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적으로 저녁형 인간이다. 저녁형 인간들이 쓴 <아침형 인간 강요하지 마라>를 읽고 어찌나 속이 시원했던지 모른다.
생물 주기 신경학자 러셀 포스터를 사랑한다. TED talk 강연에서 그는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사회경제적 지위에 차이가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말하며 ‘일찍 일어나는 것이 사회적 성공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우리가 수면에 대해 가지고 있는 큰 착각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강연 중 그가 남긴 말 “제 경험상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단지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정도입니다.”은 나같은 저녁형 인간들이 ‘아침형 인간’을 강요하는 사회에 항변할 수 있는 ‘과학적’ 방어기제가 된다.
'저녁형 인간'들이 일찍 일어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일찍 일어날 수 있다. 오전 라디오 프로그램을 15년간 진행한 가수 이현우는 아침잠이 많아 방송시간에 안 늦고 나오는 것부터가 걱정이었지만 어느새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고 말했고, 20여 년간 아침마당을 진행하다가 하차한 후 아침 9시까지 ‘늦잠’을 잔 이금희 아나운서는 자신이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아침 월급형 인간’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국제 행사 진행을 하다보면 시차 때문에 어쩔수 없이 새벽부터 업무가 시작되는 일이 다반사다. 특히 화상회의 툴로 진행하는 행사의 경우 강연자의 인터넷, 오디오 세팅을 체크하기 위해 행사시작 한 시간 전에는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화상회의라고는 하지만 강연자들에게만 화면을 켜라고 할 수는 없으니 옷과 머리모양 등을 신경쓰다보면 새벽에 알람을 맞춰놓아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찍 일어나려면 일짝 자면 된다는 것은 마치 수학공식처럼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로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도, 누워서 잠이 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쉽지 않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불러온 불안감은 자꾸만 화들짝 놀라 깨게 만든다. 그렇게 자는둥마는둥하며 반강제적 새벽 기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세 개의 알람을 맞췄다. 불안감이 잠식한 나머지 알람이 울리기도 한참 전인 4시 반에 깨어났다. 스마트 폰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5시 반 정도까지 뒤척거리다가 결국 침대에서 나와 아침 스트레칭을 하고 아이의 도시락도 준비한 후 샤워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뭔가 내가 엄청 생산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비자발적으로 새벽기상을 체험하며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제일 처음 발견한 것처럼 설레는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놀랍게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나서도 하루의 일상을 이어나가는데는 크게 무리가 없었다.
‘공짜로 얻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새벽 시간’을 예찬하는 목소리에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저녁형 인간’으로 나를 규정하며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미라클 모닝’ 루틴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일어나자마자 의식의 흐름을 끄적이는 모닝 저널 작성, 굳었던 몸을 폼롤러에 굴려 구석구석을 깨우는 스트레칭,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 한결 개운해진 마음으로 커피를 내려와 책상에 앉아 읽어보는 두 챕터의 책, ‘미라클 모닝’에서 얻는 기쁨을 좀더 증폭시키기 위해 나는 슬그머니 루틴에 하나 둘 새로운 활동을 끼워넣었고, 나의 취침시간은 점점 빨라졌다.
‘미라클 모닝’을 중단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점차 ‘일찍 자야지!’하며 나를 채찍질하는 목소리를 발견한 이후였다. 아침 루틴을 유지하면서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이 가능은 했지만 미라클 모닝이 단단해질 수록 저녁의 즐거움을 하나씩 내려놓아야했다. 아이와 한국 드라마를 보며 깔깔대는 시간, 수북히 쌓인 빨래를 처리할 시간, 어스름한 저녁 노을을 보며 천천히 걷는 시간, 아이를 재우고 맥주를 앞에 두고 남편과 마주 앉아 두런거리는 시간, 이 시간들을 포기하면서 쫓기듯 일찍 잠자리에 들며 내가 ‘무엇을 얻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니 뚜렷한 ‘성취’가 보이지 않았다.
‘미라클 모닝’ n년차로 나를 소개할 일은 앞으로도 없겠지만, ‘저녁형 인간’의 틀을 벗어난 경험이 유용하게 쓰이는 때가 있다. 밤낮이 완전히 바뀌는 한국에 방문했을 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찬 일정을 소화하고 11시가 넘어 들어와도, 늘 새벽이면 갑자기 눈이 떠지곤 한다. 자고 있는 가족들을 방해하지 않으며 할 수 있는 pop up ‘미라클 모닝’ 루틴을 하나씩 개발하고 있다. 누운채로, 부시럭거리지 않으며 시도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평소에는 빨리빨리 해치우는 body scan명상, 눈을 감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안구 운동, 복식 호흡과 흉곽호흡을 반복하며 숨을 깊고 길게 유지하는 호흡 연습 등을 시도하며, ‘찰나의 순간’을 잘 즐기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새로운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언제 일어날 것인가’보다는 ‘내 몸이 원하는 하루의 리듬이 무엇인가’에 고민을 하고싶다. 몸이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리듬을 찾아가는 시도를 하는 서로를 격려할 수 있기를.
황진영
미국 수도에 있는 한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