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쓰기모임을 누군가의 심리 치유나 상담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목적은 다른 쪽으로 명료한데, 참가하는 분들이 글을 잘쓰게 만드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뿌듯함을 느낄 때는, 실제로 모임에 참여했던 분이 글을 꾸준히 잘쓰게 되고, 나아가 책까지 내면서 작가로 활동하는 걸 볼 때이다. 어떻게 보면, 모임의 목적 자체가 꽤나 실용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글쓰기 모임이 끝날 때쯤에, 많은 분들이 이 모임을 통해 전에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때론 집단 상담 현장처럼 값진 시간을 얻었다고 이야기해주곤 한다. 사실, 나는 스파르타식 모임을 만들어 채찍질하며 어떻게든 글을 잘쓰게 만들고, 약간 욕심을 낸다면, 함께 작가 동료가 되어 이 어두운 세상을 뚫고 가면 좋겠다는 것이 목적이라, 그런 이야기들에 약간 당황할 때가 있다.
어째서 나는 냉혹한 코치가 되길 바랐는데, 사람들은 이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원거리 시공간에서 치유를 얻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그 이유는 첫번째로는, 이 모임이 나 혼자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기 떄문일 것이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그런 따뜻한 시간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것이 가능한 건, 어디까지나 모임에 참여하는 대략 10명 내외의 사람들 덕분이다. 서로가 서로의 글을 진심으로 읽어주고, 그 마음을 받아주고자 하기에, 일종의 따뜻한 공기가 형성되고, 눈물처럼 마음이 잉크로 나오게 된다.
두번째로는, 아이러니하지만, 나름대로 모임의 엄격함에서 오는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임에 명료한 프로세스와 기준, 형식이 존재하지 아니하고, 그저 좋은 게 좋은 거지, 같은 식으로 따뜻함만 흘러 넘치게 되면, 나는 그곳은 '안전지대'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안전하려면 그만큼 강한 울타리가 있어야 하고, 체계가 있어야 하며, 따뜻한 공기는 그 울타리 안에서 빠져나가거나 침범당하지 않고 머물 수 있다.
내가 모임을 하면서 가장 신경쓰는 게 감정적으로 사람을 대하거나, 누군가를 편애하거나 미워하고 차별하는 일이다. 내가 살면서 가장 감정을 억누르는 시간이 바로 글쓰기 모임 시간이다. 이 시간에서만큼은, 누구도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보는 건 오직 글이고, 글 속에 담긴 것들이며, 글 너머의 사람에게 침투해 들어가지는 않으려 한다. 나의 이러한 명료한 원칙은 거의 첫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감정이 시작되는 건 오히려 모임이 끝난 이후다. 모임이 끝난 이후, 사람들과 때론 사적인 관계를 맺기도 하며, 우정의 연대를 만들거나, 동료의식을 만들어가면서 나는 비로소 관계의 영역에 마음을 연다. 사실, 누적된 모임원들이 워낙 많다 보니, 일일이 다 그런 관계를 맺을 수는 없지만, 여러모로 관계성을 다져나가는 시도도 꾸준히 해보려 하고 있다. 쉽지 않지만, 대개는 쉽지 않은 일이 가치가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돌이켜 보니 글쓰기 모임은 30대 이후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모임이기도 했고, 그를 통해 만난 사람들도 참으로 소중했던 것 같다. 삶이 결국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라면, 내가 만들어온 이 여정도 꽤나 괜찮았따는 생각이 든다. 40대가 되고, 삶의 중턱을 통과하면서 역시 관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겠지만, 내가 소중히 만들어온 이 방식을 잊지 않았으면 싶다.
*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형사사건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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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안 맹민정
정지우 작가님의 글쓰기 모임은 엄격한 안온지대 일것 같아요 어떤 시간이었을지 매우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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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잇
좋은 글은 좋은 몸과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결국 함께 가는 것 같아요! 관계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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