 사례들을 연상케 한다. 이를테면 모녀 사이의 감정적 관계를 애니메이션을 통해 비유적으로 다뤄냈던 <호랑이와 소>(김승희, 2020)이나 <뱃속이 무거워서 꺼내야 했어>(조한나, 2018), 혹은 4·3 사건 생존자들이 일종의 미술치료를 통해 생산한 그림을 통해 과거를 재현하는 <May·Jeju·Day>(강희진, 2021) 같은 사례처럼 말이다. 더불어 <퍼니스트 홈비디오, 코리아>는 감독이 직접 내레이션을 하는 대신 AI 보이스를 사용함으로써 사적 다큐멘터리임에도 내레이션과 이미지 사이의 거리감을 만들어내고, 영화의 제목이 지칭하는 북미 예능프로그램 <아메리카 퍼니스트 홈비디오>를 보듯, 즉 타인의 홈비디오를 보듯 영화를 볼 수 있게끔 유도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단편 대상을 수상한 <시네마 속 5월>(아리프 부디만, 2025)이다. 1980년 5월의 광주와 1998년 5월의 자카르타, 전자의 경우엔 민주화운동 속에서 정치적 토론의 장으로 극장이 활용되었고, 후자의 경우엔 진압을 피하기 위한 대피소로 극장이 기능했다. <시네마 속 5월>은 두 개의 극장에서 각각의 5월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한다. 영화의 대부분은 극장의 이미지와 함께 당시 극장에서 일했던, 혹은 당시에 극장에 있었던 이들의 인터뷰 보이스오버로 구성된다. 국가폭력에 대한 증원과 아카이브 이미지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 이 영화는 AI 이미지를 통해 당시를 재현하게끔 하고자 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지된 이미지로 남아 있는 아카이브 속 사진들을 다시금 움직이게끔 한다. 이는 앞서 4·3 생존자들의 그림을 움직이게끔 했던 <May·Jeju·Day>나, 1966년의 총기난사 사건을 로토스코핑으로 재현하는 <타워>(케이스 메이트란드, 2016)처럼 이미 벌어졌으나 영상으로 기록되지 못한 사건에 움직임을 부여함으로써 현재화하고자 했던 사례와 유사하다. 즉, 기존에 애니메이션이나 CGI 이미지를 통해 구현되던 다큐멘터리 재현 방식의 한 부분을 AI 이미지로 대체하는 것이다.
물론 AI 이미지가 가져오는 효과, 즉 AI 환각이나 언캐니밸리한 이미지가 자아내는 유령적 분위기와 같은 효과가 여기에 더해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퍼니스트 홈비디오, 코리아>처럼 다소 복잡한 감정의 표현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게끔 하기 위함도 있을테다. 다만 두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다큐멘터리에서의 AI 이미지 활용이 이미 존재했던 기법과 방법론을 보다 저렴하고 빠르게 활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지점이다. 이는 앞서 저널리즘·시사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준 가정법적 서사뿐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과거를 상대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AI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으며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퍼니스트 홈비디오, 코리아>가 AI 음성과 이미지를 사용하는 장면에 AI 사용 여부를 표기하고 있는 반면, <시네마 속 5월>은 엔드크레딧에서도 별도의 AI 사용 관련 표기가 없다. 물론 후자의 경우 의도적으로 AI 환각이 가득 발생한 이미지를 활용함으로써 AI를 통한 자료의 왜곡이나 조작을 목표로 하지 않음을 드러내지만, 이는 이미지를 보는 관객이 해석의 차원에서 알아채게 되는 것이지 적극적인 정보전달의 맥락에서는 부족하다. 아직 창작자를 위한 AI 가이드라인이나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제에서의 가이드라인이 적절히, 혹은 명확히 마련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AI를 통한 현장-창출의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에서의 현장에 관한 이도훈의 연구에서 그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나 온라인 이미지를 활용하는 파운드 푸티지 다큐멘터리를 두고 “현장-창출은 현실을 넘어서는 가상을 그 자체로 독립적인 세계이자 사건 발생적인 장소로 본 것이다”(주12)라고 말한다. 즉, 애니메이션을 통해 재현되는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대상, 온라인상의 이미지를 채집하여 활용하는 파운드 푸티지 다큐멘터리의 대상인 온라인 가상 세계와 같은 새로운 현장이 새로운 방식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제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AI 이미지는 이를 새로운 국면으로 데려간다.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의 영역이 앞서 살펴본 과거 혹은 추상적 영역의 재현을 가능케하며 AI 이미지 또한 유사한 기능을 수행함을 살펴봤다. 그렇다면 온라인상의 이미지들이라 하더라도 결국 현실의 사건이나 인물, 이미지에서 출발하게 되는 파운드 푸티지 다큐멘터리와 같은 현장-창출은 AI 이미지를 통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혹은 생성형 AI 시대에 창출되는 다큐멘터리의 현장은 무엇인가?

