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가위 좀 줄래?” 라는 나의 말에 꼬마는 가위를 집어들더니 나에게 던졌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진 않았지만 그날 아이에게 누군가에게 칼이나 가위를 줄 때는 날이 있는 쪽을 잡고 상대방에게 조심스레 건네줘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아이는 이제 능숙하게 손잡이가 있는 쪽을 내게 내밀 줄 안다.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이 무례한 일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이른바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 을 하지 말자는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말로 사람에게 상처주는 일을 더이상 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때로는 이 ‘충조평판’ 금지가 너무 과잉적용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긱이 들 때도 있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 이 네 개의 단어 자체가 품고 있는 의미는 사실 크게 문제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충고와 조언을 빙자한, 함부로 평가하고 멋대로 판단하는 말을 누군가에게 던지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충조평판’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어질 때면, 나는 누군가에게 칼이나 가위를 건네주는 일을 떠올린다. 상대방의 손에 날이 닿지 않도록, 그가 손잡이를 잡고 불필요한 부분은 스스로 다듬어 낼 수 있도록 조심스레 전해주는 마음 말이다. 날이 선 말로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내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때로는 지나치게 ‘슈가 코팅’ 되어 뭉툭한 말, 와닿지 않는 그저 그런 말을 건네게 만들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잘 벼려진 칼은 잘라야 할 곳을 정확하게 가른다. 열심과 욕심, 자존심과 자만심, 상상과 망상을 구분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특히나 내 눈 앞에 닥친 일,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관찰된 ‘다른 시선’이 아닐까?
그룹명상이나 마음챙김 워크숍 등 마음을 나누는 일을 하면서 종종 고민상담소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는 동료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고, 상대방은 아무 생각없이 던졌지만 내 마음에 콕 박히는 말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마음에 안드는 나를 어쩌면 좋겠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머리와 가슴을 오가는 엉킨 실타래 같은 마음을 가지고 와 주섬주섬 플어놓는 시간으로 채워질 때가 많다.
어렵게 풀어놓은 마음을 헤집어 놓지 않으려 애쓰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자주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나요?” “그 사람이 XX씨에게만 그런 말을 하나요?” “그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등등의 질문을 던지면서 그의 앞에 거울을 가져다 놓는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처음 발견하고 어색해하던 사람들이 점차 스스로를 다듬어 가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물론, 가끔 실수를 하기도 한다. 마치 혼자 부엌가위로 앞머리를 자르는 것처럼 말이다. 답답해보인다는 느낌에 싹둑 잘라버린 앞머리가 말려 올라가는 걸 보며 후회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이제는 안다. 꼬리빗으로 정성스레 머리를 빗어준 다음, 구획을 잘 나누고, 가위 끝은 수평이 아니라 수직을 향하게 해야 한다는걸.
* 매달 17일 ‘일상의 마음챙김’ 진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뉴스와 시사 인터뷰를 맛깔나게 진행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미국 수도에 있는 한 국제기구에서 참여자들의 의미있는 경험을 비추기 위해 행사 진행을 돕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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