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나 바람맞혔어요”_Allie의 영어로 먹고사는 이야기_엘리

‘바람 맞았어’, 영어로 무엇일까요?

2023.10.12 | 조회 1.08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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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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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stood me up babe...

당신, 나 바람 맞혔어요.

앓다 일어난 엘리가 확인한 메시지 

 

미드에서나 봤던 대사를 그녀의 핸드폰에서 확인한 엘리는 뒷목을 따라 흐르는 찌릿함과 동시에 미안함, 당혹감에 휩싸였다. 11시가 넘었다. TV에서는 유쾌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LED 전등 빛에 눈이 부시기 시작한다. 이제서야 감각들이 돌아오는 듯 하다.

“아.....이를 어쩐다...…”

머리는 지끈하고 속은 금방이라도 위안의 내용물을 밀어낼 기세이다. 어제 늦은 밤에 먹은 커리를 쌈해서 먹었던 갈릭 난이 문제였던가, 커리 속의 닭고기가 문제였던가. 오전에 일어나자마자 일을 하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일어난 것이다.

오늘 저녁시간, ‘Evening’ 무렵 보자고 그와 약속을 했다.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은 정하지 않았다. 평소의 그녀라면 이러한 애매한 약속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갑작 스럽게 만나는 것이 아니라면 만날 시간과 장소를 미리 정한다. 약속 당일 장소를 위한 고민을 다시하고, 다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것이 무척이나 번거롭기 떄문이다.


stand someone up

to intentionallyfail to meet someone when you said you would, especially someone you were starting to have a romanticrelationship with:

출처 Cambridge dictionary


해석 :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 특히 이제 막 연애시작하려는 사람을 의도적으로 만나지 않는 것.


출처 iStock
출처 iStock

우선, 그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다.

“미안해요. 정말 아파서 하루 온종일 정신없이 뻗었어요. 종일 먹지도 못하고 잠만 잤어요”

사실이었다. 그리고 엘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캠브리지 사전이 정의한 “Stand up”의 행위는 아니었다고 애써 변명거리를 찾아본다.

사전에 연락을 하지 못한 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의미로서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바람 맞히다”의 의미로까지는 인정한다. 하지만 ‘intentionally’ ‘의도적으로’는 분명 아니었고, 로맨틱한 관계를 시작하는 사이도 아니었다.


“Stand up” 은 주료 연인관계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썸 단계에서의 데이트나 소개팅에서 바람 맞은 상황을 묘사할 때 쓰인다. 물론 친구나 가족 등 다른 관계의 사람들과의 상황에서도 사용되기도 한다.

"I got stood up today."
"나 오늘 바람 맞았어."

이 한 마디면 친구들을 그날 당장 불러낼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그런 정도의 단어란 말이다. 저 문장 다음에는 바람 맞힌 상대를 같이 욕하거나, 특별한 상황이 있었을 거라는 친구들의 위로가 클리셰처럼 이어진다.


오묘하고 신비롭기까지한 에메랄드 빛을 품은 파란 눈 매쉬 브라운의 매력적인 머리색을 가진 젠틀하고 지적인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싶은 마음도 있었으니 의도적인 바람맞힘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출장 차 들른 한국에서의 마지막 가을 밤을 망쳐버린건 사실이었다.

 

‘바람 맞았어’는 'Wind hit me'가 아니다

통역과 번역은 한국어 단어와 영어 단어를 사이좋게 짝 맞추는 것이 아니다. 통역의 대상이 되는 출발어를 A언어라고 하고 통역이나 번역의 타겟 언어를 B 언어라고 한다. 통역과 번역은 A언어의 화자나 독자가 듣거나 읽어서 이해하고 느끼는 개념과 감정을, B언어의 타겟 청중이나 독자가 최대한 그와 비슷하게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하는, 기어코 그렇게 만들고자 하는 표현- 이론적으로는 언어적 등가성(Equivalence) 매칭이라고 한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위해서는 이렇게 같은 상황(바람맞은)에 다르게 표현되는 어휘(stood up)를 저금 하듯 차근히 익혀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차이를 세세하게 파고 들어가다보면 언어를 넘어 일상에 있어서 직관에 대한 차이, 문화, 역사적 배경까지 그 몇 안되는 단어안에 담겨 있다.

 

‘바람 맞다’’의 유래

엘리는 만나기로한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여 헛걸음하는 상황을 우리나라에서는 왜 ‘바람 맞았다’라고 표현하는지 궁금해졌다.

 

바람맞다는 원래 ‘중풍에 걸리다’라는 의미로 사용했던 말이라고 한다. ‘맞힐 중(中), 바람 풍(風)’의 의미를 해석하면 ‘바람맞다’가 되는 것이다.  

 

“응?”  

갸우뚱 한 채 의문이 든다. ‘중풍에 걸리는 것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그녀는 관련 자료를 계속 읽어 나간다. 

 

“중풍에 걸리면 온몸이 마비되며 비참하게 되는데요, 기쁜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약속상대가 일바적으로 나오지 않을 때 느끼는 허탈감과 비참한 마음이 중품에 걸렸을 때의 심정과 연결지어 표현하면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YTN science 재미있는 낱말풀이

 

동서양 철학에서 비롯한 표현의 차이

 

‘중풍에 걸린것 같은 심정이라니’  막연하게 추측했던 단어 속의 함의를 알게 된 그녀의 사고가 지난 번 살펴보았던 동양과 서양의 사물 인식에 관한 철학을 다시 시 떠올리게한다. 

상호간의 관계와 소속감이 중요하여 동사가 발달한 한국어. 가까워지면 ‘우리’라는 단어로 관계성을 부여하는 우리에게는 누군가 기별없이 나타나지 않으면 소중한 관계의 테두리에 큰 손상이 났다는 것이고, 이는 마치 마비상태와 비슷한 정도의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혼자 덩그러니 서있어 민망한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 'stood up' 과는 비교도 안되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감정의 표현인 것이다.


출처 : Pinterest
출처 : Pinterest

"우리가 배우는 모든 언어는 새로운 세상을 여는 문이다." -스티브 카우프만

"Every language we learn is a door opening up a new world"- Steve Kaufmann


엘리는 통역과 번역을 하면서, 때로는 이렇게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단어를 탐구하며 익힐 때마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나곤 한다. 언어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뿐 아니라 세상을 향한 인식의 문을 열어 확장 시켜준다.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한 질서를 가진 언어 속에서 한 없이 작아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일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나저나 이를, 아니 그를 어쩐다......' 의도야 어찌되었건 간에 그녀가 잘못한 것은 분명하다. 이럴 땐 진심만한 무기가 없다. 덩그러니 혼자 한국에서의 마지막 금요일을 보냈을 그에게 마무리 메시지를 보낸다.

 

'다시한번 미안해요.. 기회가 되면 다음에 만나요. '

 다시는 바람 맞히지 않을께!
I won’t get you stood up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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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순수국내파 ‘통역사로 먹고살기’를 출간했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세상과 세상, 언어와 언어사이의 소통을 도우며 살아갑니다. 전세계와 소통하며 그로인해 확장된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메일 : lovelyjy0708@gmail.com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jiyoungpark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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