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었나, 아직 벚꽃도 다 피지 않았던 어느 봄날 출판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회사 걸려오는 건 대부분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었기 때문에 입사한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았던 내가 전화를 받을 일은 없었다. 사람이 없어 받게 된다고 해도 다른 직원에게 넘기거나 메모를 해두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날 걸려온 전화는 나를 찾았다. 정확히는 신입 편집자 허태준이 아니라,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의 저자 허태준을 찾았다. 북토크 섭외를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김해에서 책방을 한다 자신을 소개하고 8월의 일정을 물었다. 8월이요? 5개월 전의 일정을 미리 짜두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기에 순순히 휴대전화에 일정을 기록했다. '8월 17일 김해 생의한가운데'. 책방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구라도 생의 한가운데 있으니까. 지난 시간이 얼마나 있든, 얼마만큼의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되었든, 지금 이 순간이 우리 생의 중심일 테니까.
그때는 시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정말 여름이 오기는 하는건지, 지금이 지나가기는 하는 건지, 무엇하나 손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긴 겨울을 지난 뒤라 곁을 스치는 모든 온기가 어색했다. 뻣뻣하게 굳은 몸은 주변의 작은 변화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돌이켜보면 나는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중심은 현재가 아니라, 책을 쓰던 과거의 시간으로, 또는 그보다 더 뒤에 머물러 있었다. 그곳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온 탓이기도 했다. 붙잡을 것 없는 순간들이 그로인해 들썩였고, 기울어진 시소를 탄 것처럼 자주 미끄러졌다.
하지만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은 다시금 자신의 중심을 현재로 옮겨 놓았다.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하기 위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고, 호의로 가득한 반가운 제안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정신이 없었다. 두 번의 북토크에 초대받고, 나를 찾는 전화가 몇 번 더 회사로 걸려오고, 책임편집을 맡은 책 두 권이 세상이 나왔다. 모두 하나의 계절을 지나며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래서일까, 8월 17일은 예상과 달리 여름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에서는 자주 소나기가 내렸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거대한 구름이 산등선 너머로 천천히 움직였다. 부풀어오른 윤곽이 여름의 잔해 같았다. 저 구름이 모두 사라지면 가을이 오는걸까. 그리움의 거리만큼 하늘이 높아지는 걸까. 비가 오고, 저녁 공기가 차가워질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17일에도 오전부터 비가 쏟아졌다. 경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창가로 부딪치는 빗방울의 무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연은 오후 2시부터였지만, 여유롭게 도착해 동네를 둘러보고 싶었다. 책방 위치를 확인하고 근처 카페에 들어가 강연 내용을 다시금 정리했다. 글을 쓰듯이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고르고 싶었다.
점심을 먹을까 싶었지만 시간이 애매해서 카페에서 더 시간을 보내다 곧장 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교회를 연상케하는 책방 건물은 멀리서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조심스레 문을 여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계셔 놀랐다. 다정한 목소리로 누군가 자신이 3월에 연락을 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분은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을까. 여름이 채 오기도 전이었던 3월에, 왜 나를 이곳에 초대할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내 강연이랄 건 별게 없었다. 30분 정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할 뿐이었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현장실습생이나 산업기능요원, 청년 노동자의 삶을 풀어내고 재조명한다는 사회적인 이유와 필요가 아니라, 책을 써야만 했던 아주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유를 말했다. 전혀 거창하지 않은 그 이유는, 그게 내가 지나온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이 너무 외롭고, 공허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쓴다고 그 시절의 무언가가 회복되는 건 아니었다. 지나간 시간의 중심이 다시 되돌아오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난 시절을 외면하거나 쉽게 비웃어 넘겼다. 돌아보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후회는 소중한 시간을 좀 먹을 뿐이었다. 혼란스러운 감정 같은 건 다 털어버리고 현재에 집중하는 게 누구에게나 이로웠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러지 않았을까. 글쓰기는 후회와, 미련과, 대체 뭐가 어떻게 달랐던 걸까.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를 쓰는 내내 나는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긍정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문제들이 있었고, 놓치지 말아야 했던 사회적 맥락이 있었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는, 나의 욕심은, 조금 다른 형태로 변해 세상에 나왔다. 그제서야 알게 됐다. 나는 과거의 자신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같은 시절을 살아가는 누군가는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두 가지가 결코 다르지 않다고.
교훈이나 확신을 주는 말들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강연 시간을 채웠다. 아니, 사실은 언제나 그렇듯 함께해준 이들의 이야기가 그 시간을 채웠다. 1시간 반 가량 정말 많은 질문과 사연을 주고 받았다. 한 권의 책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가득한 이야기. 나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강연을 마치고 책방에서 추천해주는 책을 사려는데, 청년 할인이 있다며 15,000원에서 20%를 깎아주셨다. 주변 분들에게 기부금을 받아 할인을 해주고 있다고, 책방에 손해는 없다는 말에 웃었다. 스무살 무렵에,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를 쓰기 전에, 미술관이나 전시장에서 대학생 할인을 받으려면 학생증을 보여달라는 직원에게 그냥 계산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딱 그 20%만큼 다정해졌다.
어느새 맑게 갠 하늘을 보며 모든 일에 조심스러운 스스로를 돌아봤다. 여전히 나는 말 한마디, 다짐 하나가 조심스럽다. 아주 작은 충격에도 유리 조각처럼 쉽게 깨질 것만 같다. 그런 위험한 물건을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은 잘못된 게 아닐까. 매번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으로 남들 앞에서 섰다.
하지만 가끔 생각한다. 적어도, 불안한 만큼 투명했으면 좋겠다고. 어떠한 거짓도 없이, 늦여름 햇살 같은 온기가 서로를 반사하며 무수히 많은 색으로 반짝이면 좋겠다고. 그 빛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물론이고, 더 먼 곳에 있는 과거와, 다가오지 않은 미래까지 더 다정하고 따뜻하게 감싸 안을 것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낸, 생애 한가운데로 들이치는 밝고 투명한 용기가, 우리를 살아가게 할 것이다. 분명 서로를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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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는 글쓰기' 글쓴이 - 허태준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경험을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라는 책으로 담았습니다. 지금은 부산의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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