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란 무엇일까?_케이트의 영화 이야기_카페의 케이트

이십 년 전에 나왔지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머금은 영화 <어바웃 어 보이>

2022.05.25 | 조회 1.26K |
0
|

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어바웃 어 보이>를 보고 울었다. 울면서 머릿속으로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편안하게 흘러가지만 치밀하게 잘 짜여진 영화였다.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건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했다.

"No man is an island.(어느 누구도 섬이 아니다)"라는 말에 모든 사람은 섬이라고 읊조리는 윌(휴 그랜트). 나는 윌과 같은 캐릭터에 관심이 있다. 그는 아버지가 1958년에 작곡해서 히트친 캐롤송의 저작권료를 받으며, 아무 일하지 않고도 풍족한 생활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그는 '섬'이었고 다른 누군가와 깊게 관계 맺는 일을 꺼렸다. 단지 파티나 모임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은 곤혹스러워했다. 아무 일도 안 하기 때문이었다. 아무 일도 안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냐는 질문이 후속으로 들어오면 그전에도 아무 것도 안했다고 대답해야 했다. 영화 속에서 그의 인생에 대한 모든 정보가 다 나오진 않는다. 휴그랜트가 연기하지 않았으면 백수 캐릭터가 설득력을 얻기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초반부에 윌은 갓난 아기가 태어난 친구 부부네를 방문한다. 친구는 아기의 대부가 되어달라고 윌에게 부탁하지만 윌은 거절한다. 다른 존재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한 부담스러움과 귀찮음, 섬으로 계속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나중에 그 친구는 한번 더 나오는데 레스토랑에서 윌과 식사하면서 윌에게 묻는다. 네 인생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고. (이것은 훗날 윌의 여자친구가 되는 레이첼이 윌에게 "당신을 처음 본 순간 공허하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아이들 물건으로 아수라장이 된 집, 전혀 '쿨'해 보이지 않는 친구 부부, 귀찮은 아이들, 더 나아가 언제까지 그렇게 살거냐는 친구의 대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친구 부부에게 더 반발하여 윌의 편에 서게 만든다. 그들이 하는 말은 귀담아들을 가치가 없어 보였다. 그들은 설득력이 없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결국 그들이 맞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 머릿속에서 계속 저울질하게 된다. 꼭 결혼해서 아이 둘 낳고 따듯한 집에서 알콩달콩, 이것이 정답은 아니다.

윌은 내 모습과 너무 닮아있었다. 관계를 맺지 않고 적당히 내가 원하는 것만 취하면서 뒤로 빠지는, 거리두기와 책임지지 않기.

하지만 마커스라는 아이로 인해 그는 변한다. 마커스가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그의 처지와 성격 때문이다. 우울증에 자살시도를 하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학교에서는 괴롭힘을 당하지만,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는 그 아이 때문에, 그리고 그 아이와 동일시되는 윌 때문에 나는 울었다. 윌이 마커스를 이해하는 이유는 그가 마커스가 겪는 상황이나 감정들을 겪어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어린 시절의 자기자신을 보호하려는 듯 마커스를 지키려고 한다.

물론, 학교 축제라든지 우연히 만난 미모의 싱글맘인 레이첼의 아들이 마커스와 같은 학교에 다닌다든지 하는 설정은 작위적인 티가 조금 나긴 했다.

이 영화가 노선을 잘 취한 점은, 사회가 정한 수순을 밟지 않은 어른아이에게, 직업 내세우고 남들한테 인정받고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관계를 맺고 스스로 그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어른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속 나는 섬이라고 주장하는 윌에게 마커스의 엄마는 말했다. 이제 당신은 더이상 이 애와 무관하지 않아요! 이렇게 주장하는 인물이 반갑다. 나 자신이 윌이면서 이런 인물을 반가워하는 이유는 뭘까? 워킹타이틀의 마법은 나에게 언제나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꼭 진짜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이 아니라도 타인과 관계 맺고 그 관계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이 세상이 더 따듯해질 거라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워킹타이틀의 주술 같은 것.

 

*워킹타이틀: 1983년에 설립된 영국의 영화 제작사.

내가 사랑하는 워킹 타이틀의 또 다른 작품으로 <빌리 엘리어트>,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타임> 등이 있다.

 

<어바웃 어 보이>의 마커스
<어바웃 어 보이>의 마커스

 

 

*매달 25일 '케이트의 영화 이야기'

*글쓴이 - 카페의 케이트

책을 읽고 영화를 봅니다. 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독서교실을 운영하며 도서관, 복지관 등에서 초등논술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kateinthecafe

 

*

'세상의 모든 문화'는 별도의 정해진 구독료 없이 자율 구독료로 운영됩니다. 혹시 오늘 받은 뉴스레터가 유익했다면, 아래 '댓글 보러가기'를 통해 본문 링크에 접속하여 '커피 보내기' 기능으로 구독료를 지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내주신 구독료는 뉴스레터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고 운영하는 데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 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세상의 모든 문화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서비스 소개서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