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식을 어느정도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밤낮을 지새운 시절이 있다. 가까운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면 인간은 자기 일처럼 슬퍼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멀리 있는 사람에게 불행이 닥칠 때엔, 슬픔이 이전보다 줄어든다. 그리고 이 슬픔은, 마음의 거리가 얼마나 멀고 가깝느냐에 따라서, 아이에 안 슬플 수도 있으며,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심리적 거리가 아무리 가깝다 한들, 내게 닥친 불행과 똑같은 아픔을 느끼진 않는다. 나는 이게 한때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나의 마음이 동하는 건 그저 가까운 사람들일 뿐이며, 이조차도 내 일에 비하면 가볍게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모두에게 본인의 인식을 부여한, 그러니까 인식을 무한히 넓힌 자를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 반대로, 인식을 무한히 좁힌 자를 우리는 개인주의자 - 혹은 이기주의자라 부른다. 인간은 신도 아니고, 홀로 살 수도 없기에, 그 중간 어딘가에서 계속해서 표류중이라고 보았다. 나는 중간에서 표류하던 자아를 멈추고, 신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정현종의 시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화자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동떨어진 공허를 ‘섬’이라 지칭하며, ‘그 섬에 가고 싶다’라 말한다. 이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인간들의 간극에 도달함으로써, 서로 이어지고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이 담겨있다. 비록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긴 하지만, 정현종 시인은 ‘섬’에 다른 어떠한 해석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서로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무의식 속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해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 이 현상을 훨씬 염세적으로 표현한 시인이 있다.
모듬회 접시 한가운데에
그 섬이
있다 난자당한 살점들이 에워싸고 있는, 그
섬에 닿고
싶다
<김언희, 그 섬에 가고 싶다>
이 시를 패러디한 김언희 작가의 시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화자는 ‘섬’이란 ‘모듬회 접시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며, ‘난자당한 살점들에 에워쌓인’ 곳이라 말한다. 김언희 작가에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허란, 서로를 오해하고, 헐뜯고, 결국 누구 하나, 어떤 진실 하나 이해받지 못한 ‘난자당한’ ‘살점’들에 에워 쌓인 곳이다. 그리고 그것을 유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작가에겐 ‘모듬회’이다. 물고기를 해체하고 토막 내어 살점 하나하나를 전시해놓은 모듬회 접시는, 우리들의 진실이 외면당하고, 오해받고, 헐뜯겨 너덜너덜해 진 채로 소통하지 못하는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김언희 작가는 이 ‘섬’에 ‘난자당한 살점들이 에워싸고 있는’ 이라는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공허는 그저 공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라는 진리로 인해 난도질당한 진심의 파편이다.
어느날, 꿈에서 나는 인식을 무한히 확장하는데에 성공했다. 모든 것을 보았으며, 모든 이의 삶에 닿을 수 있었고, 모두와 하나가 되었다. 마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조부 투바키처럼!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언어를 잃었고, 자아를 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것을 한번에 느낄 수 있고 모두가 '나'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언어와 자아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나’를 잃어야만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다니! 이보다 슬픈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꿈에서 깨어난 나는 거울을 바라본 채 엉엉 울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난자당한 살점들’을 마주한 순간이리라.
인식을 확장한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섬에 가는-닿는-것. 그 섬은 멀리서 보면 사람들 사이에 둥둥 떠다니며 표류하는 공허의 덩어리겠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리저리 난도질당하여 파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진심일 테다. 나는 이 두 시인의 ‘섬’으로의 열망에 슬픈 동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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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
글쓴이 - 영원
음악 공부를 하고있는 대학생입니다. 이유있는 예술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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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ESS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에에올인데 그 내용도 재밌으면서 공감갔고, 소개해주신 두 시 모두 울림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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