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던 화상회의에서 지도교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들을 엄마의 눈으로 보고있어. 예전에는 너희들이 잘되었으면, 하고 바랐다면, 점점 바라는 것이 달라져. 난 너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이와 함께 놀러간 서울의 한 고궁에서 낯익은 노래 가사를 발견했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ABC 뉴스 앵커였던 Dan Harris가 쓴 책 제목이자 마음챙김 앱의 이름은 <10% Happier>이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을 찾으려 애쓰고, 그 비결을 서로 나누기도 한다. 요원해보이는 행복을 향한 여정을 눈 앞에 가져오기 위한 노력을 우리는 “소확행(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국어사전의 뜻 풀이는 다음과 같다.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아마도 니체는 이러한 상태는 나태하고 병든 현대인들이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정의가 옳은지를 따져보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을 어떻게 깨닫게 되는지에 대해 주목하고 싶다.
마음챙김 워크숍을 찾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마음챙김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물어보면 마음속에 가득한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싶어서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을 들여다보니 너무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해서 들여다보기가 꺼려진다는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도 자주 만나게 된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야겠다고, 그래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말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감사할 거리를 찾고, 행복한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행복한 로봇’으로 살겠다는 거냐며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오히려 힘을 얻기도 한다. 행복같은건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고,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마음에 더 와닿았다. 그래서 누가 행복을 빌어줄 때도, 행복하자고 말할 때도,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굳이 행복을 찾는 수고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긍정적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우리의 마음속에는 왜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한걸까?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마음에 떠오르는데서 그치지 않고 스트레스가 되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일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뇌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우리의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한 것은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 중 하나이다. 집과 마을을 이루어 살기 전 자연에서 살던 원시인들은 밤이 되면 야생동물에게 습격을 당하기 일쑤였고, 나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어둠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을 때 몸을 숨기거나 맞서 싸워야 했다.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파악하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던 인류는 살아남지 못했기에 우리의 유전자에는 부정적인 신호를 감지하는 성능 좋은 레이더가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해서 괴롭다는 사람들에게 나는 심리학자 켈리 맥고니걸(Kelly McGonigal) 교수의 “스트레스를 친구로 만드는 법”이라는 TED 강의를 권한다.
<스트레스의 힘>의 저자, 켈리 맥고니걸 교수에 따르면 부정적인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에 비해 1) 쉽게 알아차릴 수 있고, 2) 오래 지속되며, 3) 별다른 노력없이도 전염된다. 화가 나거나, 슬플 때 우리의 몸은 조금 더 뚜렷한 신체 반응을 보인다. 화가 날 때 목소리가 커진다거나, 두려울 때 가슴이 조여온다거나, 슬플 때 눈물이 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부정적 감정과 결합된 신체 반응은 노력없이 찾아오고, 멈추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반대로 긍정적인 감정은 1) 알아차리기가 어려우며, 2) 지속되는 시간이 짧으며, 3) 전염된다기보다는 의지에 의해 전달되는 성향을 보인다.
긍정적인 감정을 나타대는 단어들은 가리키는 대상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기도 하다. ‘행복’의 정의에서 사용된 세 개의 단어 ‘만족’, ‘기쁨’, ‘흐뭇함’을 듣고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어딘가 모르게 겹쳐있는 반면, ‘짜증’, ‘분노’, ‘슬픔’ 등 부정적인 감정을 이르는 단어들 사이에는 경계선이 조금은 선명하게 느껴진다. 맥고니걸 교수는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의 이러한 차이점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한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뇌는 생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신호를 감지하고,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라고 몸과 마음으로 반응하는 ‘스트레스’로 가득한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나만의 ‘소확행’ 리스트 작성, 5분의 행복을 위한 '행복처방전' 혹은 마음의 구급상자, 감사일기 작성 등 행복을 찾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에 대해, ‘저렇게까지 해서 굳이 행복해져야 하나?’ 하는 삐딱한 시선을 가졌던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10%씩 행복해진다는 말을 듣고 행복이란 감정은 산술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아직 행복이 무엇인지, 언제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행복한 감정이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고 내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려 한다. 행복해보이는 누군가를 보며 떠오르는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는 나를 발견했을 때, 너는 왜 이렇게 꼬인 인간이냐고 비난하려 하지 않는다. 행복이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로 잠시 느낄 수 있는, 모호한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수고로운 과정을 통해 행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매달 17일, 27일 ‘일상의 마음챙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뉴스와 시사 인터뷰를 맛깔나게 진행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미국 수도에 있는 한 국제기구에서 참여자들의 의미있는 경험을 비추기 위해 행사 진행을 돕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
공저로 참여한 <세상의 모든 청년>이 얼마 전 출간되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기 위해 오늘도 읽고, 쓰는 하루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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