세계 최대의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인 IDFA(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의 2024년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나름의 논란을 낳았던 <그를 찾아서>(피오트르 비니에비치, 2024)는 영화제작의 전 과정에 걸쳐 AI를 사용한다. 영화는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화, 인터뷰, 비평 등을 학습시킨 AI 모델 카스파(KASPAR)로 제작되었다. 여기서 제작이라 함은 영화의 AI 이미지뿐 아니라 내레이션이나 헤어조크의 음성부터 각본까지 전 분야에 해당된다. “4,500년 후에도 컴퓨터는 내 영화만큼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라는 헤어조크의 말에서 출발한 영화는 (헤어조크의 허락하에) AI가 헤어조크 풍의 영화를 만드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는다. 게툰키센부르크(Getunkirchenburg)라는 가상의 소도시에서 가상의 공장노동자 도렘 클레리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허구의 이야기인 이 영화는 전형적인 다큐멘터리보단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가져온, 블랙코미디적 페이크 다큐멘터리 혹은 다큐-픽션에 가깝다. 영화의 이미지도 비키 크리엡스 등의 배우나 스티븐 프라이, 보리스 그로이스 등 유명인이 등장하는 실제 촬영된 장면과 AI를 통해 생성 혹은 합성한 장면들이 혼재되어 있다. 감독과 AI 카스파와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 영화의 각본을 영화에 직접 노출시키기도 하고, 어느 순간 SF 판타지로 넘어가버린 내러티브에서 “끝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그를 찾아서>는 AI를 활용한 창작의 한계를 고백하는, 헤어조크의 말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다른 한편으로 AI가 한 감독의 필모그래피와 연관된 텍스트들을 학습함으로써 그의 영화 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단순히 AI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AI와의 협업(collaboration) 혹은 공동창작(co-creative) 사례라 할 수 있다.(주13) 다른 한편으로, AI가 학습한 자료들이 독자적인 세계관의 구성이라는 픽션적 성격뿐 아니라 다큐멘터리의 영역에서 특정한 주제나 소재의 아카이브를 학습한 AI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를 찾아서>가 하나의 정답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또 다른 사례로 언급할 수 있을 <에이아이 리얼리즘: 2022년 1월의 비극>(알마굴 멘리바예바, 2022)가 있다. 극장용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적인 성격을 가진 미디어아트인 이 작품은 2022년 1월 카자흐스탄에서 가스 가격 급등에 항의하며 촉발된 전국적 시위와 그에 대한 정부의 진압을 다룬다. 정부 통제로 인해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기에, 이에 대한 기록은 시위 참가자들의 증언이나 소셜미디어 기록을 통해서만 남아 있다. 영화는 파편적으로 남아 있는 기록들을 모아 생성형 AI 이미지로 만들고, 이미지 생성에 쓰인 프롬프트를 일종의 내레이션이자 타임라인으로 활용한다. 즉, 이 영화는 실제의 기록들을 모아 생성형 AI로 하여금 그것을 재현하게끔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를 찾아서>가 다소 방대한 헤어조크의 기록을 활용했다면, <에이아이 리얼리즘>은 보다 특정적인 사건의 기록들을 활용한 것이다. 빅데이터를 통해 이미지를 생성하는 AI의 방식에 따라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시위의 기록과 증언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 이를테면 시위에 대한 기록에서 출발한 빅데이터의 시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를 찾아서>와 <에이아이 리얼리즘> 모두 AI 활용에 관해 상당히 디테일하고 명시적으로 표기하고 있다. 영화 전체에 걸쳐 AI를 활용했음을 다방면으로 알려주는 <그를 찾아서>는 영화 크레딧에서 사용된 AI 모델, AI를 통해 생성한 실존 인물들의 대사 등을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에이아이 리얼리즘> 또한 스피치-이미지 AI 모델을 통해 생성된 이미지를 활용하였다고 크레딧에 명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 AI 가이드라인을 철저하게 지킨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를 찾아서>를 연출한 피에트로 비니에비치는 AI 카스파를 공동개발한 영화의 제작자 등과 함께 "영화, 게임, 미디어에서의 생성형 AI의 윤리적, 도덕적 기준 확립을 목표"로 하는 동명의 비영리단체를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주14)

AI 다큐멘터리의 미래?
