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기 전, 집에 ‘정리정돈 컨설턴트’를 부른 적이 있다. 미국으로 보낼 컨테이너는 가로 1M x 세로 1M x 높이 1M의 큐빅 단위로 정산을 하는데, 1큐빅 당 가격이 어마어마해서 짐을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방 두 개짜리 신혼 집에서 끝도없이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을 보며 컨설턴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버릴거예요?”
라는 그녀의 질문을 과장보태 약 천 번쯤 들었는데도, 꼬박 8시간을 투자한 것치고는 방 두 개짜리 우리집은 여전히 난장판이었다. 다음날 다시 와줄 수 있냐는 내 말에 ‘딱해보이니 사람을 살리는 셈 치고 오겠다’고 말했던 그녀는 둘쨋날엔 인사도 받는둥 마는둥 하고 우리집에서 반쯤 혼이 나간 얼굴로 사라졌다.
한 번 호되게 ‘정리정돈의 난’을 겪고 난 뒤, 미니멀리스트처럼 살고 싶어졌다. 곤도 마리에의 정리정돈 원칙을 시도해보려고 하기도 했다. ‘죽어도 못 버리던’ 사람인 나는 그녀의 말대로 ‘내가 원하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물건을 한 번에 찾을 수 있는 집을 꿈꾸며 물건에 대한 애착을 내려놓고, ‘잘 버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으나 ‘절대 실패하지 않는 물건별 정리법’을 마스터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녀의 가르침대로 옷을, 책을, 사진을 한데 모아놓고 보면 저마다의 물건이 나에게 ‘정말 나를 버릴거냐고’ 되묻는것 같았다. ‘즉시, 과감히’가 난무하는 그녀의 가르침대로 살기에는 나는 너무 소심하고 나약한 인간이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국제이사를 한 후 약 8년간 4번의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할 때마다 노하우가 생기긴 했지만, 우리집은 여전히 모델하우스처럼 깔끔하지는 않다. 다만,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기 위해 잔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중이다. 예를 들면 출근 전 로봇 청소기를 돌릴 수 있게 빨래더미를 소파에 올려놓는다거나,
간혹 마음이 동하는 날에는 열심히 정리를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프레임 너머의 너저분함을 대놓고 인정하는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곤도 마리에의 정리 정돈 포기 선언 기사를 읽고는 묘한 위안을 느꼈다. 정리 전문가로서 ‘항상’ 집안 정리를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 했던 걸 어느정도 포기했다는 그녀는 칼각으로 접힌 티셔츠가 가득한 서랍, ‘인스타그램 각’인 찬장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보다는 각자의 삶의 단계, 순간 순간 바뀌는 우선순위에 대해 인정하기를 당부했다.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부류라고 생각했던 잘 정돈된 미니멀리스트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조금은 가까워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저분한 채로 살아도 괜찮다는 위안보다는, 칼같이 정리 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으니 포기하고 이대로 살자는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는 것이 반갑다.
“할 수 있는(doable) 루틴을 10일 간 유지해보자”는 곤도 마리에의 조언을 들으며, 방이 너저분하다고 혼부터 내는 엄마가 되기보다는, 정리를 게임처럼 해볼까? 하는 마음이 쑤욱 솟아오른다.
얼마나 많은 물건을 과감히 버리느냐보다는, 완벽한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
* 황진영
미국 수도에 있는 한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댓글 1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영
친근한 사진과 솔직한 글을 읽으면서 우리집이 생각나서 여러 번 웃었어요 ㅎㅎㅎㅎ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