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1등에 당첨되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당첨될 수 있는 모든 숫자 조합을 작성해 응모하는 것이다.
농담 같은 말이지만, 진짜로 하려고 하면 곤경에 처한다. 45개의 숫자 중에 6개의 숫자를 구성하는 경우는 무려 8,145,060개가 있어서 이 모든 가짓수를 표기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여섯 개의 번호를 작성하는 데 10초 정도 필요하다고 얼추 계산하면 당첨될 수 있는 모든 숫자조합을 표기하는 데 3년 남짓 걸린다. 조금도 쉬지 않고 24시간 표기만 해도 그렇게 걸린다. 출력도 문제다. 미리 800만 가지의 번호를 표기해 놓은 뒤 기계 10개를 동원해 1초에 하나씩 용지로 뽑더라도 모든 경우의 수를 구매하는 데 열흘 가까이 걸린다.
농담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 적이 있다. 유럽의 한 투자회사가 유로밀리언에 도전한 것이었다. 유로밀리언은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스페인과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이렇게 유럽 9개국이 공통으로 발행하는 복권이다. 유로밀리언은 1~50까지의 숫자 가운데 5개의 숫자를 고른 뒤 이어서 1~12 가운데 2개의 번호를 골라 총 7개의 번호를 맞추는 방식이다. 미국의 파워볼과 메가밀리언처럼 1등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 회로 당첨금이 넘어가는데, 이월제한이 없다. 미국에서는 2016년 1월에 15억 8,600만 달러라는 역대 최대 당첨금이 쌓였었고, 세 명의 당첨자가 타갔다. 2018년 10월엔 15억 3,700만 달러, 한국 돈으로 1조 7,500억 원을 단 한 명의 당첨자가 수령했다. 한국의 역대 최고액은 407억이다. 하지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여론을 수용해서 한국의 로또는 이월횟수를 2회로 제한했고, 1회 응모가격이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내렸다. 그만큼 당첨금 총액이 줄어들었고, 이전처럼 몇 백 억대의 당첨금은 나오기 어려워졌다.
유럽의 투자회사가 나선 건 유로밀리언에 어마어마한 액수가 쌓여있을 때였다. 이 투자회사는 유로밀리언 당첨을 위해 전체 경우의 수 가운데 70%를 확보하느라 엄청난 거금을 썼다. 자신들이 사들이지 않은 숫자에서 당첨번호가 나오면 큰 손해를 입는 모험이었는데, 자신들이 확보한 숫자조합에서 1등 번호가 나왔다. 복권발행사가 불공정한 방법으로 당첨되었으니 무효라고 법정소송까지 했으나 투자회사가 승소했다.
이처럼 로또번호를 잔뜩 사면 1등에 당첨될 수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세금으로 33%를 떼고나면 1등 당첨자의 수중에는 10~15억 정도가 떨어진다. 모든 경우의 수를 표기하는 데 81억을 쏟아서 10억을 가져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물론 복권을 몽땅 사면 2등, 3등, 4등, 5등의 당첨금도 싹쓸이할 수 있지만 당첨금을 다 합치더라도 자신이 부은 돈에 턱없이 모자란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도 복권을 산다. 당첨자가 늘어나면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액수는 줄어든다. 당첨금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해서 얻는 로또 1등이란 피로스의 승리일 뿐이다. 모든 로또를 사서 1등에 당첨되는 건 그야말로 자신의 피로 쓴 승리다.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 건 그저 로또 1등이라는 상징을 얻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거액을 단번에 거머쥐고 싶기 때문이다. 일확천금에 대한 욕망을 공략하면서 여러 업체들이 우후죽순 난립해있다. 로또번호 예측업자들은 1등 당첨금을 바라는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해서 돈을 그러모은다. 로또 당첨 100%라고 허황된 홍보를 하거나 적중하지 못하면 가입비를 전액 돌려주겠다고 광고하며 솔깃하게 만든다. 로또 1등에 당첨될 번호라면 회비를 받고 알려주기보다는 그냥 자신들이 그 번호로 로또를 사면 될 텐데, 그들은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한다.
그들이 로또 당첨번호를 어느 정도 맞추기는 한다. 번호를 대량으로 발행하기 때문이다. 한 업체를 분석했더니 회원이 대략 80만 명이었다. 이 80만 명에게 10개의 번호를 보내주면 매주 800만 개의 번호를 생산하는 셈이다. 800만 개의 번호조합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자기들이 보내준 번호 중에서 1등이 나오지 않기가 어렵다. 이것이 로또예측업자들이 로또 당첨번호를 매번 맞추는 비밀이다.
업자들은 번호를 남발한 다음 로또번호를 예견한 것처럼 생색을 낸다. 업계의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이 무작위로 뽑아낸 숫자들을 돈을 내고 받아 쥔다. 사실상 복권판매점에서 기계가 자동으로 뽑아주는 번호와 당첨확률이 동일한 숫자조합인데도 설레는 마음으로 한주를 기다린다. 기대를 잔뜩 하고 발표를 기다리지만, 당첨되지 않는다. 휴지조각이 된 로또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조각조각 나는 것 같은데, 업체에겐 변명이 준비되어 있다. 회원 가운데 1등이 당첨됐다고 하니 할 말이 없어진다. 다음엔 행운이 나에게 올지 모른다.
로또 1등 정답률 100% 적중이라는 업체들의 사기에 속지 않으려면 업체들이 로또예측번호를 얼마나 뽑아내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단 하나의 번호조합을 미리 공지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사기이다. 대부분 로또번호를 예측하면서 대가를 얻어내는 이들은 불법업체들이고, 제3국에 서버를 두고 있어서 추적과 검거가 쉽지 않다.
로또 1등에 당첨되고 싶은 마음은 로또 명당을 찾게도 한다. 실제로 명당이라 불리는 복권판매점에선 1등 당첨자가 자주 나온다. 정말로 신묘한 기운이 흐르기 때문일까? 그럴 리가 없다. 우연히 1등 당첨자가 한 번 나온 뒤 명당이라 불리면서 사람들이 몰려와 대규모로 구매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만큼 다른 곳보다 당첨자가 빈번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로또 명당에서 복권을 사더라도 로또 1등에 당첨될 가능성이 티끌만큼도 올라가지 않는다. 그저 복권판매소에 굉장한 수익을 가져다줄 뿐이다. 로또 명당으로 알려진 곳의 운영자는 1등 복권을 팔았다는 보상금 명목으로 복권대행사로부터 200만원을 받는데다 복권이 팔리는 만큼 판매수수료를 번다.
로또 명당을 굳이 찾아가서 로또를 구매하는 사람은 시간이 남아돌거나 아니면 절박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로또 명당 앞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시간이 남아돌거나 절박한 사람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로또에 당첨될 확실한 방법은 없다. 세상이 불안하고 불확실하듯 로또 역시 불안하고 불확실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로또를 구입한다.
<로또를 향해> 글쓴이 - 이인
인문학 강사이자 작가. <나의 까칠한 백수 할머니>, <고독을 건너는 방법>, <남자를 밝힌다> 등등 여러 책을 저술했고, 많은 곳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재미있으면서도 산뜻한 글을 쓰려고 해요. 언젠가 그대와 반갑게 뵐 날을 상상하며, 오늘도 싱싱하고 생생하게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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