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

하지만 누군가를 구원할 수 없다라는 비겁한 생각

2022.09.26 | 조회 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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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점선을 따라 찢어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인간은 타인을 구원할 수 없다. 우리는 너무나 작은 존재이기 때문에, 울창한 숲이라고 믿지만 바람 한 점에도 쉽게 떨어져버리는 이파리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불가능에 가깝다. 얇디 얇은 이파리 주제에 선택을 보류하라 말 하는 그 자체가 오만이다. 개인의 고통을 다른 개인이 도대체 무슨 수로 헤아릴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내린 삶의 중단에 대한 선택을 무슨 수로 말릴 수 있단 말인가. 안타깝지만 나는 내 삶의 주인이지, 다른 이의 그것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자살을 말릴 수 없다. 

이건 나의 오랜 생각이었다. 물론 내가 이파리 따위가 아니며, 적어도 누군가를 품거나 숨겨주기에 적당한 ‘울창한 숲’ 정도는 된다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내 잘난 맛에 사는, 굉장히 거만하고 오만에 젖은 아이였다. 세상 모든 것들에 화가 났다. 열심히만 하면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슬퍼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그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주었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곤 했다. 언젠간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세상의 문제점은 나의 생각이 성장을 하든 말든,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말든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었고, 슬퍼하던 사람들은 내가 이야기를 얼마나 들어주던, 어떤 해답을 제시하던 간에 여전히 슬퍼하곤 했다. 

나는 숲이 아니라 한낱 이파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처음 마주했을 때엔 그게 못 견디게 힘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원인 모를 자유로움이 나를 찾아왔다. 예상컨대 그것은, 나는 한낱 이파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숲의 모양새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해방이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나는 너무나 작은 존재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세상과 개인의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서 왔던 해방. 그 뒤로 이 생각은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믿음이 되어버렸고, 이 사실을 깨달은 후에 마주한 세상은 참 단순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이런 나의 머릿속을 한없이 복잡하게 만들어버린 작품이 하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애니메이션 <점선을 따라 찢어라>의 주인공 제로는 딱 나처럼 생각하며 사는 인물이다. 그도 옛날에는 개인을, 그리고 세상을 자신이 구원할 수 있다 믿으며 살아갔지만 같이 놀던 친구가 “너는 한낱 이파리에 불과한데, 어떻게 세상을 구하려 해?”라 말한 순간 좌절감과 동시에 해방감을 느낀다. 그 이후 제로는 적잖이 평화로운 삶을 누리긴 했지만, 동시에 조금은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를 구원할 수 없다는 제로의 믿음은 진짜가 되어버렸다. 몇 년간 몰래 좋아했던 여자인 알리체가 자살해버린다. 제로는 그 또한 자기가 손 쓸 수 없었던 일이라 믿으며 죄책감 때문에 한없이 무거워진 마음을 마주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알리체의 친구가 제로에게 다가와, “너 왜 그때 알리체 전화를 받지 않았어? 왜 그 애가 밤새 같이 있어달라고 했는데 금방 떠나버렸어? 알리체는 너를 좋아하고 있었어.”라 말한 순간, 끝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때 내가 전화를 받았다면, 그때 내가 밤새 같이 있어주었다면, 그 애는 계속 살아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알리체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 제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알리체의 친구는 제로가 여전히 오만하다며, 한낱 이파리에 불과한 개인은 누군가를 구원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그녀가 바랐던 것은 그저 알리체가 사랑했던 제로가, 그녀가 살아있을 때만이라도 충분한 사랑을 주는 것, 단지 그거 하나뿐이었다. 

이성과 현실은 다르다, 내가 항상 마음속에 새겨두고 사는 말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진리라고 믿는 것이 있다 한들,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에도 내가 세운 원칙을 유지하기란 참 쉽지 않다. 이성을 따라야 할까? 나는 너무나 나약한 개인이기 때문에, 다른 이의 삶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이 답일까? 아니면, 소중한 사람이 삶을 놓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나를 잠식할 때, 마치 그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함에 빠진 ‘구원자’처럼 나타나 무슨 수라도 써 보아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있을 때 잘하자’라는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답일까? 

내가 이렇게 고민하는 것은, 실제로 내 주변에 내가 사랑하는 우울증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언니는 매일 자해를 한 후에, 울면서 나에게 전화를 한다. 어떤 친구는 자살시도를 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또 어떤 친구는 정신과 폐쇄병동에 한 달 동안 입원치료를 받은 적도 있고, 주변인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매일을 눈물 없이 살아내지 못하는 오빠도 하나 있다. 나는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그들을 잃고 싶지 않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더 확실한 것은, 그들이 만에 하나 삶을 놓아버렸다는 소식을 듣는 다면 나는 크나큰 죄책감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제로가 무너질때 나도 함께 무너졌다. 알리체의 친구가 ‘한낱 이파리에 불과한 개인은 누군가를 구원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말 한 순간,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비겁자’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봐야 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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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26일 -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

글쓴이 - 영원 

음악 공부를 하고있는 대학생입니다. 이유있는 예술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브런치 https://brunch.co.kr/@d8aec389643a4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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