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MBTI검사를 했던 2003년 이후 나는 스스로를 외향형 인간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은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편이고, 말을 먼저 건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으며,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대화 속에서 에너지를 얻어가는 타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국제기구가 내 일터가 되었다는 것도, 세계 여러 기관에서 사람들을 초대하고, 행사를 진행하는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행운이라 느끼고 있다.
이에 반해 남편은 누군가와 만날 기회를 될 수 있으면 피하려 하는 극I, 내향형인간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는 일단 마다하고 본다. 커플 데이트나 부부동반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찐우정을 쌓고 있다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며 부러웠다. 넌지시 얘기를 꺼내니 남편은 "그게 왜 필요한데?"라 되물었다. 생각해보니 그는 집중해야 할 프로젝트가 있으면 집에서도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의 주의를 환기시키려면 마땅한 ‘용건’ 혹은 '안건'을 제시해야 했다. 연애할 때도 물음표가 없는 문자에는 굳이 답을 하지 않는 그에게 나는 늘 서운하다고 말하곤 했다.
미국에 온 뒤 나는 남편, 아이, 그리고 나, 이렇게 셋만 덩그러니 남은듯한 느낌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ESL수업을 듣는 친구들을 따로 모아 복습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한국 음식을 만드는 쿠킹 클래스를 진행하고, 김치를 만들어 보고싶다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김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함께 있음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마법같은 시간이라 생각했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학교도, 직장도, 모두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폐쇄’ 를 뜻하는 Shutdown이라는 말을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다는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서로에게 위협을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솟아났다. 집이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위해 돌아오는 반가운 공간이 아니라 업무를 지속해 내야 하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다들 그랬듯 우리 셋도 24시간 함께 있는 경험이 처음이라 한동안은 서로를 버거워했다. 생활 리듬을 맞춰가는 것도,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맺고 있던 관계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 해, 두 해가 지나면서 직장도, 학교도, 사회도 상황에 맞는 각각의 방법을 찾아냈다. 회의는 물론이고 면접, 회식까지 화상 회의 툴을 이용하기도 하고, 엄마 아빠가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이들을 모아 교실에서처럼 학습 진도를 체크하고, 야외 활동을 위주로 하는 서비스가 생기기도 했다. 강연이나 취미활동도 상당부분 온라인 모임으로 전환되었다.
작년 봄, 코로나 판데믹 이후 2년간 중지되었던 대면행사가 재개되었다. 첫 행사는 포럼 참여자들을 위한 리셉션 자리였다. 사무실 건물이 폐쇄되었던 시기에 입사했던 터라, 행사 진행을 돕겠다고 자청했다. 모니터에서만 보던 동료들에게 직접 인사를 건넬 수 있기도 했고, 우리 기관에서 어떻게 행사를 진행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사무실에서 행사가 있는 호텔까지 가는동안 마음이 설렜다. 테이블에 참여자들의 이름표를 배치하고, 준비 상태를 체크하는 동안 무언가 한참동안 쓰지 않았던 ‘행사 진행자’로서의 나를 꺼내든 기분이었다. 하나 둘 도착하는 손님들을 맞으며 마음이 벅차올랐다.
참석하겠다고 했던 인원의 약 60퍼센트가 도착했다. 행사장을 챙기던 팀장님이 나에게도 안에 들어가 볼 것을 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 덜컥 겁이 났다. 너무 오랫동안 용건 없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하지 않은 멘트로 대화를 이끌어나간 적이 언제였더라? 나를 뭐라고 소개하지? 입사한지 반년이 넘었는데 모니터에서만 보던 재택근무용 얼굴과 양복과 드레스를 차려입은 동료들의 얼굴이 잘 매치되지 않았다. 처음인데, 실수하면 안되는데, 사람들이 날 잘못 뽑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준비되지 않은 말을 하다가 엉터리 영어를 늘어놓으면 어쩌지? 수많은 질문들이 내 마음을 짓눌렀다.
무거운 마음으로 연회장에 들어섰다. 저마다 조금씩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바로 돌진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에 일단 줄을 섰다. 한 손엔 접시를, 또 한 손엔 집게를 들고 천천히 움직이며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일단 눈인사를 했다. 한없이 친절하고 다정한 눈빛을 받으며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러나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먼저 말을 걸어주는 동료들이 고마웠다. 그렇게 내 손에 놓인 작은 접시가 가득 찼다. 사람들이 가득한 연회장에서 혼자 음식을 먹는 것은 너무도 이상했고, 그렇다고 어딘가 비집고 들어가기엔 용기가 부족했다. 일단 연회장 밖으로 나왔다.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게 즐겁다던 찐외향형인간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리셉션이 끝날 때까지 나는 그렇게 연회장을 들락거렸다. 마치 산소 탱크를 채우고 물속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연회장에 들어가 내가 견딜 수 있을만큼의 대화를 하고, 산소가 희박해진 느낌이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의 얼굴을 보는데, 어쩐지 미안해졌다.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내 몸의 에너지가 쭉쭉 빠져나가는 기분을 실제로 느껴보고 나니 사람을 만나는걸 왜 그렇게 꺼리냐고 몰아세웠던 지난날의 대화를 반성하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니 남편도 조금은 변했다. 오랫동안 블로그로만 소통하던 친구를 초대하기도 했다는 나의 말에 그는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대화에 참여하며, 화제를 이끌어나가기도 하는 남편을 보며 친구들은 듣던것과는 다르다며 나를 놀려댔다. 무조건 패스하던 소셜 모임도 은근슬쩍 "가볼까?" 하는 말을 먼저 꺼내기도 한다.
내향형-외향형 인간이라는 구분이 주어진 '숙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혼신의 힘을 끌어모아 인사를 건네야 하는, 대화를 지속하려 하고 있을 내향형 인간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 힘들면 잠시 밖으로 나가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와도 괜찮다고 말이다.
* 황진영
미국 수도에 있는 한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댓글 2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옹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매끄럽게 술술 읽히는 글이네요. 비대면 모임이 대면모임으로 서서히 바뀌어가는 시점에서 많이 공감됩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
공감하며 읽어주셨다니 뿌듯합니다. 대면모임을 준비하며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었다는 생긱이 듭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