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종류의 금기를 금기하는 편이다. 나 자신에게는 물론 내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려 노력 중이다. 많은 어린 시절이 그러하듯 내 삶에 금기라고 새겨진 것들은 대부분 부모님이 건넨 것들이었다. 크고 작은 금기, 대체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작고 힘이 없었으므로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삶을 선택했다. 지금은 전혀 달라지셨지만, 그 시절 부모님은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나의 꿈을 지지해 주신 것(지금도 이 부분은 너무 감사하다) 외에는 내가 무엇을, 왜 원하는지 묻지 않으셨다. 많은 부모님이 그러했듯 성공적인 양육은 적절한 금기를 통해 자녀를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고 곱게 키우는 것이 최고의 양육이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중, 고등학교 시절 내 몸은 나의 자유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야만 사용할수 있는 몸이라 여겨졌다. 늦은 시간에 밖에 돌아다니거나 여행을 가는 것, 이성 교제를 하는 것, 목적 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는 것, 내 돈으로 원하는 것을 사는 것 등이 허락되지 않았다. 식물을 거실에 가득 채워 키우셨던 아버지는 정말 나를 온실 속에서 곱게 키우고 싶으셨던 것 같다. 타고난 기질이 순하고 내성적이던 나는 부모의 금기에 맞서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위의 두 언니가 사춘기 내내 여러 모양으로 맞서느라 집안이 시끄러운 걸 보아온 나로서는 가족의 평화에 일조하고 싶은 마음에 착한 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당장은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그 시절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금기가 주어지는 순간, 그 안에 갇힌 자아가 더 큰 파괴의 욕망을 갖게 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나에게 금기된 것을 인지하는 순간 온통 내 안에는 이 금기를 어떻게 넘어설까 하는 궁리, 아니 금기를 넘는 것 이상으로 누구도 나를 가둘 수 없도록 강력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차오른다는 걸 차차 알게 되었다. 상대가 규정한 대로 내내 머물 수 없다는 것, 완전한 내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그보다 훨씬 크다는 걸 깨달았다.
금기하지 않았다면 자연스레 시도하고 실패하며 배웠을 많은 것들이 금기된 탓에 중요한 성장기를 다 쏟아서라도 반드시 넘어야 할 거대한 장벽이 되었다. 모든 노력과 시간을 들여 주어진 금기를 뛰어넘고 보니 그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거나 조절하며 사는 것들이었다. 십수 년을 들이고서야 나는 그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다.
물론 오랜 시간을 쏟아부으며 금기를 넘어선 나 자신과 만난 시간은 그 자체로 많은 의미가 있었다. 전에 없던 야성이 생겼고, 나에 대한 실감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생겼으니 말이다. 금기를 넘어선 것 이상으로 내가 삶의 주체로 서는 과정을 경험했으니 귀한 시간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그 시간이 의미 있었다고 해서 내 아이들에게 같은 경험을 건네고 싶지는 않다.
남편과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금기를 설정하고 건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어떤 금기도 우리 관계와 상황을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서로를 신뢰하도록 돕는 것은 함께 누린 양질의 시간이고, 아이들이 자라는 건 실패와 실수가 너그럽게 용납될 때임을 배웠기 때문이다. 금기하기보다 어떻게 이것을 바라볼까 생각하게 하고, 적절한 선을 함께 만들어 가도록 열어두며 괜한 두려움으로 움츠러드는 것이 있다면 오히려 도전하도록 격려하곤 한다. 금기에 순종하면서 얻는 편안함보다 제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하는 경험과 그에 따른 책임감을 얻을 수 있도록 가족 모두가 실험하는 중이다.
엄마, 아빠는 담배 피워보셨어요?
나는 스무 살 새해 첫날 친구들과 술 마시러 갈 거에요.
엄마는 아빠가 몇 번째 사귄 사람이었어요?
나는 돈을 많이 벌어서 테슬라를 탈거야.
한동안 헌금 안 하고 간식 사 먹은 적 있었어요.
나는 중학교까지만 다니고 자퇴할 거예요.
아, 여자친구랑 반지 맞추고 싶다!
이번 시험은 망한 거 같아요.
스무 살이 되면 바로 자취하고 싶어요.
어떤 생각이든, 어떤 이야기든 아이들로부터 흘러나오는 모든 것을 환영한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수위가 낮은 발언들이 대부분이지만, 점차 더 강하고 발칙한 도전장을 내밀 거란 생각을 한다. 아이 안에서 피어오르는 다양한 욕망을 금기로 가두기보다 안전하게 표현하고 적정선을 실험하도록 기다려 주고 싶다. 함께 상의하며 과정 안에서 성찰할 수 있도록 넓은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어른이 되고 보니 어린 시절 금기되었던 많은 것들은 사실 이후의 삶에서 너무나도 필요한 부분과 맞닿아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지 배워가려면 다양한 시도와 도전, 실패의 경험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금기되기 보다 안전하게 장려되고 훈련되어야 할 것들이다. 오히려 부모인 우리가 진짜 금기해야 할 것들은 ‘네가 틀렸어’라는 생각, ‘너는 그래서 안되는 거야’라는 판단, ‘아이에게 좋은 것은 내가 안다’는 자만이 아닐까.
* 매달 13일, 23일 ‘마음 가드닝’
글쓴이 - 이설아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를 썼고 얼마 전 <모두의 입양>을 출간했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입양가족의 성장과 치유를 돕는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대표로 있으며, 가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손에 잡히는 디자인으로 만드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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