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친구가 죽었대요_마음가드닝_이설아

2022.06.23 | 조회 645 | 0 |

세상의 모든 문화

총 15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엄마, 친구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래요

가족이 모여 앉은 토요일 저녁, 문자를 확인한 둘째가 말했다. 교통사고와 응급실이라는 단어에 모두가 철렁해서 어떻게 사고가 난 것인지, 어떤 친구인지 물으니, 지금 막 소식을 전해 들어 사고 경위는 잘 모르겠다고, 친구의 친구라 한두 번 만난 사이라고 말했다. 친구 부모 마음이 지금 얼마나 지옥일까 싶어 별일 없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태어 잠시 기도를 했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각자 방으로 들어 간지 얼마나 지났을까, 둘째가 가만히 거실로 나와 소파에 푹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걱정된 마음에 아이 곁에 앉는데 둘째가 말했다.

엄마, 친구가 죽었대요

둘째는 멍한 눈으로 조용히 쓰러져 있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아 큰 숨을 몇 번 내쉬었다. 너무 슬프고 당황스러운 상황이라 나도 뭐라 아이를 위로해야 할지 잠시 멍했다. 친구 부모님 걱정이 앞서면서도 갑작스러운 소식을 접한 둘째의 마음도 얼마나 충격일까 싶어 아이 곁에 가만히 앉아 있어 주었다. 둘째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해도 한두 번 만난 적이 있는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열다섯 인생 최초로 경험한 죽음의  첫 얼굴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모든 빛이 사라진 것 같은 아이의 얼굴을 보는데 이번 일이 감수성이 예민한 둘째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남길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다음날 아침 둘째의 방문을 열어보니 이미 깨어있는 아이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아이의 방 한쪽 켠에 자신의 라이프 박스(Life Box : 입양과 관련된 기록, 물품, 사진 등 아이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들을 담아 둔 생애 상자)가 놓여있고 주변이 그 안에서 꺼낸 여러 사진과 물품으로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보니, 밤새 상자 에서 여러 가지를 꺼내 보았나 보다. 입양아동(입양인)들은 애완동물의 죽음이나 가까운 이의 죽음, 부모의 이혼 혹은 먼 곳으로의 이사를 통해서도 상실이 건드려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라이프 박스를 밤새 뒤적거린 흔적을 보니 가슴이 저려왔다. 친구의 느닷없는 죽음과 이별 앞에서 아이는 자신의 생애초기에 벌어진 생부모와의 이별이 건드려진 것 같았다. 내용은 다르지만 느닷없는 이별이라는 점에서 아이 안테나는 마음 속 같은 지점에 주파수를 건넨 것 같았다.

일요일 하루 종일 아이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일어날 힘도, 일어날 이유도 못 찾은 걸까. 점심 몇 숟갈을 뜨더니 저녁도 거른 채 다시 드러누워 있다. 아이 책상과 바닥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어린 시절의 사진, 아기수첩 등을 보는데, 이별에 이토록 강력하게 반응하는 안테나를 가지고 성장할 아이를 바라보자니 커다란 송곳이 심장을 깊이 찌르는 것만 같았다.

어제 한숨도 못 잤어?” 아이 침대에 걸터앉아 부드럽게 등을 쓸어내리는데 아이가 고개를 더 깊이 파묻었다. 눈물범벅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열다섯의 마음인 거다.

엄마도 처음 친구를 떠나보낼 때 정말 힘들었어, 너무 아프더라. 네가 어떤 마음인지 조금 알거 같아이불에 얼굴을 비비며 눈물을 닦는 아이에게 마음껏 울어, 슬플 때는 우는거야라고 덧붙여 주었다. 가만히 아이 곁에서 등을 쓰다듬어 주다가 금새 울음을 그칠 것 같지 않아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실컷 울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마음껏 울어도 되는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존 제임스, 러셀 프리드만, 레슬리 랜던 매슈스가 쓴 책 <우리 아이가 슬퍼할 때>를 보면 부모가 아이의 슬픈 감정을 억압하거나 다른 감정으로 대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책을 읽으며, 다른 입양부모님들을 상담하며 많이 했던 말이지만 막상 내 아이의 슬픔 앞에서 의연하게 대처하기가 참 쉽지 않다.

아이가 경험하고 느끼는 슬픔의 크기를 함부로 축소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슬픔에 젖어있는 아이, 무거운 감정에 눌려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자니 그 손을 잡아 이끌고 어디든 데리고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기분을 좋게 바꿀만한 그 무엇이라도 당장 대령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참기로 했다. 아이가 먼저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아이는 앞으로도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며 그때마다 무너질 듯 아파할 테지만 결국 자신을 추스르는 힘도 조금씩 배우게 될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언제라도 황망한 일이지만, 인생이 건네는 여러 파도를 적절히 넘어서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아이 곁에는 가족이 있고, 가족의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편이니 말이다.

일요일 자정이 가까운 시각, 아이가 조용히 찾아왔다. 내일 이런 마음으로는 학교에 가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멍한 한숨을 쉬었다. 엄마가 어떻게 도와줄까 물었더니 바람을 쐬고 싶다며 자신을 데리고 나가 달라 했다. ‘그래 그러자, 엄마랑 드라이브 가자고 답해주곤 다 큰 아이를 토닥여 재웠다. 내일은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둘째와 드라이브를 가야겠다. 아이의 가슴에 새로운 바람이 가득 들어가도록 실컷 엑셀을 밟아야겠다. 아이도 나도 돌아올 땐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고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 매달 13, 23 마음 가드닝

글쓴이 - 이설아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를 썼고 얼마 전 <모두의 입양>을 출간했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입양가족의 성장과 치유를 돕는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대표로 있으며, 가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손에 잡히는 디자인으로 만드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1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www.guncen4u.org

유튜브 채널 <모두의 입양> www.youtube.com/channel/UCMKdmafWUyHj4WTr2W6jb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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