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빠랑 나 중에 누가 더 좋아?” 라는 아이의 질문에 나는 그건 비교할 수 없는 문제라고, 똑같이 좋다고 말했다. 아이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나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엄마하고 나 중에선 누가 더 좋아?”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엄마가 누굴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냐고 아이에게 되물었다.
아이는 내게 엄마는 엄마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왜냐고 묻자 엄마는 self-care를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나의 노력이 아이에게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안도감이 느껴졌다.
모두가 자존감에 대해 얘기할 때, 나는 어쩐지 슬퍼졌다. 책과 강의에 나오는 자존감 낮은 사람의 예가 나의 삶인 것만 같았고, 그 이유는 순종이 최고의 가치였던 양육방식에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부모님을 미워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부모 역시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내 마음이 바로 평온해지지는 않았다. 그럴 때면 이를 악물고 ‘복수하듯 후회로 남을 일들을 대물림하지 말자. 경험해 보지 못한 일도 할 수 있는 게 인간이다.’는 말을 되뇌었다. 아이에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게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려 노력한다.
그렇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말이 나는 아직도 어렵다. 때로는 제멋대로 살고 싶은 사람들이 이 말을 악용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기도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인데, 뭐 어쩌라고 라는 말을 무기처럼 사용하며 자신의 무례함을 타인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떠올리는 말이 있다. Self-care는 이기적이지도, 사치스럽지도 않은, 내가 가장 나은 버전의 나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는 말이다.
최근 사랑을 다룬 여러가지 책을 읽고 있다. 작가마다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서 흥미롭기도 하고,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건 대체 뭘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연애를 다룬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어떤 계기로 인해 한 사람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게 되고, 나의 특별한 마음을 상대방이 알아주길 기다리다가, 마침내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이다. 무슨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요리하는건 좋아하는지,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싶어하고, 상대와 나의 기호가 겹치는 부분에 환호한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어떻게든 채워주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모습들, 그것이 우리가 흔히 ‘사랑에 빠졌다’ 고 말하는 연인들의 모습이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본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때 진심으로 활짝 웃고, 어떤 때는 애써 웃음을 띄는 척 하는지 살펴본다.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니 의외의 '나'가 여러버전으로 발견되었다.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생각했던 찐 외향형인 나는, 팬데믹 시대를 겪으며 대외 활동을 하고 나면 내적 에너지 충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요리를 좋아하고 청소를 싫어하는 줄 알았던 나는 가끔 마음이 복잡할 때 주방기구를 하나하나 분해해 윤이 나게 닦고, 타일 사이에 낀 묵은 때를 벗겨내느라 온종일 애를 쓰고 힘이 들어 저녁은 시켜먹기도 한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스스로 고른 한 권의 책을 완독하는 경험을 되찾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생각이 너무 많아 고민이라고 했던 나에게 생각을 글로 옮겨보라고 하니, 빈 종이만 바라보고 한 줄도 못 쓰고 만 적도 많다.
인공 지능을 다룬 드라마에서 AI개발자인 주인공은 컴알못인 여자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계에게 학습을 시키는 일은 평생을 혼자 살아온 타잔이 제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겪는 시행착오와 같다고 말이다. 제인은 타잔이 돌멩이를 가져다 주니 싫어하고, 꽃을 가져다 주니 좋아한다. 타잔이 소리를 치면 싫어하고 웃어주니 좋아한다. 이렇게 반복해서 쌓이는 경험을 통해 타잔은 제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된다. 제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먼저 건네며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생각만해도 가슴뛰는 일이나, 하루종일 해도 지루하지 않은 취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정도의 지식과 기술을 자랑하는 탁월함 같은 건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조금씩 도전해 보는 것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서로를 응원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하고, 용기가 없어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고 싶어한다.
자존감이 낮고,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나의 모습은 몇 권의 책이나 강의로 한 순간에 180도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챙김에서 늘 강조하는 non-judgmental,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경험을 통해, 내가 언제 무엇을 하면 기뻐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면 멘탈 에너지가 빠져나가는지, 내 몸이 위험하다고 보내는 구조 신호는 무엇인지, 하나하나 기록하며 나만의 data set 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데이터를 보며, 몸의 에너지가 빠진 날에도 해낼 수 있는 일들을 찾고, 멘탈 에너지가 방전 된 날 급속 충전할 수 있는 비상약, 이른바 5분의 행복 레시피를 적어두고, 필요할 때면 골고루 사용한다. 나는 아직도 매일 새로운 나를 발견하며 살고 있다.
나에게 잘 맞는 옷, 내 몸에 잘 받는 음식, 내 마음이 편하게 느끼는 시간이라는 게 딱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나 스스로를 사랑에 빠진 연인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어졌다.
#나알못 이었던 내가 #나잘알 이 되는 날까지, 나는 계속해서 나를 알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더 나은 버전의 내가 되도록, 나를 응원하는 치어리더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
* 매달 17일, 27일 ‘일상의 마음챙김’
글쓴이 - 진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뉴스와 시사 인터뷰를 맛깔나게 진행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미국 수도에 있는 한 국제기구에서 참여자들의 의미있는 경험을 비추기 위해 행사 진행을 돕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
공저로 참여한 <세상의 모든 청년>이 곧 출간됩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기 위해 오늘도 읽고, 쓰는 하루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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