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멤버였던 C는 커피 학원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수강생 중에서 몇 안 되는 비슷한 또래였다.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고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그의 오래된 체어맨을 타고 몇 번인가 카페 투어를 가기도 했었다.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몇 잔의 커피를 마시던 어느 날 함께 할 것을 제안했고, 그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카페를 같이 시작하게 되었다.
씩씩하고 든든한 캐릭터였다. 알고 보니 그는 중학교 시절 역도 선수 생활을 하고, 고등학교 때는 전문적으로 복싱도 했었다. 어쩐지 등이 넓다 싶었다. 멋스럽게 수염도 길러서 전반적으로 남성미가 넘쳤다. 해서 카페 창업을 알리는 현수막에는 두 남자가 운영한다고 홍보했었다. 십 년 전 일이었다.
그 해, 이 거리에는 배우 강동원의 누나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었지만, 내부 사정으로 잠시 휴업 중이었다. 다른 건물은 공터이거나, 짓고 있거나, 공실이었다. 인근에 카페가 이곳밖에 없었기 때문에 손님이 제법 많았다. C의 아우라도 한몫했다. 소위 말하는 오픈빨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매장이 가득 차고, 테이크 아웃 손님이 계속 이어졌다. 거리의 풍경을 독점하던 그때는 짧았으나, 잠시나마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님들이 제법 몰리면서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에 꽤 힘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도 몇몇 카페에서 잠시 경험을 쌓았지만, 본격적으로 긴 시간 동안 노출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인기 많았던 바리스타 C도 마찬가지였다. 커피 애호가였지만, 사람 애호가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커피를 만들거나 청소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것은 둘 다 제법해냈지만,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다.
우리는 대개 회식을 통해서 그런 것들을 풀려고 했었다. 일을 마치고 C와 함께 시내의 술집에 가거나, 아니면 노래방에서, 모든 불이 꺼진 카페 테라스에서 술을 마시곤 했었다. 그때 어떤 말을 했는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지만, 그날 있었던 일을 안주 삼아서 자정까지 술잔을 기울였던 것 같다. 그렇게 잔을 비우면서 힘든 마음을 비우려고 했었다.
함께 고민을 나눴던 만큼, 우리는 때때로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기도 했었다. 어깨동무하고 밤거리를 걸어 다녔으니까.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이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곧 일을 그만두었고, 다른 카페로 일터를 옮겼기 때문이다. 그가 일찍 카페를 그만둔 것을 보면, 나는 썩 현명한 사장은 아니었던 것이다. 술에 취해서 고민을 토로하는 사장이라니.
그 이후에도 또 M이 있었고, J가 있었다. 직원이 바뀌는 동안 시간은 흘렀고, 건물은 완공되고 공실은 없어지고 카페가 들어섰다. 파운 제이, 마벨, 두원, 미카, 풀지 않은 선물이 생겼다. 카페의 매출은 오르락내리락했고, 어느새 회식은 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바뀌는 직원을 보면서, 하고 싶었던 일도 어느 순간부터는 해야 하는 일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균열의 시작은 어떻게 보면 나의 말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손님이 많았던 시절은 어느새 지난 시절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일 수도 있고, 이 공간이 오래되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해서 찾아와준 것에 고맙다고 생각하면, 약간의 선만 지킨다면 상처를 받을 일도 거의 없어졌다. 늘 오는 손님들은 커피 한잔을마시면서 자신의 삶도 응원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응원하기 위해서 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나만 따뜻하면 되는 일이다.
오랜만에,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기 위해서 젊은 친구를 제법 만난다. 소위 면접을 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하는 내가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말을 줄여야지 되뇐다. 내가 뭐라고 그들을 선택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 생각이다. 경력이 없어도 좋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해주는 사람과 함께 할 생각이다. 그 정도면 차고 넘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고, 보듬어줄 수 있길 바란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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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작은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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