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홈에 돌아온 것을 후회해요?”
“어?”
그룹홈 아이들이 장난감 거짓말 탐지기에 내 손을 묶어놓고 물었다. 진실게임이라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 그 사람한테 고백은 해봤냐? 같은 질문이나 계속할 것이지. 예, 아니오 말고 다른 선택지를 떠올리기 힘든 이 물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웃자고 시작한 놀이라고는 해도 가볍게 대답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 차례가 되자마자 갑자기 웃음기를 거두고 답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는 당황스러웠다.
“너무 시시한 질문 아니야?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이런 질문 뭐야?”
괜히 시간을 끌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모, 빨리 대답이나 해요. 그룹홈에 돌아온 것을 후회해요?”
“아니!”
그래도 놀이인데 재치 있는 답변을 하지 못한 이 상황에 자존심이 상했다. 거짓말 탐지기가 내 손의 전류량을 측정해서 진실을 판정하는 동안 아이들은 기계에 묶어놓은 내 손과 얼굴을 번갈아보면서 숨을 죽였다.
“띠랍~ 띠랍~ 띠랍~ 띠랍~”
기계는 거짓말을 탐지하면 손끝에 전기충격을 준다고 했다.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무사할 거라고 했다.
“으악!”
손가락 끝으로 전류가 타고 들어왔다. 내가 몸서리치며 기계를 내동댕이쳤다. 저릿하다 못해 아팠다.
“이모 거짓말쟁이네.”
“우와. 이모 실망!”
“했네. 했어. 완전 후회했네.”
숨겨진 정체를 밝혀내기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해진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부렸다. 그런데 웃음 끝의 눈빛이 조금 어색했다. 표정관리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반달 모양을 한 눈들이 나를 어지럽게 살피고 있었다.
기계 판정에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표정도 그렇게 자연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짓말 탐지기가 정말로 속마음을 짚어낸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감추려고 신소리를 늘어놓았다. 장난감이라 역시 아무렇게나 작동을 한다고. “에이~” 하면서 아이들이 더 크게 웃었다.
재작년 1월부터 그룹홈에서 일을 했다. 15개월만 일할 수 없겠느냐는 제안이 시작이었다. 시간강사 수입이 아무리 불안정해도 그 제안만큼은 거절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룹홈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계약직이라니.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거절을 한다는 것이 되레 설득을 당해서 나는 그룹홈에 아주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그룹홈에 살고 있는 다섯 명의 여자아이들 때문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 아이들이 내 마음 속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룹홈에 돌아온 것을 후회해요?”
아이들이 던진 질문은 계약기간이 끝나고 3개월간 실직 상태로 지내던 시간으로 나를 되돌려놓았다. 두고 온 아이들이 생각날 때마다 그룹홈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놓고 청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바다에 놀러가서 함께 파도를 감상하던 순간이며, 손을 잡고 길을 걷다가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던 순간이며, 직접 쓴 손편지를 주고받던 순간이며……. 내가 원해서 떠난 자리가 아니었는데도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아이를 두고 나온 엄마가 되기나 한 것처럼 마음이 쓰렸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보고 싶어서 대책 없이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동료 한 명이 그룹홈보다 일하는 시간이 짧고 급여도 더 많은 곳으로 떠난다고 했다. 여러 날을 고민하다가 이력서를 정리해서 동료가 일하던 보육사 자리에서 일을 하겠다고 그룹홈을 다시 찾았다. 공고가 나고도 한 달간 나 말고는 누구도 이력서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룹홈에 돌아온 것을 후회해요?”
아이들이 던진 질문은 또 한편,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생각의 파편들을 다시 헤집었다. 출근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니까 좋다고.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고 글을 마음껏 쓸 수도 있고, 더군다나 두 딸내미와 남편을 실컷 볼 수 있으니 참 좋다고. 수입이 없는 상태가 불안하기는 하지만 한번쯤은 이래보고 싶었다고. 이것은 내가 몇몇 가까운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한 말인 동시에 그룹홈에서 함께 살던 아이들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하던 생각들이기도 했다. 십 분씩 지각을 했던 어떤 날도 기억이 났다. 출근하기가 싫다고 늦장을 부린 날이었다. 몸이 좋지 않다고 늦게 일어났던가? 커피를 마신다고 여유를 부렸던가? 아이들을 다시 만나서 반가운 건 잠깐이었다. 그룹홈 일은 여전히 힘들었고 여전히 태가 나지 않았다.
“아니!”
아이들 앞에서는 그룹홈에 돌아온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나를 배반하는 감정들을 없는 것처럼 잘 숨기고 나면 모든 상황이 정돈되어 보이고 좋았다. 한 번씩 거짓말 탐지기 같은 것들이 모순된 내 마음을 들춰낼 때면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꼈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렸던 내 모습 바로 옆에, 출근하기 싫다고 늦장을 부리던 내 모습을 나란히 놓고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글로 옮겨 쓰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생각해 보면, 남편과 결혼식을 올릴 때에도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에도 그룹홈에서 아이들과 생활을 할 때에도 마냥 행복하고 좋기만 한 적은 없었다. 나는 늘 설레었고 두려웠고 화가 났고 그리고 행복했고 또 어느 순간에선 후회를 했다. 삶은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 역시나 혼란스럽고 복잡한 마음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이모가 돌아온 것이 반가우면서도, 혹시나 그룹홈에 돌아온 것을 후회하지나 않을까, 하고 속내를 떠보던 그날을 떠올려보아도 말이다. 이제는 반 년도 더 지난 일이 되었지만, 이모를 사랑하는 동시에 이모에게 실망을 하는 그 아이들을 그저 말없이 꼭 껴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아니라고 해명하거나 변명하거나 걱정을 하는 대신.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렸다가 출근은 정말 싫다고 늦장을 부리던 나를 끌어안았던 것처럼.
*매달 1일 ‘그룹홈 보육사 일기’
글쓴이 – 수영
아동그룹홈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입니다. 내 시간의 45%는 세 아이들과 함께 그룹홈에서 보내고, 나머지 55%는 내가 낳은 두 아이와 남편이 있는 집에서 보냅니다. 집과 일터, 경계가 모호한 두 곳을 오가며 겪는 분열을 글쓰기로 짚어보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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