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두 가격이 제법 올랐다. 거래하는 업체 직원의 말에 따르면, 내년까지는 계속 이렇게 오를 예정이라고 한다. 오른다는 것은 아무래도 수요는 늘었지만, 생산량이 줄었다는 뜻이지 싶다. 경제 시간에 그런 것을 배웠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 것을 통해서 가격이 결정된다고 배웠다. 생두 단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분명히 카페를 운영하는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왜 그럴까 고민을 하게 된다. 한산한 시간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한다. 해결하고 싶지만, 내가 해결 할 방법이 없는 문제들. 여유를 즐겨할 시간에, 이 문제에 오랫동안 빠져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그림이 떠올랐다.
어떤 타국에서 허름한 옷을 입은 농부가 열심히 커피나무를 돌보고 있는데, 마대에 쌓여가는 커피체리의 양은 점점 적어지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다른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들이 그것에 대한 값을 치르고 턱을 만지작거리며 어떤 낡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갓내린듯한 커피를 마시고 있다. 밖에는 그곳 원주민들이 땀을 흘려가며커다란 마대 자루를 더 커다란 컨테이너에 옮기고 있었다. 그 입구는 생각보다 작고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내부는 실제보다 더 깊고 넓어 보였다. 그런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들이 몇 대가 마을 어귀에 줄지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 년 전 어떤다큐멘터리에서 본 듯한 이미지인 것 같기도 하다.
최근 어떤 책에서 커피 산지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 책에 따르면, 전 세계의 커피는 대부분 커피 벨트에서 재배된다고 했다. 우리 카페에서 사용하는 주로 사용하는 원두인 인도네시아, 케냐, 과테말라도 거기에서 만들어졌다. 커피 벨트는 남위 25도에서 북위 25도 사이의 지역을 말한다. 적도와 가까운 곳에 그 산지가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적도와 가깝다고해서 커피 생산지가 실제로 무더운 곳은 아니다. 그 지역을 가 본 적은 없지만, 그 책에는 그 날씨를 상춘 기후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늘 봄 같은 곳이라는 말이다.
늘 봄 같은 곳은 어디에 있을까. 저기, 높은 곳에 있다. 낮은 지대 기온이 더워도,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온도가 떨어진다. 태양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저장할 지표도 작을뿐더러, 그것을 보호할 대기층 또한 얇아지기 때문이다. 낮은 지대의 기온이 연중 높은 온도로 일정하다면, 높이 올라갈수록 특정 고도는 늘 봄 같은 기후가 형성된다는 것이 상상된다. 정리하자면, 적도 부근의 고산 지역이 늘 봄이라 할 수 있겠다.
해서 상상 속의 농부들은 얼굴이 조금씩 검다. 원래 피부가 그렇지 않더라도, 보호할 공기층이 얇아서, 직사광선에 약간씩 그을린 듯한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 열심히 경사진 땅을 오가며, 때로는 지나친 햇살에 커피 잎이 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더 큰 나무를 심으며, 그늘을 만들어가면서 커피나무를 돌보는 모습이 그려진다. 높은 곳의 평탄한 지역도 있겠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상하게도 그런 것들이다. 이렇게 작은 원두에 깃든 다채로운 맛을 경험할수록 거기에는 어떤 값진 노동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우리 카페에 생두를 판매하는 직원에게 커피의 작황이 좋지 않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올해의 그곳의 날씨가적어도 봄에서 이탈한 것은 아닐까 싶다. 낮은 지대의 온도가 변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높은 지대의 기온도 변했을 것이다. 어떤 지역은 냉해를 입거나, 어떤 지역은 지난해보다 유난히 더워져서 없던 병충해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커피를 원하는 사람은 이렇게 그대로 이거나 늘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도 커피 장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이런 걱정에 빠진 것이다.
늘 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사람의 마음도 그러한데, 세상사는 오죽할까 싶다. 카페에서 가장 중요한 생두의 사정이 이렇게 되었는데, 나는 어떻게 내면의 온기를 유지하고, 얼마만큼 허공으로 떠올라 마음을 다잡아야 할까 고민을 하게 된다. 차분해질 수 있는 그 지점을 어림잡아서 생각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린다.
그래도 이 공간만은 봄처럼 지켜야한다. 조금 덜 남기더라도, 어떻게 하면 이 반복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결론은 어렵지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커피 한잔에 삶의 고단함을 의탁하는 손님들을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 쉬는 날에도 쉼 없이 길을 걷는 성민을 위해서라도, 나는 봄 같은 여유를 찾아야 한다.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타국의 농부처럼 어떤 땅을 찾아야 한다. 거기에 새롭게 흙을 파내고, 묘목을 심고, 새로운 나무 그늘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 외에도 크고 작은 말썽이 생겼다. 커피 콩을 가는 그라인더 두 대가 고장 났고, 냉장고도 말썽이다. 유리창에도 쩍 하니 금이 갔다. 어떻게 부지런히 움직이고 머리를 굴려서 절반 정도 문제를 해결했다. 앞으로 문제가 남았고 아마도, 이번 겨울은 유난히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봄의 징후를 찾아야지 다짐한다. 서릿발로 조금씩 딱딱해지는지면을 밟으며 며칠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아직 겨울은 깊어지지 않았는데, 선택할 수 없는 봄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을 상상하며, 찾을 수 있는 봄의 고도가 어디엔가 있다고 믿으며 계절의 일부를 흘려보냈다.
*
‘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작은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