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난 고등학생이면 다 컸지,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이건 미처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에는 생각해내지 못한 것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2월에 받은 대학 졸업장이 아직 제자리를 잡지도 못한 3월 2일자에 한 고등학교에 발령을 받고서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됐었다. 그 때의 나는 뭐랄까. 동물원에서 나고 자라 야생의 색이라곤 전혀 띌 수 없는 몸만 다 큰 집토끼 같았달까.
첫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나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우월해 보였다. 그들 중 몇몇은 고기집에서 자기 몸 만한 솥을 닦기도 했고, 몇 명은 오토바이를 타고 밤새 배달을 하여 한 달에 나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그들은 티비 속 이슈가 되는 모든 것에 나보다 더 빨리 도달해있었고, 그때의 나는 ‘주폭’이니 ‘폭주’니 ‘탄원서’와 같은 생경한 단어들이 실재함을 처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동물원 밖에서 집토끼의 눈은 작아질 줄 모르는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영어 교과서 지문을 가르치는 시간 외에는 오히려 나의 학생들에게 꾸준히 무언가를 배웠다. 입시가 전부이지 않은, 전부일 수 없는 서울의 평준화 고등학교 아이들의 시선과 입장이란 것을 빠르게 체득해 나갔다. 그들은 고등학생이었고, 내게는 그들이 다 큰 존재 같이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교직에 들어선지 햇수로 10년이 넘었고, 그 사이 나는 결혼과 임신, 출산과 육아를 모두 경험했다. 남고생들의 생태를 더욱 가까이에서 봐왔기 때문에 나는 나의 임신과 출산이 이상하게도 조금은 겸연쩍고 부끄럽다 여긴 적도 있었지만, 이제야 나는 그들을 나보다 스무살은 어린 열일곱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스크로 가려져 있던 넘치는 볼살이 얼굴선을 비집고 튀어나왔을 때 그만 피식 알아버린 것이다. 마치 나의 네 살배기 아이와 같이, 그들도 한참 더 자라야 할 때라는 것을, 그리고 훌륭한 어른에게 배워야 할 것이 아직은 많은 때라는 것을 말이다.
교사에게 3월이란 가장 잔인한 달이다. 담임을 맡은 경우, 반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기도 전에 세팅해야 할 수많은 업무에 저녁 밥을 먹는 도중 잠이 들었다는 농담 같은 진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니 말이다. 같은 부서랍시고 책상을 야무지게 모아는 놓았지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유일한 시간은 점심시간 뿐인 요즘. 식사 중, 올 해 우리 학교에 처음 부임하신 부장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신다. “더글로리 다봤어? 나 완전 드라마 광이잖아.“
질문이 끝나자마자 선생님들은 “저 토요일에 새벽 4시에 잤잖아요.” 혹은 “일요일 밤 12시 넘어까지봐서 결국 다 봤어요.” 라며 제각기 이야기한다. 작품의 완성도가 제법 있었다는 둥, 시나리오가 끝까지 흥미진진했었다는 둥의 이야기가 짧게 오가고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드라마의 중심 소재가 ‘고등학교에서의 학폭’인데 우리는 ‘학폭’에 관하여 어떤 이야기도 나누지는 않았다.
사실 1화를 남편과 함께 시청하고는, 얼굴을 잔뜩 징그리는 남편과 별개로, “학교에서 저런 애가 어딨어. 저거 너무 옛날 일을 과장해서 극화하는거 아냐? 난 학교에서 근무하며 저런 애들 본 적 없어.”라는 반응이 제일 먼저 나왔다. 아무리 약육강식 그 자체인 남자반의 경우에도, 장애를 가진 아이가 다수에게 문제 행동을 보였어도, 이런 천인공노의 악함은 겪어보지도, 들어도 못했다. 오히려 나는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선하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려왔던터라, 이런 과한 설정 자체에 반발심이 먼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소재가 된 학폭 내용이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믿기 힘든 일이기도 했지만, 그런 끔찍한 일을 벌린 열일곱의 무리들이 대뜸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열일곱은 그래도 이정도는 아닌데… 그들을 이렇게까지 악하게 내몬 것은 누굴까…’
물론 이유가 있어서든 없어서든 학교 폭력을 용인하고 데에는 한치의 용납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 역시 해를 가하는 와중에 자신의 영혼이 상처받고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라도 어른인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자극적인 대사와 장면이 처음부터 끊이지 않던 드라마에서 내게 가장 비수처럼 꽂힌 말은 다름아닌 학폭에 대처하는 교사의 멘트였다. “이쯤되면 너한테 문제있는거 아니니?” 대사를 듣고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은 선하다고 믿는다면서, 나는 속으로라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지 바로 자문해봤다. 줄곧 스스로의 행동거지를 냉정하게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교사로서의 의견을 밝혀왔던 터라 혹시나 내 말을 그렇게 곡해하여 듣는 아이는 없었을지 철렁 마음이 내려앉기도 했다. 분명 드라마에서 목격한 학교폭력에는 어떠한 합리적인 이유와 명분도 없었다. 가해자의 배설이라고 밖에 명명할 수 없는 기껏 어느 불편한 감정의 휩싸임이 전부였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합리적인 근거를 찾으려하는 어리석음을 멈춰야 할 것이다. 교사로서 앞으로 그런 순간을 맞이할 날이 있을지 없을지 알지 못하지만, 난, 왜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묻지 않고 그들을 두 팔 벌려 안아주기만 할 것이다. 드라마가 나에게 알려준 것은 이것, 딱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동은이, 그리고 연진이, 재준이, 혜정이, 사라, 명오. 모든 피해 학생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모두에게 연민의 마음을 전하며.
* 글쓴이 - 은호랑이
현재 세상과 소통하는 (거의) 유일한 채널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회, 정치, 환경, 연예 등 다양한 지면을 아이들과 그리고 동료 교사들과 함께 읽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적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지금이 가장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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