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인문학 산책

서점에서 서점 책을 찾다_공간인문학_김근영

온-오프 공간의 세 서점들

2023.04.14 | 조회 1.33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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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종종 서점에 간다. 아니 꽤 자주, 서점에 가는 것을 즐긴다. 보통 어떤 기분일 때 그냥 서점엘 간다’. 누군가는 그럴 때 친구를 불러내 만나고, 누군가는 클럽에 가고, 또 누군가는 운동을 하러 가는 것처럼, 나는 서점에 간다. 꼭 그럴 때만 가는 건 아니고, 당연히 책을 사기 위해서도 간다.

4월에는 '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해 쓰고 싶어서, 서점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보통 내가 필요한 책을 찾아 구매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오래전부터 쭉 이용하는 인터넷서점 A에 접속해서 검색하기, 그리고 대형서점 K로 가 관련코너 서가에서 눈으로 더듬어 찾기.

 

인터넷서점, A

자연스럽게 더 많이 하는 쪽은 온라인 검색이다. A 어플을 열고 '서점’이라는 키워드를 넣어보았다. 알록달록한 책표지들이 썸네일처럼 떠있는 화면을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걸러내야 할 정보들도 함께 딸려 온다. 일테면 ‘서.점.대상’ 수상 소설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서점의 역사나 실제 서점 운영 사례였는데, 관련 없어 보이는 소설들이 많았다. 분야를 사회과학, 에세이, 역사, 인문학으로 체크해서 다시 추려본다. 가끔은 ‘이 상품을 구입하신 분들이 다음 상품도 구입하셨습니다.’라며 추천해주는 책들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지금 이 상품을 클릭한 분들이 다음 상품도 클릭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볼 때면, 인터넷을 사이버 '공간’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온라인 공간에 존재하는 서점이라서 얻을 수 있는 편리함은 꽤 크다. 어릴 때도 책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 마음이 더 커지고 마치 인생의 찐친처럼 자리를 잡게 된 건 A 덕분이라고 해도 될 거다. 아무래도 롱디 커플보다는 기쁘고 슬프고 외로운 순간에 한번이라도 더 만날 수 있는 상대와의 사랑이 길게 이어지고 깊어지기 쉬우니까. 읽고 싶은 주제가 생각나면 A를 찾고, 이 책이다 싶어 바로 주문하면 하루 이틀 뒤에 읽을 수 있게 되면서(e-book으로 선택하면 바로), 점점 더 책을 찾는 횟수가 늘고 있다.

 

대형서점, K

찾은 책을 주문해놓고, 이번에는 대형서점에 나가보았다. 대형서점은 복잡한 곳이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꽤 좋은 점들이 있다. 인터넷 서점이 사이버공간에 지어진 서점이라면, 이곳은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내가 머무는 시간에 그곳에 함께 존재하는(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는 사람도 아니고 보통은 대화를 나누지 않지만, 왠지 같은 서가를 바라보고 있는 이의 존재는 반갑다. 미지의 동료 같다고 할까. 그래선지 가끔은 저 옆에서 아까부터 같은 분야의 책을 보고 있는 사람의 손끝에 닿아있는 책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도 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당연히 이 있다. 인터넷서점에도 책은 있지만, 디지털의 비트로 존재해서 아쉬울 때가 종종 있는데, 여기에는 진짜 책, 고체로 된 책, 내 손이 닿아도 사라지지 않고 도망가지 않는 그 친구가 있다. 집어 들고서 버릇처럼 저자 정보, 목차를 찾아본다. 어떤 책은 내려놓고 또 어떤 책은 다시 서문을 펼쳐 읽는다. 특정 페이지를 찾아서 읽어보기도 한다

 

교보문고 대구점
교보문고 대구점

 

사실 버스비를 들이고 발품을 팔아 서점에 직접 가는 제일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미 한번 검색해보고 왔지만 나의 랜선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았던 좋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의 장소가 갖는 우연성은 참으로 신기하다. 우연인데 또 필연 같기도 하다. 특정 시간, 특정 장소라는 것이 곧 개연성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선물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갈 때마다 들르는 사회학코너였다. 벽면 서가에 촘촘히 꽂혀있는 책등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훑고 있을때, 3의 장소라는 책 제목에 시선이 멈추었다.

