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디테일을 추가하기_사랑의 인문학_정지우
"정원 일이 지루하거든 일정표에 절대로 '오후 3시~6시 정원 일'이라고 메모하지 말자.그 대신 '오후 3시~4시 장미 가지치기', '오후 4시~4시30분 잔디 깎기.', '오후4시 30분~6시 화원에서 봄꽃 화분 고르기'라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라. 이렇게만 해도 당신 인생은 훨씬 더 신선해진다. 이런 효과는 실험을 통해 여러 차례 입증되었다!" (폴커 키츠 등, <마음의 법칙> 중)
인간의 놀라운 능력이자 저주가 하나 있다면 '습관화'일 것이다. 인간은 무엇에든 익숙해지기 때문에 그 일에 능숙해지거나 편안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금방 지루해지거나 권태에 빠지기도 한다. 폴커 키츠와 마누엘 투쉬가 쓴 심릭학 책 <마음의 법칙>에는 그런 습관화와 싸우는 매력적인 방법이 제시된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지루해서 게을러진다면, 그 일을 하나의 '지루한 무언가'로 매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집안일'을 하기 싫어서 누워 있다고 하면, 그 일은 '집안일'이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무언가이기 때문에 하기 싫은 것이다. 반면, 그 일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상상해보고 순서를 정해보면, 그 일이 그렇게 싫은 일만은 아닐 수 있다. '일요일 집안일 하기'는 실현하기 매우 어렵지만, '일요일 오전 10시에는 빨래하고, 11시에는 설거지 하고, 12시에는 요리하기'라고 해보자. 그러면 그 디테일함이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반대로, 우리가 무언가를 안 하고 싶은데 자꾸 하게 된다면, 그 일을 하나의 '지루한 무언가'로 매도하면 된다.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데 자꾸 먹게 된다면, 오늘 저녁 치맥해야지, 같은 생각이 아니라, 오늘 저녁 또 먹어야 한다니, 라고 생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먹는 일'이라는 이 추상적인 행위의 반복이 그 자체로 지루해져서 실제로 덜 먹게 된다고 한다. 먹을 때마다 '또 먹다니, 매일 먹어야 한다니, 하루 세끼나 먹어야 한다니'하고 내 행위를 '매도'해보자.
사랑도 비슷할 것이다. 사랑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흔히 '권태'라고 한다. 처음 사랑에 빠진 무렵, 콩깍지가 씌워진 상태에서는 둘 사이에 크게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대체로 서로가 점점 지루해지면서 생겨난다. 함께 있어도 예전만큼 즐겁지 않고, 사소한 것들로 다투기 시작하면서, 사랑이 끝났나 보다, 하고 믿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것에 결국 익숙해지고, 모든 건 습관이 된다. 사랑이나 서로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익숙함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로 인한 권태감을 참을 수 없다면, 서로를 위한 '디테일한 변주들'을 찾는 게 도움이 될 법하다. 이번 주말 또 '데이트 하자'라기 보다는, 지난 주말에는 '서촌에 가서 전시회 구경을 했으니, 이번 주말에는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보자'라고 하는 것이 훨씬 지루함을 막아준다. 일년 내내 '데이트를 반복해서 했다'라는 관념은 인간을 더 권태롭게 만든다. 반면, 일년 동안 전시회 관람, 축제 방문, 인근 도시 여행, 함께 도자기 만들기 같은 것들을 했다고 믿으면 좀처럼 권태로워지지 않는다.
그러니 습관화에 저항하며 사랑을 좀 더 생기있는 것으로 지키고 싶다면, 사랑에 디테일을 추가하자. 매일 하는 사랑, 매일 하는 데이트, 매일 하는 식사 말고 다른 언어로 오늘과 내일을 새로이 표현하자. 우리는 또 커피 마시러 가는 게 아니라, 다른 풍경을 보러 다른 경험을 하러 함께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또 영화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정서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다른 경험을 하러 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을 함께하며 늘 새로운 시간과 경험을 만나는 것이다.
* 매달 1일 '사랑의 인문학'
글쓴이 - 정지우
'청춘인문학',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너는 나의 시절이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썼습니다. 뉴스레터, 글쓰기 프로젝트, 각종 토크, 모임 등을 만들면서 계속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며 사는 삶을 살아가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현재는 변호사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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