이상 살펴본 생성형 AI 이미지를 활용한 다큐멘터리들은 대체로 AI 이미지 활용에 있어 각자의 방식으로 진실성을 확보하거나, 각자 마련한 윤리적 기준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AI 활용에 있어 명확한 윤리적 기준이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가이드라인이 아직 마련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AI 다큐멘터리가 점차 활성화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다양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AI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바라봐야 할지, 혹은 다큐멘터리 영역의 질적저하나 황폐화로 이어질 것인지에 관한 여러 논의가 요구된다. AI 환각과 같은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며, 이미지의 진실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이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 이미지를 활용한 다큐멘터리 작업이 기존에 CGI나 애니메이션 등의 시각화 도구를 AI로 대체하거나 다큐-픽션의 영역에서만 AI를 도입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의 문제의식에 공통된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글쓴이. 박동수
영화평론가. 2021년 제3회 독립영화비평상 문서부문, 2022년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당선되며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여러 지면에 글을 기고하고 종종 영화 관련 기획전을 만든다. 영화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을 진행하며 멤버들과 함께 동명의 단행본을 펴냈다.
(주1) Hoffman, K. (1998). I see, if I believe it - Documentary and the Digital. Elsaesser, T. & Hoffman, K. (eds). 김성욱 외(역) (2002). <디지털 시대의 영화>. 서울: 한나래. 231쪽.
(주2) Kracauer, S. (1964). Theory of Film. 김태환, 이경진(역) (2024). <영화의 이론: 물리적 현실의 구원>. 서울: 문학과지성사. 13쪽.
(주3) 이도훈 (2021). 현장을 전유하는 다큐멘터리: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가 현장과 결합하는 방식. <현대영화연구> 17(3). 125-150.
(주4) 유튜브에서 관람 가능.
(주5) 박문칠 (2025). 시사 다큐멘터리와 AI 영상의 조우: MBC <PD수첩> “내란수괴 혐의, 그는 무엇을 노렸나” 편을 중심으로. <글로벌문화콘텐츠>. 64. 205.
(주6) 처음 예고영상이 공개되었을 때는 부정적 반응도 소셜미디어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으나, 해당 방송이 업로드된 유튜브 댓글에서는 해당 영상이 흡입력 있게 가정법적 서사를 펼쳐냈음을 호평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7) 2025.06.17. 방송
(주8) 2025.09.16. 방송
(주9) 박문칠, 위의 논문, 197쪽
(주10) KBS AI 가이드라인
(주11) 전병원 (2025) AI CINEMA 시대 다큐멘터리의 진실성. 한국다큐멘터리학회 추계학술대회 발표.
(주12) 이도훈, 위의 논문, 146쪽.
(주13) 박문칠 (2025) 다큐멘터리에서의 AI 사용이 던지는 문제와 가능성: IDFA 개막작 <About a Hero>(2024)를 중심으로. <영화연구>. 103. 157-192쪽.
(주14) Kaspar AI 웹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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