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는 외부인이 보기에는 어떤 낭만으로 가득한 업종이다. 손님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이지 그럴듯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 안과 다르게 늘 정리되어 있고, 테이블과 트레이는 낡았을지언정, 끈적임이 없어 청결한 느낌을 준다. 어떤 카페에서는 평소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이나 오브제를 앉아서 감상할 수도 있다.
조도가 낮은 따뜻한 빛의 전구 아래에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보면 그들은 어떤 예술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은은한 배경 음악에 따라서 바리스타가 조용히 움직이면 어느 순간 원두가 분쇄되는 소리가 들리고 느껴지는 커피 향이 한층 더 깊어진다. 무엇보다 몇 번의 손짓으로 작은 커피잔에 어떤 그림을 그려낸다. 잔 속의 짙은 갈색의 크레마를 도화지 삼아 작은 나뭇잎, 어떤 작은 새, 꽃 같은 것을 그린다.
잔을 들면 작은 그림이 일렁인다. 마시면 입 속으로 그림을 들어온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어떤 스위치가 딸깍하고 켜진다. 바쁘고 지루하고 틈이 없다고 느껴졌던 순간이었는데 여유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진다. 어쩌면 하루가 저물어가는 순간에도 남은 오늘을 모색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고,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상대방의 목소리에 몰입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창업을 하기 전에 고정적인 돈벌이 없었던 내가 종종 카페를 찾는 사치를 부렸던 것은 그 감각이 좋아서였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서 심장이 적당히 두근거리고, 마음의 초점이 선명해지는 순간이오면 나는 어떤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그 공간과 연애를 하는 느낌도 들었다. 내 마음속의 긴밀한 고민을 풀어낼 자신도 없지만, 그래도 드라마의 마무리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니까. 앞으로 펼쳐질 삶을 장밋빛으로 물들여주는 그 커피 한잔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공간이 좋았다. 카페 창업을 결정한 것은 창업 비용이 적어서도 있지만, 어떤 낭만적인 확신 같은 것이 있었다. 찾아오는 손님을 짧은 순간이라도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면 입에 풀칠은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뭔가에 빠져들듯 창업했고, 한 해 두 해흘러 어느새 십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창업은 그 공간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하루도 피할 수 없이 쌓여가는 삶의 부산물을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지만 때로는 아득한 미래가 불안해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워야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위안을 느끼는 것처럼 조금씩 나아가지는 손님의 삶을 보면서 어떤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했다. 손님이 주인공이라면, 바리스타의 삶은 잡일을 마다하지 않는 조연출 같았다.
장사를 오래 할수록, 내가 언제까지 이 공간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한다. 결혼하고 아이가 커가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노후를 염려하는 것과 비슷한 결이다. 이런 걱정은 매일 조금씩 선반에 쌓이는 먼지처럼 끈질기고 성실한 감정이다. 테이블에 있는 얼룩보다 그것을 닦아내는 것이 매일 해내야 하는 중요한 업무다. 오늘 장사가 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결과가 아니라 또 다른 엔딩이 있는 과정이라 믿고 싶다. 어렵지만 믿어야만 하는 것이다.
창업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고 시작은 낭만적이지만, 어렵지 않은 것은 없으므로 당연한 일이라 여겨야 한다. 특별한 것 없는 반복 속에서 조금씩 자라는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커피 한잔을 하루의 낙으로 여겨주는 손님이 있다면 이 공간을 더 오래 끌고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것이 덧없는 희망일지라도, 지금을 이끌어주니까. 손님들이 카페 문을 드나들 때마다 좋은 하루가 되어라고 말을 건넨다. 그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내일도모래도 이 공간에서 그들을 기다릴 수 있다. 그 마음을 어쩌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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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11년째 ‘좋아서 하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글을 쓴다. 2019년부터 2년 동안 <경남도민일보>에 에세이를 연재했고, 2021년에 『너를 만나서 알게 된 것들』을 썼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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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정
글이 정말 아름다워요. 여러번 음미하고 싶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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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생생한 반짝거림으로 가득한 글을 읽으며 김해에 있을 아름다운 카페 상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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