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카페에 도착해보니, 마감 시간에 해야 할 일 중에서 누락된 것이 많았다. 어제 사용한 워터 디스펜서가 세척되지 않았고, 에스프레소 머신의 그룹 헤드 상태도 컨디션이 100%가 아니었다. 청소 솔을 사용하고 육안으로 확인하지 않은 한 듯 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온 것이 다행이었다.
오픈 시간이 되기 전에 바쁘게 움직였다.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전에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은 사진으로 남겼다. 잔소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타협할 수는 없었다. 텅 빈 카페에 앉아서 S에게 보낼 문자를 정리했다.
잘한 것이 100개가 넘으니까, 스스로 칭찬 많이 해주세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제대로 한 것이 더많지만 고쳐야 하는 부분은 나중에 정리해서 보내겠습니다. 어제 너무 고생하셨고 감사합니다. 일어났을 것 같은 시간에 짧은 문자를 먼저 보냈다.
어제부터 정식으로 시작한 S는 카페 쪽 경력이 없는 친구였다. 그럼에도 메인 바리스타로 채용을 결정한 것은 어느 시절의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면접을 볼 때 뭔가 절박한 느낌이 들었다. 신을 믿는다는 것도, 커피를 만들어본 적도 없고, 카페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기에 나이가 많은것도 비슷했다.
비슷했지만, 나보다는 조금 더 밝게 보였다. 서른 넘어 교사의 꿈을 접고 커피를 처음 배웠던 나는 지나치게 그늘진 학생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밝은 척을 했지만, 숨길 수 없는 어떤 무채색의 기분이 늘 따라다녔다. 뭔가 웅장해보이는 머신 앞에서 주눅이 들었고, 잘못하면 부서지는 것이 많다는 어떤 그라인더 앞에서, 생두가 쇳소리를 내며 회전하는 로스팅 기계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
뭔가 칭찬을 들은 날은 가능성이 보이는 듯해서 기분이 좋았고, 뭔가 잘못된 점을 가득 지적받은 날은 정말이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카페 경험을 쌓기 위해서, 레시피를 배우기 위해서 다른 카페의 문을 두드릴 때는 더 낮은 자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많았고, 마음은 급했고, 길은 모르겠고, 나는 해낼 자신감도 없고, 정말이지 커피에 관해서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골목골목 낯선 카페를 찾아다니며 돈을 줄 테니 조금이라도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다니는 날이면 나는 정말이지 어떤 바닥만큼 낮아졌다. 그 바닥은 정말이지 깊고 구석진 곳에 있었다. 얼마간 돈을 주고 한적한 카페에서 라테 아트 연습하기도 했고, 폐업할 가게에서 집기류를 구입하기로 약속하고 레시피를 배우기도 했다. 허탕치고 답이 없구나 싶은 날은 골목을 헤매면서 기도했다.
저를 불쌍하게 여기소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때로는 좋은 일이 생길까 봐. 걸음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그런 시절 나의 모습이 S에게서 언뜻 보였다. 이번에 그만두는 K는 S를 보며 힘들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잘될 거라고 했다. 나도 했으니까, 더 잘할 거라고. 아무것도 모르고 이 공간에 와서, 괜찮은 바리스타가 되어서 나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말했다.
S에게는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귀와 어깨를 최대한 멀리 두는 느낌으로 서 있으라고 언질을 줬다. 하늘에서 누군가가 정수리를 끌어당긴다는 느낌으로 곧게 서 있어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오래 서 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다고 이야기했다. 단톡방에는 S의 커피가 맛있다는 단골손님의 전언을 적었다. 조금은 느려도 괜찮다고 부족함이 있다면 친절함으로 채우면 된다고 말했다.
귀와 어깨를 최대한 멀리 두는 느낌으로 서 있어야 한다
*
‘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11년째 ‘좋아서 하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글을 쓴다. 2019년부터 2년 동안 <경남도민일보>에 에세이를 연재했고, 2021년에 『너를 만나서 알게 된 것들』을 썼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ung.inhan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