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 세수를 하기 위해 거울 앞에 서니 역시나 부어있다. 천진하게 부어오른 눈 두덩이와 볼때기를 보며 어제저녁에 먹은 짜파게티를 떠올렸다. 아차차.. 파김치도 곁들였지. 이런 걸 자업자득이라고 하는 건가.
어려서부터 나는 얼굴이 잘 부었다. 저녁을 먹고 잔 다음날 아침엔 거의 부었고, 저녁을 안 먹고 잔 날도 가끔 부어 억울했다. 더운 공간에 오래 있으면 얼굴부터 열을 받아 부어올랐고, 열정을 불사른 교육이나 강의를 끝내고 나면 볼이 먼저 신나서 발그레하게 빵빵해져 있었다. 오랜 앉아 있거나 수면이 부족한 날도 여지없이 부었는데 붓기를 빼려면 늘 여러 노력이 필요했다.
내 몸은 왜 이렇게 많은 것에 영향을 받는 걸까. 내 친구는 저녁을 아무리 잘 챙겨 먹어도 다음날 아침 아무 변화 없던데. 내 동생은 이틀 밤을 새워도 멀쩡하던데. 신은 왜 내게 이토록 변화무쌍한 몸을 주셨을까. 20대 때에는 이런 내 몸이 신기해 한 달을 주기로 몸의 변화를 체크하며 기록해 보기도 했다. 온도, 습도, 염분, 수분, 기분, 수면, 호르몬 등 내게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변수를 모조리 찾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확보한 모든 변수를 통제하며 중요한 약속이 있거나 데이트가 있는 날은 실패하지 않는 컨디션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했다.
여러 변수를 예상하고 통제한 노력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내가 잘 보이고 싶은 대상을 만날 때나 중요한 자리에 갈 때면 90% 정도는 마음에 든 모습으로 집을 나설 수 있었다.(10%는 이 생에서는 절대 바꿀 수 없는 영역이므로 고이 남겨둔다). 남들처럼 ‘한결같은 몸’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변수 많은 몸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데 열심을 냈던 시절이었다. 나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는 아마 그 시절 이설아가 남아있을 것이다.
관리해오던 생활 리듬에 균열이 생긴 건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다. 예기치 못한 큰 함정 둘을 만났는데 첫 번째가 ‘코로나’였다. 2년이 넘는 팬데믹 시기는 실물 관리에서 일명 화면빨의 관리로 대전환을 가져왔다. 실물에 비하면 적어도 두 겹의 커튼을 친 것처럼 마음의 안정감을 주는 줌 화면의 마법이라니. 마스크는 또 어떤가. 내 볼을 편안히 감싸주는 뽀족한 새 부리형 마스크 덕에 나는 어떤 사진에서도 (나름) 갸름한 얼굴이 되었기에 다른 변수는 이제 통제할 필요가 없었다. 내게 중요한 변수는 오로지 화면 각도와 마스크 유무만 남게 되었다.
관리하는 생활에 균열을 가져온 두 번째 함정은 ‘남편’이었다. 20,30대에 온갖 변수를 관리하며 만났던 남자친구는 어느새 서로의 눈곱을 뗴어 주며 일어나는 남편이 되었고 나의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20년 전 세련되고 늘씬한 애인을 추앙하던 남자는 어느새 저녁상 푸짐하게 차려 같이 먹으면서 하루의 노고를 풀어주는 아내를 전적으로 믿는 중년 아저씨가 되었다. 늘씬한 거 필요 없고, 돈 잘 벌어오면서도 엄마처럼 포근하게 받아주는 편안한 아내를 이상형으로 꼽으니 내가 어디에 더 시간과 정성을 쏟았겠나. 함께 먹고, 이야기 들어주며, 내 일에 열정을 갖고 전문성을 쌓아갔다. 작은 성취를 이룰 때마다 남편과 함께 맥주와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두 함정과 함께 관리 체계가 무너진 나의 몸은 그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엔데믹이 다가오면서 이제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 하고, 오프라인 자리에 실물로 등장해 주십사 하는 요청도 늘어가자 조금씩 거울을 보며 불안해지는 나. 코로나 시기 동안 ‘마기꾼’(마스크+사기꾼의 준말: 마스크 쓴 모습이 맨얼굴보다 나은 사람)’ 과 ‘마해자’(마스크+피해자의 준말: 마스크에 미모가 가려져 피해 보는 사람) 라는 단어가 유행이었다. 우리 딸은 자신이 절대 ‘마해자’라고 우기지만, 나는 이쯤에서 겸손히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온라인 친구들이여 나는 ‘마기꾼’입니다. 그동안 여러분을 화면과 마스크로 속였습니다.
이제 다시 현실에서 실물로 존재해야 할 시간이다. 젊은 시절처럼 모든 변수를 통제하며 최상의 컨디션을 찾아 나설 생각은 없지만 남편과 저녁을 함께 먹고, 맥주로 하이파이브 하는 시간은 조금씩 줄여보려 한다. 뛰겠다는 결심은 아직 못했지만 부지런히 걷고는 있으니 조금씩 가벼워지지 않을까. 지난 몇 년간 흐물어졌던 마음을 제자리로 옮겨놓고 모두가 고대하던 엔데믹을 맞이하련다. 팽팽한 볼 덕분에 주름 하나 없는 중년의 나를 귀엽다 안아주며 매일 조금씩 설며들어가보겠다.
*설며들다 : 설아에게 스며들다.
* 매달 13일, 23일 ‘마음 가드닝’
글쓴이 - 이설아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를 썼고 얼마 전 <모두의 입양>을 출간했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입양가족의 성장과 치유를 돕는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대표로 있으며, 가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손에 잡히는 디자인으로 만드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1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www.guncen4u.org
*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