정확하게 3의 장소라는 것이 어떤 장소를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그래서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마침 읽고 있던 책 장소와 장소상실이 생각났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개인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정체감의 원천이 되는 장소에 대한 내용이 떠올랐던 것. 마치 부산여행에서 저녁식사 코스를 신중히 고르던 중에 멸치쌈밥이라는 메뉴이름과 사진을 보고, 불현듯 어릴 적 한번 먹어봤던 가물치찌개의 인상적인 맛이 떠올라 저녁 메뉴를 결정했던 것처럼 말이다.

묘한 기시감과 친밀감이 불러온 궁금증을 가득 안고 집어든 책에서 부제를 발견한 순간 느꼈던, 바로 그런 짜릿함이 나를 계속 오프라인 서점으로 데려가는 것이겠지. <작은 카페, 서점, 동네 술집까지. 삶을 떠받치는 어울림의 장소를 복원하기> "앗싸, 내가 찾던 책이다!"

 

3의 서점, 작은 서점 동네책방

3의 장소의 저자 미국의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사람들이 가정(1)과 일터(2) 밖의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리고 격식 없이 자주 찾는 공공장소들'을 제3의 장소라 칭한다. 그는 현대인이 느끼는 도시 생활의 외로움은 이런 제3의 장소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곳에서는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이 말한 순수한 사교가 이루어진. 목적, 의무, 역할에서 벗어나 오직 즐거움, 활기, 기분전환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만나 교류하게 된다.

가정과 일터에서의 책임에서 풀려난사람들이 저녁에 잠깐 들를 수 있는 익숙한 공간이 있다면, 그곳에 가면 언제라도 반가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게다가 그곳에서는 사회적인 이름표 다 떼고 순수한 나 자신의 매력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면? 저자가 펼쳐놓는 제3의 장소가 마치 판타지처럼 나를 설레게 한다.

 


책을 읽다 보니 제3의 장소로 딱 적합한 서점은 바로 동네 책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에도 동네 책방이 있다. 나는 이곳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었고, 좋아하는 작가의 북토크가 열리면 한 번씩 찾는다. 아직은 자주 찾고 늘 아는 얼굴들이 반겨주는 곳까지는 아니지만, 동네에 이런 곳이 있어서 참 좋다.

2000년대 후반부터 지역 곳곳에 다양한 개성을 지닌 독립서점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각 지역마다 동네마다 운영자의 취향이 십분 반영된 책방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런 작은 책방들이 도시의 문화 공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지만 개성 있는 공간들이 이 동네 저 동네 골목마다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퇴근길에 들러 술 한 잔 걸치며 하루치 스트레스를 풀고 가는 펍처럼, 학교 마치고 피아노, 미술, 태권도학원이 끝나고 부모의 퇴근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집 근처 책방에서 친구들과 만나, 간식을 먹으며 만들기 놀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퇴근 후 바로 집으로 가기 싫을 때면, 책방에 들러 새로 들어온 책 이야기도 듣고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사들고 나와도 좋겠다. 운영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꿈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장소가 주는 행복을 누리고 싶은 마음으로, 그래서 사람들이 행복한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역 책방에 합리적인 여러 지원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제주여행에서 들렀던 작은 책방 <여행가게>. 음료주문 시 테이블 이용이 가능하며, 시간 제한을 두고 합리적으로 운영해서 좋았다. 옆 테이블에는 학교를 마친 초등학생과 아빠가 함께 와서 책을 읽었다.
제주여행에서 들렀던 작은 책방 <여행가게>. 음료주문 시 테이블 이용이 가능하며, 시간 제한을 두고 합리적으로 운영해서 좋았다. 옆 테이블에는 학교를 마친 초등학생과 아빠가 함께 와서 책을 읽었다.

 

언제 어디서든 책을 만날 수 있는 온라인서점, 다양한 분야의 책들 속에서 시원하게 항해할 수 있어 자유로운 전국적인 프랜차이즈 대형서점, 그리고 동네의 사랑방이 되어주길 기대하게 되는 작은 책방까지. 모두 내가 사랑하는 서점들이다. 나는 지금도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다양한 형태의 공간으로 귀한 친구가 되어주는 나의 서점들을 찾을 생각을 하면서 행복해진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 있다는 건 일상의 축복인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서점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 도서

강성호 「서점의 시대」 나무연필

레이 올든버그 「제3의 장소」 풀빛

 

*글쓴이  김근영

이주, 이동의 경험이 많다. 90년대 문화사회학을 공부한 것을 최고의 행운으로 여긴다. 다양한 공간을 넘어 다니며 느끼고 의문을 품었던 것들에 대하여 공부하며 글을 쓰고 있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kunyoung.kim.31

블로그 https://blog.naver.com/kunyoungk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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