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야?”라는 물음에, 예술에 조예가 없는 사람들도 거의 대부분 고흐를 꼽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의 표현주의적 색채가 ‘나 이렇게 힘들어’를 알아달라는 외침으로 다가와,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옛날부터 고흐의 그림은 부자들에게 소비되었고,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상업적 전시와 판매목적의 굿즈로 팔리고 있는 상황이 못마땅하기도 했다.
우연히 고흐의 편지 원문과, 그의 그림인 <해바라기>의 원작을 직접 볼 기회가 생겼다. 그는 내 생각과 다르게,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길 바라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따뜻한 사람이었고, 외로운 사람이었으며, 자신과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자들을 품고싶어했다.
잠시 고흐의 삶을 들여다보자.
미술 상인으로 미술계 일을 시작했던 그는 문득 예술이 세상에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고, 세상에 선을 행하고자 종교로 전향했다. 그는 벨기에의 빈민촌인 보리나주에서 설교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6개월 후 교회에서 해고된다. 설교자로서 실패를 겪은 후에, 고흐는 자신의 인생을 예술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는 가난하고 외로운, 세상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을 위한 그림을 그린다.
이때 그의 첫 작품인 <감자먹는 사람들>이 완성된다. 그림안의 사람들은 고흐가 눈여겨 보았던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난하나, 슬퍼 보이지 않는다.
고흐는 1888년에 <해바라기>를 완성한다. 그리고 얼마 뒤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해바라기>라면 보통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고 한 방향으로 자라나야 정상인데, 그의 해바라기들은 태양을 잃은 것인지, 죽어가는 것인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숙인 채 꽃병에 담겨있다. 여기서 가장 슬픈 지점은, 고흐가 ‘vincent’라는 낙인을 죽어가는 해바라기들이 담긴 꽃병에 썼다는 것이다. 대부분 다른 작품에서, 다른 화가들은(고흐 조차도) 작품의 모서리쯤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다.
나는 상상한다. v,i,n,c,e,n,t, 이 일곱 개의 알파벳을 꽃병에 비스듬히 한 글자 한 글자 새겨 넣고 있는 고흐의 모습을. 그는 세상에 선을 전하고 싶었고,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었으며, 세상에서 소외된 하찮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그림을 계속 그렸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소외된 자들을 살릴 수 있을 거란 망상은 하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자들의 태양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꽃병이 되어 그들을 품을 수는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정도를 했던 것 같다. 외로운 사람의 눈에는 외로운 사람이 보이는 법이니, 고흐는 죽어가는 해바라기이면서 동시에 그들을 담고 있는 꽃병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의 삶을 ‘천재 예술가’로 일축할 수 없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고, 예술이 세상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였고, 살아나는 것들 보다는 죽어가는 것들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었다. 세상에는 예쁘고 꼿꼿한 해바라기가 아닌 시들고 꺾인 해바라기 또한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던 고흐는, 그 시들고 꺾인 해바라기들에게 자신의 그림으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내 주었던 것이다.
고흐는 1890년 7월 29일에 죽는다. <해바라기>를 완성한지 2년만이다. 안타깝게도, 예술이 아닌 진짜 세상에서는 시들고 꺾인 해바라기가 갈 곳은 없다. 사람들은 시들시들 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나, 세상에는 항상 죽어가는 것들이 있다. 이를 정확히 본 사람은 대체 어떤 화분에 담길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고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죽어가는 것들을 정확히 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의 그림을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부수적인 것들로 그를 판단하려 한 것은 아닐까? 고흐의 말대로, 진실은 다른 것들이 아니라 그림 만이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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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
글쓴이 - 영원
음악 공부를 하고있는 대학생입니다. 이유있는 예술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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